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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돈으로 해외 유학, 부동산 투자…국세청, 역외 탈세 104명 조사

중앙일보 2019.05.16 12:00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내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K사장. 그는 해외에다 연락사무소를 설립한 뒤 회사 자금을 '사무소 운영비용' 명목으로 송금한다. 연락 사무소에 등록된 직원은 다름 아닌 배우자와 자녀. 이들은 본사로부터 받은 돈과 법인카드를 해외 체류비와 유학비에 쓰고 해외 부동산에도 투자했다. 물론 신고는 하지 않았다. 국세청은 이 같은 사실을 적발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국내 본사는 허위 해외사무소를 만들어 법인세를 탈루하려 했다"며 "국경을 넘는 탈세 범죄는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국세청은 국경을 넘어 탈세 행각을 벌이는 '역외탈세' 혐의자 104명에 대해 전국 동시 세무조사를 한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달 종합소득세 신고와 다음 달 해외금융계좌 신고를 앞두고 경각심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조세회피처에 유령회사 세우는 수법은 옛말" 
역외탈세 수법은 갈수록 지능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단순히 케이만군도·파나마 등 세율이 낮은 조세회피처에 유령회사(SPC)를 설립한 뒤 국내 자산을 빼돌려 숨기는 '고전적인'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과세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세무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복잡한 구조를 짜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해외법인에 특허 공짜로 이용하게 한 뒤 사주는 '뒷돈' 챙겨" 
가령 이번에 적발된 사례 중에선 가치를 매기기 힘든 특허기술을 이용해 탈세한 사례도 있었다. 국내 법인이 수백억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해 개발한 특허기술을 사주 일가가 소유한 해외 현지법인이 공짜로 이용하게 하는 방식으로 법인세를 탈루했다. 특허 사용료를 받았다면, 국내 법인 소득으로 잡혀 국내 과세 당국에 법인세를 내야 하지만 공짜 거래 방식을 취하면서 세금을 내지 않은 것이다. 물론 사주일가는 이 돈을 '인건비' 명목으로 되돌려 받는 식으로 회사 내부 자금을 가로챘다.
 
한 외국계 기업은 국내 소비자에게 반도체 부품을 팔기 위해 운영하던 판매법인을 '판매대리인'으로 꾸며 법인세를 탈루하기도 했다. 판매법인일 땐 국내 다른 거래처에 제품을 판매한 물품대금이 수익으로 잡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법인세를 내왔다. 그러나 본사는 사업개편을 통해 이 법인을 제품 판매 용역만 대신 수행하는 '판매대리인'으로 바꿨다. 사업개편 전과 하는 일은 달라진 게 없지만, 국내 거래처로 받던 물품대금 수입을 본사가 직접 가져가게 되면서 관련 수익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는 구조로 바꾼 것이다.
 
국세청이 파악한 이 같은 역외탈세 혐의 기업은 국내 법인 83곳, 외국계 법인 21곳에 달했다. 국세청은 복잡한 탈세 구조를 짜는 데 조력한 법무·회계법인 등 전문조력자도 탈세 혐의자와 함께 조사할 계획이다.
 
김명준 국세청 조사국장은 "세무조사 과정에서 탈세 조력자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조사를 강화할 것"이라며 "사주의 부당거래나 일감 몰아주기 등은 공정거래위원회와도 공조해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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