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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력 낭비한 죄···10만명 속인 거짓청원 20대 기소의견 송치

중앙일보 2019.05.14 14:51
"동생이 10대 6명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허위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20대가 처벌을 받게 됐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20대 남성 A씨를 입건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14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월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허위 글을 올려 경찰력을 낭비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는 지난달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가족이 청소년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며 도움을 호소해 10만여명의 동의를 얻은 글이 허위로 작성됐다고 밝혔다. 이 글을 올린 A 씨는 경찰에서 소년법 폐지를 위해 이 같은 일을 벌였다고 진술했다. [연합뉴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는 지난달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가족이 청소년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며 도움을 호소해 10만여명의 동의를 얻은 글이 허위로 작성됐다고 밝혔다. 이 글을 올린 A 씨는 경찰에서 소년법 폐지를 위해 이 같은 일을 벌였다고 진술했다. [연합뉴스]

 
A씨는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남동생이 10대 6명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제 저녁(2월 21일) 7시쯤 남동생이 경기도의 한 공원에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10대 학생 6명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 이를 영상 등으로 찍은 뒤 돈을 주지 않거나 경찰에 신고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겠다고 협박한다"며 "가해자들 부모님은 경찰이거나 변호사인데 자신은 부모가 없어 대응이 어렵고 폭행 장소가 폐쇄회로 TV(CCTV) 사각지대여서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도 쉽지 않다"고 썼다.  
A씨는 가해자와 나눈 대화 내용이라며 카카오톡 메신저 대화 화면을 캡처해 첨부하기도 했다. 여기엔 항의하는 글쓴이에게 가해자가 "어차피 청소년법이야. ㅅㄱ(수고)"라고 답한 내용이 포함됐다. 이 글엔 지난 3월 4일까지 10만4612명이 동의 의사를 밝혔다. 
 
경찰은 즉각 해당 글에 대한 진상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확인한 글쓴이에 대한 정보는 e메일 주소뿐이었다. 경찰은 포털사이트에 거듭 요청해 A씨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또 해당 글에 언급된 공원 3곳을 직접 찾아 CCTV를 확인하는 등 탐문 수사도 벌였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형사·여성청소년과는 물론 안산과 안양 지역 경찰이 동원됐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중앙포토]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중앙포토]

 
하지만 A씨의 글은 모두 거짓이었다. 그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 전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카카오톡 메신저 가계정을 만든 뒤 가해자들과 대화를 나눈 것처럼 조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가해자 계정 프로필을 만들기 위해 SNS에서 찾은 일반인의 사진을 올리기도 했는데 자신의 사진을 도용당한 당사자가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명예훼손죄도 적용됐다. 그는 경찰에서 "소년법 폐지를 위해 허위 글을 올렸다"고 진술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도 삭제됐다. 
 
문제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에 대해 경찰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글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공식 답변 기준인 20만 명을 넘지 못했다. 여기에 다른 기관에 접수된 허위 내용을 처벌한 선례도 없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직접 경찰에 거짓 신고를 한 것도 아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특성상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경찰이 답을 할 수 있긴 하지만 실제로 경찰이 동원돼 수사를 벌였기 때문에 112 허위신고와 동일하다고 판단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판례에서도 범죄 사실을 적극적으로 속이려고 하거나 허위 증거를 제출하려는 의도가 있으면 범죄 혐의가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앞으로도 긴급한 사안에 투입돼야 할 경찰력을 허위신고 등으로 낭비하게 만든 사례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할 방침이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협회장은 "거짓으로 올린 글로 인해 공권력이 동원됐다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가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선례가 없어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수원=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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