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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추경 무용론을 짚어 보며

중앙일보 2019.05.14 00:18 종합 27면 지면보기
이상렬 경제 에디터

이상렬 경제 에디터

1분기 -0.3% 성장은 쇼크다. 한국 경제가 경기 부진의 터널에 갇히는 징조가 아닌가 하는 불길함을 던져준다.
 

여야, 6.7조원 추경안 대립
구조개혁, 최저임금 동결 등
경제 활력 높일 대책 집중해야

정부와 여당이 이보다 앞서 불황 타개책으로 내놓은 6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추경)예산안에 대해선 대체로 두 가지 시각이 있다. 우선 추가적인 재정 투입이 경기 회복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쪽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재정 확대는 고전적인 경기 부양책이다. 경제가 어려울 땐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이 맞다. 다만 경제위기도 아닌데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경기 부진 흐름이 이 정도 추경으로 달라지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것이다. 잘못된 분석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번 추경은 성장률을 0.1%포인트 정도 끌어올리는 효과를 낼 것이라는 게 정부와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렇게 해서 2.6% 성장을 이뤄내겠다는 것이 지금까지 드러난 정부의 계획이다. 그런데, 2.5%면 경기 부진이고, 2.6%면 경기 회복인가. 결국 추경은 다분히 여야 간 정치적 힘겨루기로 변질돼가고 있다.
 
이럴 바엔 추경을 왜 편성했고, 왜 목을 매느냐는 의문을 갖게 된다. 누구의 책임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추경이 경기를 살리기 위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이냐는 의문이다.
 
서소문 포럼 5/14

서소문 포럼 5/14

우선 청와대와 여당, 그리고 정부는 과연 추경이 적기에 추진된다고 여겼을까. 4월 국회를 마비시킨 패스트트랙 사태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만약 그렇게 내다봤다면 당·정·청은 지겹도록 겪어온 한국의 ‘극한 정치’를 너무 우습게 본 것 아닐까. ‘모든 경제정책은 타이밍’이란 말이 있다. 본 예산이 있는데 긴급하게 편성된 추경 역시 타이밍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국회의 파행, 여야의 극한대립을 보면 5월 추경 통과마저도 현재로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가라앉는 경기를 추경이라도 해서 떠받쳐보려는 정부의 의욕을 탓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실행 가능성에 대한 판단력 부족엔 문제가 있다. 추경이 경기 부양의 ‘전가의 보도’가 되려면 국회 통과와 집행을 전제로 해야 한다.
 
둘째, 추경에 매달리는 사이 벌어질지 모르는 정부의 역량 분산이다. 당·정·청은 12일 추경 처리를 위해 총력 대응하기로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목표가 정해지면 반드시 이뤄낸다는 ‘돌격 앞으로’ 스타일이다. 당·정·청이 결의를 다진 만큼 홍 부총리를 비롯한 경제 관료들은 추경 통과에 더 결사적으로 매달릴 것이다. 우려되는 것은 그사이 추경이 다른 경제 현안의 시급성을 가려버릴까 하는 점이다. 반추해볼 사례가 있다. 외환위기가 몰려오던 1997년 가을, 강경식 부총리는 국회 예결산 심의에 밤늦게까지 붙잡혀 있었다. 많은 경제 관료들은 위기대응을 지휘해야 할 수뇌부의 그런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추경 집착증의 부작용도 있다. 지난 3월 다녀간 국제통화기금(IMF) 연례협의단은 대규모 추경 편성을 권고했고, 그것이 추경을 해야 할 명분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추경이 처방의 전부는 아니었다. IMF는 서비스산업 규제완화를 비롯한 구조개혁도 강하게 주문했다. 한국경제에 대한 IMF의 단골 처방이다. 서비스업 곳곳의 규제만 풀어도 한국 경제의 활기가 상당히 되살아날 것이라는 데 대해 경제 전문가들은 이론이 없다. 그런데도 구조개혁보다 추경을 우선순위에 올려놓는 것이 관료들의 오랜 관행이다. 노동계와 시민단체 등 이해 관계자들 설득보다 추경 편성이 훨씬 손쉬운 성장률 제고 수단이기 때문이다. 추경 중독이 구조개혁 의지를 가려선 안 된다.
 
추경 처리 여부와 별개로 정부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이 있다. 경제적 약자들을 더 골병들게 한 최저임금 인상 행진을 멈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공감대를 정부 내에서 형성하고, 그것이 내년 최저임금 산정에 반영되게 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정부가 그런 의지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한계선상의 자영업자들에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주 52시간제 확대로 인한 버스요금 인상과 노선 축소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도 서둘러 도출해야 한다. 경제운용실력도 더 가다듬어야 한다. 홍 부총리를 비롯한 경제팀 핵심 라인이 1분기 -0.3% 성장을 확인한 것은 발표 하루 전이었다.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 0.3%가 정부가 내심 예상한 수치였다. 그런 실력으로 추경 효과를 성장률 약 0.1%포인트, 올해 성장률을 2.6% 정도로 예상한다고 하니 영 미덥지가 않은 것이다.
 
이상렬 경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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