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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선 금기시한다는데…영국왕자 안동서 신발 벗어

중앙일보 2019.05.14 09:16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가운데)가 14일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 살펴보고 있다. 앤드루 왕자의 방문은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안동을 다녀간 지 20년 만이다. [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가운데)가 14일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 살펴보고 있다. 앤드루 왕자의 방문은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안동을 다녀간 지 20년 만이다. [연합뉴스]

“20년 전 어머니가 걸은 길을 다시 걷게 돼 기쁩니다. 과거의 일을 다시 축하하는 것은 양국 관계에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발자취 스민 '로열웨이' 따라
하회마을·충효당·봉정사 등 안동 누빌 앤드루 왕자
주영 한국대사가 왕실 가족 초청하면서 방문 성사
성학십도·수반·사과 등 다양한 선물도 전달할 예정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차남이자, 왕위 계승 서열 8위인 앤드루(59) 왕자가 14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이 있는 경북 안동을 찾았다. 20년 전인 1999년 영국 여왕의 안동행을 기념해서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차남인 앤드루 윈저 왕자. [사진 경북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차남인 앤드루 윈저 왕자. [사진 경북도]

 
지난해 말 박은하 주영 한국대사는 여왕을 만난 자리에서 “왕실 가족을 한국에 초청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2019년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한국을 다녀간 지 20주년 되는 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여왕은 “안동 하회마을에서의 추억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여왕이 약속을 지켰고, 왕실을 대표해 앤드루 왕자의 안동행이 성사된 것이다.
 
앤드루 왕자는 헬기를 타고 이날 오전 11시20분쯤 서울에서 안동에 있는 경북도청에 도착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안내를 받으면서 도청을 둘러보고, 작은 소나무인 ‘반송’을 심었다. 백자의 일종인 달항아리 선물도 받았다.
 
그는 하회마을로 향했다. 한복을 차려 입고 한 손에는 태극기, 다른 한 손에는 영국 국기인 유니언잭을 든 학생과 어린이 수백 명이 앤드루 왕자를 환호하며 맞이했다.
 
왕자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충효당이다. 이곳은 서애 류성룡(1542~1607)의 종택이다. 충효당엔 재밌는 일화가 있다. 99년 여왕이 충효당을 찾았을 때 일이다. 여왕이 충효당에 오르면서 신발을 벗고 올랐다. 서양에선 발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있어 당시 외신 기자들이 여왕의 행동에 어리둥절해 했다고 전해진다.
14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찾은 앤드루 영국 왕자가 20년 전 자신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심은 구상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안동=김정석기자

14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찾은 앤드루 영국 왕자가 20년 전 자신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심은 구상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안동=김정석기자

 
사랑방을 둘러본 앤드루 왕자는 충효당 마당에 심어 놓은 구상나무를 살펴봤다. 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방문을 기념해 심은 이 나무를 한동안 바라보던 앤드루 왕자는 “어머니가 이 나무를 심을 때 크기가 어느 정도였나” “이 나무는 계속 자라고 있나” 등 질문을 하며 관심을 나타냈다.
 
구상나무 옆에 새로 세워진 ‘로열 웨이’ 표지판에도 눈길을 떼지 못했다. 로열 웨이(Royal Way)는 99년 여왕이 하회마을과 농산물도매시장, 봉정사를 돌아보며 지나간 길(32㎞)을 말한다. 금색 표지판엔 영어로 로열 웨이를 설명하는 글과 여왕이 거쳤던 경로를 표시했다. 앤드루 왕자는 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환상적(Fantastic)”이라며 감탄했다.
 
앤드루 왕자는 고택인 담연재로 이동해 여왕의 생일상을 대신 받았다. 93세인 여왕의 생일은 4월 21일이다. 하지만 안동 방문 20주년을 기념, 안동시가 한 번 더 생일상을 근사하게 차렸다.
14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찾은 앤드루 영국 왕자가 자신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생일상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안동=김정석기자

