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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적이 없으면 홀로 서지 못하는

중앙선데이 2019.05.18 00:20 636호 29면 지면보기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여야 정당 지지도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여론조사 기관에 따라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지지도 격차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인데, 조사 기법이야 어찌 됐든 한국당 지지도가 급격히 올랐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이는 지지층 결집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다. 문제는 한국당이 잘해서라기보다 정부·여당의 실정을 공격하고 비난하면서 반사이익을 챙긴 결과라는 점이다.
 

겉으론 사생결단 싸우는 듯 보여도
적대적 공생 통해 지지층 결집 노려
반사이익만 챙겨서는 집권 불가능
민주주의 위해선 야당이 바로 서야

자고로 싸움 구경만큼 사람들의 시선을 붙드는 것도 없다고 했다.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왜 싸우냐고 나무라면서도 부지불식간에 어느 한 편을 응원하게 되는 게 인간 심리다. 싸움이 격해질수록, 내뱉는 단어가 자극적일수록 “우리 편 이겨라”는 목소리도 함께 커진다. 그 속에서 누가 옳고 그르냐는 객관적 판단은 실종되기 십상이다. 그저 내 편이 이기면 그만이다. 저잣거리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판을 흔들고 국면을 전환하는 데 싸움만한 게 없다는 건 한국 정치의 오랜 경험칙이기도 하다.
 
한국당의 지지도 급상승은 이런 전례를 충실히 따른 결과물이다. 당장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에서 한국당 홀로 고립됐던 4 대 1 구도가 양강 구도로 바뀌지 않았나. 한국당의 ‘도발’에 민주당 지지층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두 당 지지도가 상호 상승효과를 누렸으니 여권으로서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셈이다. 이는 겉으로는 여야가 사생결단식으로 싸우는 듯 보여도 실은 과거 한국 정치를 관통해온 ‘적대적 공생 관계’의 또 다른 버전이 등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여야 거대 정당이 그동안 누려온 ‘기득권의 카르텔’을 유지하기 위해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적대적 공생의 기저에는 ‘결국엔 우리를 찍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자신감이 자리 잡고 있다. 민주당은 친박인 황교안 대표 체제가,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정이 믿는 구석이다. 동상이몽도 이런 동상이몽이 없다 싶을 정도다.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의 몫이다. 이미 의원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 보니 국회는 몇 달째 개점휴업 상태고 민생법안은 겹겹이 쌓여만 가고 있지 않나.
 
하지만 자극적인 망발이 첫맛은 강렬할지 몰라도 뒷맛은 씁쓸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어렵게 모은 지지층을 계속 붙잡아두기 위해서는 더욱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서로 치고받다 보면 적대적 공생이 어느 순간 공멸로 바뀌지 말란 법도 없다. 적과의 동침을 실감 나게 연기한 영화 ‘장미의 전쟁’에서도 결국엔 둘 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되지 않던가.
 
적이 없으면 홀로 서지 못하는 정당은 오래가지 못한다. 나름의 정책 대안과 비전은 제시하지 못한 채 상대 당에 대한 적개심만으로 지지층을 끌어모을 경우 제1야당은 가능할지 몰라도 집권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게 한국 정치의 또 다른 경험칙이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당을 보라. 자기 스스로는 빛을 내지 못하고 반사이익을 통해서만 존재 이유가 증명되는 ‘반사 정당’ 신세를 자처하고 있지 않나. 대한민국 대표 정당이자 제1의 보수 정당이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렀나.
 
프랑스의 대표적 우화작가인 장 드 라 퐁텐은 “인간은 진리에 대해서는 얼음같이 차갑지만 허위에 대해서는 불같이 뜨거워진다”고 했다. 자극적 언사일수록 강하게 반응하는 군중심리를 꼬집은 말이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측면도 간과하지 않았다. 그 언사가 허위로 밝혀지면 군중이 진짜 불같이 화를 낼 거라면서다. 정치는 여당과 야당의 두 날개로 날아야 추락하지 않는다. 야당이 바로 서야 한국의 민주주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라 퐁텐의 경고를 한국당이 새겨들어야 할 절박한 이유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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