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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람 치었다고? 플라스틱 통 친 거야”

중앙일보 2019.05.14 00:54 종합 1면 지면보기
[이슈추적] 고령운전자 300만 시대
지난 3월 14일 오전 5시40분 서울 서대문구 모래내로에서 근무를 마치고 자전거로 퇴근하던 경비원 A씨(67)가 김모(70)씨가 몰던 택시와 장모(78)씨가 몰던 차에 잇따라 치여 숨졌다. A씨는 4차로 도로의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건너다 김씨의 택시에 치였다. 사고 후 택시가 2차로에 정차하는 중 뒤따라오던 장씨의 차가 1차로에 쓰러져 있는 A씨를 치고 그대로 가버렸다. 장씨는 청소용역업체 직원으로 근무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장씨는 “흰색 플라스틱 통을 치었다고 생각했다”고 경찰에 진술했으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하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현장에 남아 있던 김씨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도주한 장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지난 12일 경남 양산시 통도사 앞길에서 1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치는 사고를 낸 차량 운전자 김모(75)씨는 “평소처럼 가속 페달을 밟았는데 급가속이 됐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운전 미숙 때문에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보고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부상자 중 2명은 중태다.
 
고령화에 따라 65세 이상 운전자가 늘면서 사고도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8년 106만 명이던 고령 운전자는 지난해 처음 300만 명을 넘었다. 지난 4월 말 기준 315만8254명으로 전체 면허소지자의 10%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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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차 가진 고령자 146만 명 … “정부 차원 면허 반납 늘릴 대책 필요”
 
실제 운전자로 추정되는 65세 이상 차 보험 가입자는 지난해 말 146만4000명이며 80대 이상도 7만8000명에 달한다. 그만큼 사고도 늘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 사고는 ▶2016년 21만4000건 ▶2017년 23만4000건 ▶2018년 27만2000건으로 증가 추세다. 지난해 사고율을 살펴보면 활동이 많은 20대를 제외하면 70대 이상이 가장 높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면허 반납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운전면허 자진반납 건수는 ▶2016년 1903건 ▶2017년 3681건 ▶2018년 1만1916건 ▶2019년 1~3월 7346건이다. 지역별로는 부산이 가장 많고 서울·경기·경남 순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건수는 늘지만 실제 운전하지 않는 사람들이 반납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3일 오전 운전면허 반납을 위해 서부면허시험장을 찾은 송옥자(74)씨는 “원래도 운전을 자주 하지 않고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 가끔 하며 마지막 운전대를 잡은 것도 3년이 넘은 것 같다”고 말했다. 면허 반납을 담당하는 한 경찰서 관계자는 “서울시가 추첨으로 교통카드(10만원) 지급을 시작한 후 하루에 많게는 30명이 반납하러 온다”며 “다만 실제로 운전을 안 하는 분이 많다”고 전했다.
 
장롱면허가 아닌 실제 운전자들의 반납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지자체도 있다. 천안시는 70세 이상 고령자에 한해 면허를 반납했을 때 10만원 충전 교통카드를 지급하며 실제 계속 운전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보험증서를 추가로 제출하면 30만원 상당의 교통카드를 추가로 준다. 진주시는 7월부터 자가운전확인증명서를 첨부하면 10만원짜리 교통카드 외에 5년간 시내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충분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대근 경찰청 운전면허계장은 “현재 중앙정부 차원의 예산이 없고 지자체가 조례로 시행하고 있다”며 “지자체나 한 기관에만 맡기는 건 한계가 있기 때문에 범정부 차원에서 컨트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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