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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석화의 눈물 “아듀 정미소, 지난 17년 행복했다”

중앙일보 2019.05.17 00:04 종합 23면 지면보기
정미소 폐관작 ‘딸에게 보내는 편지’ 제작발표회에서 작품 속 노래를 부르는 윤석화. [연합뉴스]

정미소 폐관작 ‘딸에게 보내는 편지’ 제작발표회에서 작품 속 노래를 부르는 윤석화. [연합뉴스]

“우리들의 시간이었어/용기와 환희로 빛나던 우리들의 시간/기억하겠지 기억할거야/우리들의 사랑의 시간을 기억할거야….”
 

대학로 명물 소극장 경영난 폐쇄
‘딸에게 보내는 편지’ 마지막 공연

서울 대학로의 대표적인 소극장 ‘설치공간 정미소(이하 정미소)’가 문을 닫는다. 폐관작 ‘딸에게 보내는 편지’의 제작발표회가 열린 16일 오후. ‘정미소’ 설립자이자 대표인 배우 윤석화(63)가 노래를 부르며 무대에 등장했다. 그가 다음달 11~22일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부를 다섯 곡 중 하나인 ‘그건 우리들의 시간이었어(It was Our Time)’였다. 극 중에선 주인공이 딸과의 추억을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지만, 이날만큼은 ‘정미소’에 얽힌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눈물로 노래를 마친 그는 “건물이 매각되면서 더는 ‘정미소’를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하며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고 부족하지만 그 흔적이면 충분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미소’는 2002년 그가 목욕탕이었던 3층 건물을 매입해 만든 극장이다. ‘쌀을 찧어 내놓은 방앗간처럼 아름다움을 생산하는 장소’라는 뜻을 담아 ‘정미소’로 이름을 붙였다. 지난 17년 동안 ‘19 그리고 80’ ‘서안화차’ ‘사춘기’ 등 다양한 실험작들을 무대에 올리며 대학로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지만, 손익분기점조차 맞추기 어려웠다. 그는 “몇 년 전부터 경제적인 어려움이 컸다. ‘정미소’의 문을 열어놓은 상황에서는 건물 매각도 힘들었다. 9월까지 ‘방을 빼겠다’고 해놓은 상태다”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또 “세상에 영원한 건 없지 않냐”면서 “이제 배우로 살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폐관작인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영국 극작가 아놀드 웨스커가 쓴 모노드라마다. 1992년 극단 산울림에서 임영웅 연출, 윤석화 출연으로 세계 초연했다. 초연 당시 매진 사례를 이어가며 10개월 동안 연속 공연을 했던 윤석화의 대표작이다. 가수이자 미혼모인 주인공이 열두 살 사춘기 딸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편지로 이야기하는 형식을 띤다. 이번 공연에선 연극 ‘레드’ ‘대학살의 신’ 등의 연출가 김태훈과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토요일 밤의 열기’ 등을 맡았던 작곡가이자 음악감독 최재광이 합류한다. 내년 가을엔 영국 런던 공연도 예정돼있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 윤석화’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영국 제작자 리 멘지스의 제안으로 지난해 11월 런던 공연을 결정했다”며 “이번 공연을 내년 공연의 ‘오픈 리허설’ 격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정미소’의 17년을 돌아보며 그가 가장 큰 보람으로 꼽은 일은 ‘정미소 창작 지원 프로젝트’다. “프로젝트를 통해 젊은 후배들이 연극 정신이 살아있는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공간을 내어주고 약간의 제작비를 지원해주면 이렇게 다들 진심이 담겨있는 작품을 만드는구나’ 생각하며 행복했다”고 말했다. 또 “좋은 극장은 좋은 작품이 올라가는 극장”이라며 “그런 면에서 ‘정미소’는 참 괜찮은 극장이었는데 없어지게 돼 안타깝다”고 끝내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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