14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찾은 앤드루 영국 왕자가 자신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생일상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안동=김정석기자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1999년 4월 21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 옛 사대부의 전통가옥인 담연재에서 안동소주 기능보유자 조옥화 우리음식연구회장이 차린 73회 생일상을 받고 전통청주로 축배를 들고 있다. [중앙포토]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1999년 4월 21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 옛 사대부의 전통가옥인 담연재에서 안동소주 기능보유자 조옥화 우리음식연구회장이 차린 73회 생일상을 받고 전통청주로 축배를 들고 있다. [중앙포토]

 
이 자리에서 왕자는 여왕으로부터 받아온 메시지를 대신 읽었다. 그는 “지난 주말 영국을 떠나기 전 어머니와 시간을 보냈는데 그때 친히 메시지를 전해주셨다”며 “어머니는 ‘99년 한국을 찾아 많은 곳을 방문했는데 참으로 훌륭했다. 특히 하회마을에서 생일상을 받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 경북과 안동에 좋은 일만 있길 바란다’고 메시지를 남겼다”고 전했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한지 두 세트와 그릇인 수반을 앤드루에게 기념 선물로 전달했다. 한지 선물을 받으며 권 시장이 “1000년 전통의 한지”라고 소개하자 앤드루 왕자가 “안동에서 살면 1000년을 살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 웃음을 자아냈다.
14일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을 방문한 앤드루 영국 왕자가 충효당 마당을 걷고 있다. 안동=김정석기자

14일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을 방문한 앤드루 영국 왕자가 충효당 마당을 걷고 있다. 안동=김정석기자

 
왕자는 학록정사로 옮겨 하회별신굿탈놀이 공연을 관람하면서 오찬을 함께했다. 오찬 후엔 여왕 사진 등이 전시된 행산고택, 하중재를 돌아보고 귀촌종택에 가서 전통혼례시연도 관람했다.
 
그는 20년 전 여왕이 들렀던 안동농수산물도매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왕자가 농산물공판장 앞에 도착하자 사물놀이패가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며 춤을 췄고 앤드루 왕자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14일 경북 안동농수산물공판장 앞에서 상인들이 앤드루 영국 왕자의 방문을 환영하고 있다. 안동=김정석기자

14일 경북 안동농수산물공판장 앞에서 상인들이 앤드루 영국 왕자의 방문을 환영하고 있다. 안동=김정석기자

14일 경북 안동농협농산물공판장을 찾은 앤드루 영국 왕자가 사과를 들고 웃고 있다. 안동=김정석기자

14일 경북 안동농협농산물공판장을 찾은 앤드루 영국 왕자가 사과를 들고 웃고 있다. 안동=김정석기자

 
공판장 안에서 왕자는 “맛있는 사과는 어떻게 구별하나” “11월에 수확한 사과는 언제 소비자들이 맛볼 수 있느냐” 등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공판장을 떠나기 전 사과를 선물 받은 그는 “돌아가면 어머니께 직접 사과를 전달하겠다”며 기뻐했다.
 
봉정사도 찾았다. 그는 여왕이 한 것처럼 범종을 타종하고 돌탑을 쌓고 대웅전과 극락전을 살펴봤다. 특히 극락전으로 들어갈 때 앤드루 왕자는 여왕이 그랬던 것처럼 신발을 벗어 눈길을 끌었다. 봉정사 측은 ‘대영제국’ 사행시 족자를 선물로 전달했다.
14일 경북 안동시 봉정사를 찾은 앤드루 영국 왕자가 봉정사 측으로부터 '대영제국' 4행시가 적힌 족자를 선물 받고 있다. 안동=김정석기자

14일 경북 안동시 봉정사를 찾은 앤드루 영국 왕자가 봉정사 측으로부터 '대영제국' 4행시가 적힌 족자를 선물 받고 있다. 안동=김정석기자

안동 봉정사 측이 앤드루 윈저 왕자의 선물로 준비한 '대영제국' 4행시 족자. [사진 안동시]

안동 봉정사 측이 앤드루 윈저 왕자의 선물로 준비한 '대영제국' 4행시 족자. [사진 안동시]

 
마지막으로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이동, 세계기록유산 퇴계집 책판인 장판각을 챙겨보고, 유교책판 인출을 시연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한국국학진흥원 측은 왕의 열 가지 도리를 적은 ‘성학십도(聖學十圖)’ 어람용 책자를 왕실 선물로 전달했다.
 
안동=김윤호·김정석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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