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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평점은 5점 만점에 4.2점… 블랙미러, 새로운 계급 사회를 상상하다

중앙일보 2019.05.17 05:00
지식 플랫폼 폴인의 스토리북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로 철학하기> 중 3화를 일부 공개합니다. 이 스토리북은 17일 하루 폴인의 웹사이트에서 전체를 무료로 읽을 수 있습니다. 스토리북의 저자인 이원진 철학박사는 일간지 기자 출신입니다. “블랙미러가 그려낸 미래 사회의 암울한 풍경을 통해 기술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성찰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평점 사회에서 벗어날 용기에 대하여 
 
‘블랙 미러’의 ‘추락’(Nosedive)편은 이 시리즈의 모든 에피소드를 통틀어 가장 ‘현실적’이란 평을 듣는 작품입니다. 그만큼 미래 보다, 현재의 우리가 생생하게 느끼는 문제점을 세밀하게 잘 짚어냈습니다.
 
극단적인 평점 사회를 그리는 이 작품엔 거대한 상징과 역설이 담겨 있습니다.  
 
SNS를 해 본 사람이라면 남들의 '좋아요' 하나에 일희일비 한 경험 있으실 겁니다. 네, 저도 SNS에 포스팅을 하고 ‘좋아요’가 몇 개나 눌리는지를 은근히 기다리느라 잠을 설친 적이 있습니다. 네, 저도 포스팅에 ‘좋아요’를 많이 받기 위해 평소 남의 포스팅에 정기적으로 ‘좋아요’를 투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블랙미러 '추락' 편에서, 사람들은 특수 렌즈를 눈에 장착하고 서로의 평점을 실시간으로 확인합니다. 평점이 높을수록 월세 할인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평점 계급 사회'가 된 것입니다.

블랙미러 '추락' 편에서, 사람들은 특수 렌즈를 눈에 장착하고 서로의 평점을 실시간으로 확인합니다. 평점이 높을수록 월세 할인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평점 계급 사회'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평점이나 호감도가 단순히 개인적 만족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사회적 신용등급' 또는 '자본'이 된다면 어떨까요?
 
이 드라마는 호감도 또는 평점으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의 보여주기식 문화와 계급자본을 가진 엘리트층의 위선, 그들에게 당하고도 순응하고 마는 서민층, 계급의 상향 이동을 시도하려다 눈 깜짝할 새 오히려 난민으로 하강하는 현상 등을 5점 만점의 평점이란 키워드로 종횡무진 풀어헤칩니다. 태양 가까이 가려다 밀랍 날개가 녹아 추락하고만 이카루스 처럼요.
 
타인을 평가하고 싶은 욕망, 식스센스
 
본격적으로 작품을 들여다보기 전에, 예전에 본 TED 강의를 말씀드릴게요.  
 
2009년, MIT 미디어연구소의 페티 메이즈 교수와 제자 프라나브 미스트리는 직접 발명한 웨어러블 기계 ‘식스 센스(sixth sense)’를 설명하기 위해 TED 무대에 섰습니다. 손가락 엄지와 검지만으로 허공에 대고 기기를 작동시키는 기술은, 언뜻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동작 인식 인터페이스’나 구글이 개발한 ‘프로젝트 글라스’와 상당히 유사해보였습니다.  
 
그러나 '식스 센스'는 타인을 읽어내고픈 인간의 욕망을 기술적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구글 글라스’와는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당신은 초면의 어떤 사람과 악수를 나누는 순간, ‘당신이 누구인지 검색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 적이 있을 겁니다. 또 익명의 누군가와 마주쳤을 때, 인터넷에서 그 사람의 블로그나 개인 웹페이지를 확인해 보고 싶은 적도 있을 겁니다.  
 
‘식스 센스’는 매순간 이뤄지는 타인에 대한 평가 욕망을 구현한 기계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물론 그 사람이 동의하는 한에서) 그 사람이 입은 티셔츠 위에 팝업처럼 나타나거든요. 평가 심리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저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은 ‘자본’을 갖추고 있는지 스캔하고 서열화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강합니다. 특히 한국인은 상대방의 나이와 학력을 알고 싶고 궁금해 하잖아요.  
 
타인의 실시간 평점이 보이는 특수 렌즈의 사회 
 
이런 긴장감이 바로 ‘추락’편을 설명하는 중요한 코드입니다.  
 

넷플릭스에서 2016년 10월 공개한 이 에피소드는 영화 ‘다키스트 아워’(2017), ‘안나 카레리나’(2012) ‘어톤먼트’(2007) 등을 연출한 조 라이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쥬라기 월드’ 시리즈(2015~)로 우리에게 친숙한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가 주연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나왔을 당시, 평론가들은 평판 체크로 사회적 비난을 받은 어플리케이션 ‘peeple’과 중국의 사회 신용 체계(Social Credit System)를 떠올리게 한다고 평했는데요.    
 
근 미래, ‘식스 센스’같은 웨어러블 기계가 깊숙이 들어온 세상이 이 드라마의 배경입니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태도나 자세를 그때그때 평가해 점수(5점 만점)를 줍니다.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하거나, SNS에 멋진 사진을 올리면 4점이나 5점을 주고요. 반대로 불쾌한 행동을 하면 1점이나 2점을 줍니다. 그렇게 한 사람의 평균 점수가 매겨지죠.    
 
