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찜질방서 자고 일어나니 100만원 결제···'유심치기' 기승

중앙일보 2019.05.15 12:00
서울의 한 찜질방에서 다른 손님의 휴대전화에서 유심침을 빼내고 있는 A씨(19) [강북경찰서 제공]

서울의 한 찜질방에서 다른 손님의 휴대전화에서 유심침을 빼내고 있는 A씨(19) [강북경찰서 제공]

지난달 24일 서울 성북구의 한 사우나에서 자고 일어난 유모(48)씨의 휴대전화가 먹통이 돼 있었다. 전원도 들어오고 다른 기능은 정상적으로 이뤄졌지만 전화는 불통이었다. 고장 난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휴대전화에서 통신칩, 즉 ‘유심카드’만 감쪽같이 사라졌다. 황당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다음달에 휴대전화 청구서를 받은 유모씨는 깜짝 놀랐다. 소액결제로 95만원이 결제돼 있었다.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에서 유심카드를 몰래 훔쳐 대량의 소액결제를 하는 신종 범죄 '유심치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훔친 유심카드로 결제한 게임머니나 상품권을 판매해주고 일부를 챙기는 대행업체까지 가세해 조직적으로 범행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찜질방 등에서 자고 있는 손님의 휴대전화에서 유심카드를 훔쳐 게임머니나 상품권을 구매한 뒤 판매하는 수법으로 21차례에 걸쳐 약 1700만원을 편취한 A씨(19)를 절도, 컴퓨터등사용사기 등 혐의로 지난 2일 붙잡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A씨가 훔친 유심카드로 결제한 게임머니 등을 중고나라 등 커뮤니티를 통해 판매하고 수수료를 챙긴 게임아이템 매매 대행업자 3명도 붙잡아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올해 1월부터 4개월여 동안 서울 강북 일대 사우나와 찜질방을 돌아다니며 새벽 시간대에 손님들이 자는 틈을 타 유심 카드를 훔쳤다. A씨는 유심카드만 훔치면 비밀번호를 입력할 필요 없이 최대 100만원까지 소액결제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범행을 저질렀다.
 
통신사에서는 소액결제로 인한 범죄 피해를 막기 위해 ‘소액결제 차단’이나 결제 금액 제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소비자는 이 같은 기능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피해자들은 소액결제 차단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고, 유심카드를 잃어버린 걸 안 뒤에도 이를 통해 대량의 소액결제가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걸로 드러났다.
 
A씨의 범행에는 게임아이템 매매 대행업자도 가세했다. 이들은 온라인을 통해 게임머니나 상품권 구입 요청을 받았고, 이를 A씨에게 전달하면 A씨가 소액결제를 통해 구입해 전달하는 수법을 썼다. 이 과정에서 대행업자는 30~40%의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A씨와 대행업자들은 처음에는 모르는 사이였지만 이후 서로 수사정보를 공유하면서 ‘조심하라’고 조언했다”며 “사실상 방조의 관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비밀번호 등 보안 장치가 없는 유심카드가 새로운 범행의 표적이 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강북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기기를 잃어버리지 않는 게 중요하지만 소액결제를 미리 차단해 범죄를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범죄를 막기 위해 통신사에서도 유심카드에 비밀번호 설정을 하거나, 요청한 경우에만 소액결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