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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 빚진 세 아이 엄마…가족 비극적 선택 막아준 해결사

중앙일보 2019.05.14 05:01
“애들은 아직 한참 어리고, 도움받을 곳은 없고. 이렇게 계속 살 거면 죽는 게 낫단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전북 전주시에 사는 곽민아(39·가명)씨는 9살, 12살, 15살인 자녀 셋을 기르는 싱글맘이다. 3년 전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2억원(원금 1억 5000만원, 이자 5000만원)가량 빚을 떠안은 채 이혼했다. 재산은 한 푼도 없고 생활비라고는 한부모 가정에 주는 월 110만원의 정부지원금이 다였다. 월세 35만 원짜리 낡은 한옥에 세 들어 살며 끊임없는 빚 독촉에 시달렸다. 전화벨 소리만 들려도 덜컥 겁이 나는 불안한 나날이었다.
 
 전국엔 주로 지자체가 운영하는 금융복지상담센터 14곳이 운영 중이다.[사진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전국엔 주로 지자체가 운영하는 금융복지상담센터 14곳이 운영 중이다.[사진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1년여 만에 일어난 삶의 변화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데 파산신청을 할 법무사 비용조차 없었다. 지난해 초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간 무료법률공단이 소개해 전주시청의 금융복지상담소를 방문했다. ‘나라(지자체)에서 도와준다고 해도 얼마나 도울 수 있을까.’ 아무 기대 없이 찾아간 상담소에서 곽씨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상담소 지원을 받아 개인파산을 신청해 면책을 받았을 뿐 아니라, 상담사 안내로 신청한 ‘취업성공패키지’를 통해 지난달엔 간호조무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난치병을 앓는 둘째를 포함해 세 아이 모두 어린이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지원받게 됐다. 곽씨는 “파산 지원 그 자체보다도 상담 과정에서 많이 치유됐다. 상담사가 ‘파산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 데리고 살 생각을 해야 한다’며 북돋워 줬다”고 말했다.
 

금융소외자를 위한 종합병원 

감당 못 할 빚은 채무자를 위축시킨다. 여기에 빚 독촉이 더해지면 압박감에 정상적인 판단마저 어려워진다. 금융소외자의 재활을 돕는 ‘종합병원’이 필요한 이유다.
 
2013년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14개 지역에서 운영 중인 금융복지상담센터가 바로 이런 역할을 하고 있다. 특정 영역에 전문화된 신용회복위원회나 법률구조공단과 달리, 금융복지상담센터에서는 채무자 개인의 상황에 맞는 금융·복지대책을 선별해 지원하는 게 특징이다. 곽씨 사례처럼 복지제도를 연결해주거나 재취업, 주거 해결 등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파산·회생·워크아웃, 맞춤형 처방

무엇보다 자신에게 맞는 신용회복 절차로 연결해준다는 것이 장점이다.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의 김기성 상담관은 “채무자들은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가장 유리한 제도를 택하기보단 연락이 닿는 쪽에서 지원하는 제도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먼저 가면 워크아웃을 하고, 파산 면책 관련 광고를 접하면 파산 면책 수순을 밟는 식이다. 지난해 도봉센터에 방문한 30대 후반의 한부모 가장은 월 30만원씩 내는 워크아웃을 진행 중이었다. 미취학 아동을 기르는 이 가장의 월수입은 100만원 안팎의 정부지원금이 전부였다. 김 상담관은 “이런 경우 파산하고 새 출발 하는 게 낫다. 무리해서 워크아웃을 진행하다간 또 빚지는 건 시간문제”라며 “신용회복절차를 밟는 와중에 추가로 빚이 생기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가장 큰 이유는 해결책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3년 문을 연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는 개소 이후 지난달까지 5380명의 면책 절차를 도왔다. 이들이 각기 탕감받게 된 채무액을 모두 더하면 1조 2000억원에 달한다. 대부분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이뤄지는 사업인 까닭에 전국 금융복지센터를 총괄하는 통계나 관리 체계는 없다. 운영 주체도 제각각이다. 은평구·사상구·서대문구 등은 각 구의 담당과에서 금융복지센터를 운영 중이고, 경기도·전북·경남은 지역 신용보증재단에서 위탁 운영한다.

 
곽씨는 신용유의자 신분에서 벗어나 현재 간호조무사로 일하기 위해 구직 중이다. 그는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누구든지 빚이 있다고 좌절하지 말고, 센터에 찾아가서 도움을 받아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처럼 애가 셋인데 월 110만원으로 버티던 사람도 살 수 있게 됐으니까요.”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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