사람들은 다들 특정 렌즈를 눈에 이식하고 있는데요. 그 렌즈를 통해 상대방의 점수를 즉각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소수점 세 자리의 평점이 그 사람이 앞으로 살아나갈 모든 상황을 결정한다는 것이죠. 어떤 차를 빌릴 수 있는지, 어떤 좌석을 탈 수 있는지, 어떤 집에 살 수 있는지, 어떤 이성과 사귈 수 있는지, 어떤 회사에 다닐 수 있는지, 심지어 말기 암 상태에서 어떤 치료 우선권을 얻을 수 있는지도 평점에 달려있습니다.  

 
4.5점을 넘으면 프라임 유저(Prime User)가 되어 많은 특혜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모두 좋은 평점을 받기 위해 다소 가식적이고 과장된 태도로 살아갑니다.
 
주인공 레이시 파운드(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선량하고 평범한 인물입니다. 그는 모두에게 친절하고, 자신의 일상을 아름답게 포장해 SNS에 올리죠. 그래서 이미 높은 평점(4.2)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블랙미러 '추락' 편의 주인공 레이시는 5점 만점에 4.2점의 평점을 가졌다. 하지만 4.5점이 넘어 월세를 할인받고 싶은 마음에 모험을 감행한다. [사진 넷플릭스]

블랙미러 '추락' 편의 주인공 레이시는 5점 만점에 4.2점의 평점을 가졌다. 하지만 4.5점이 넘어 월세를 할인받고 싶은 마음에 모험을 감행한다. [사진 넷플릭스]

 
새 집을 알아보던 중 레이시는 평소에 원하던 ‘드림 하우스’를 찾게 됩니다. 그곳에서라면 멋진 사랑도 쟁취할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문제는 총점이 4.5가 넘어야 월세를 할인받을 수 있는 것인데요. 레이시는 빠른 시간 내에 0.3점을 높이기 위해 평점 4.8의 ‘프라임 유저’인 옛 친구 나오미(앨리스 이브)에게 접근합니다. ‘프라임 유저’에게 높은 점수를 받아야 평점이 빨리 오르기 때문이죠.  
 
완벽해 보이는 상류층 나오미는 어린 시절 레이시에게 상처를 줬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0.3점을 위해 레이시는 외딴 섬에서 열리는 나오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합니다. 도약과 추락 사이에서 도박을 시작한 것이죠.    
  
있어보이고 싶어 안달난 사회, 어플루언자
 
이 드라마를 보고 제가 떠오른 고사성어는 두 개입니다. 
 
첫째는 교언영색(巧言令色).
모두가 평점을 위해 교묘하게 말재주나 부리고 얼굴빛을 꾸며 남의 환심을 사고자 하니까요. 아침 샤워를 마친 레이시가 거울을 보면서 호감을 얻기 위한 표정과 웃음소리를 연습하는 장면이 압권입니다.  그래서 공자(B.C.551~B.C.479)는 ‘교언영색을 하는 이 중에 사랑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이는 없다( 巧言令色 鮮矣仁)’고 말했나봅니다. 평점에 목마른 레이시는 낯선 이에게 “이름이 멋있다”고 말하고, 크로와상을 공짜로 건네는 과잉행동을 통해 환심을 얻고자 합니다.  
 
그럼 꾸미는 것은 모조리 나쁜 것일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꾸미고 싶은 것은 인간의 기본적 욕망이니까요. 그래서 공자는 둘째로 '회사후소(繪事後素)'를 말합니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후에 한다’는 말로, 본질이 있은 후에 꾸며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하(B.C.507~미상)가 스승인 공자에게 "'교묘한 웃음에 보조개, 아름다운 눈에 또렷한 눈동자, 소박한 마음으로 화려한 무늬를 만들었구나'는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묻자 공자의 대답이 '회사후소' 였습니다.  
 
‘바탕’이 있어야 표현할 수 있고, 창의성이나 자발성을 인정받기 마련인데 오늘날은 바탕은 보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것(집이나 자동차로 상징되는 거주지나 외모 등)을 평점화해 판단해버립니다. 결국 공자는 사람들이 바탕 자체를 잃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본질을 관찰하는 능력을 강조했습니다. 두 얘기는 <논어>에 나옵니다.
 
심리학자 올리버 제임스는 <어플루엔자>를 통해 전 세계에 퍼진 ‘부자병’에 대한 보고서, 즉 소비주의 감옥에 갇힌 신인류 보고서를 썼습니다. 어플루엔자(affluenza)는 풍요로움을 뜻하는 '어플루언트(affluent)'와 유행성 독감을 뜻하는 '인플루엔자(influenza)'의 합성어로, 모두가 있어 보이고 싶어 안달난 사회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후략)
 
폴인의 스토리북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로 철학하기> 표지. [사진 폴인]

폴인의 스토리북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로 철학하기> 표지. [사진 폴인]

 
지금까지의 내용은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로 철학하기> 3화의 절반 가량입니다. 3화의 나머지 부분을 포함한 전체 스토리북을 17일 하루만 무료로 읽을 수 있습니다. 폴인의 무료 공개 이벤트는 17일로 끝납니다. 폴인이 전달할 더 풍성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이메일 구독하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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