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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깨어나면 천국

중앙일보 2019.05.14 00:14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호정 문화팀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피아니스트 우치다 미츠코(71)의 공연 티켓 가격은 높은 편이었다. 이달 4일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공연의 가장 비싼 좌석이 165달러(19만4000원)였으니 피아노 독주회치고는 오케스트라 공연만큼 비쌌다. 하지만 팬의 숫자에 비해 연주 횟수가 적은 우치다의 공연장엔 관객이 꽉 찼다.
 
이날 연주곡은 모두 슈베르트 소나타였다. 두 번째 소나타가 끝나갈 때쯤 비싼 티켓 값을 치른 관객 중 하나가 졸기 시작했다. 곡이 완전히 끝나자 옆자리의 나이든 신사가 그에게 말했다. “힘들었지요. 나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어요.”
 
우치다의 해석은 우아했다. 자신을 과도하게 드러내지는 않고 자연스럽게 설계한 특유의 연주였다. 문제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였다. 보통 “베토벤의 소나타를 추앙했으나 미치지 못했다”거나 “지나치게 길고 뚜렷한 흐름이 없다”는 혹평을 받았던 곡들이다. 이런 곡만으로 두시간을 채운 독주회에서 청중 몇이 힘겨운 싸움을 했던 셈이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비교적 분명하다. 첫 주제와 거기에 대응하는 다음 주제가 체계적으로 발전한 후 주제가 다시 나온다. 슈베르트의 소나타는 주제가 제시된 후 마치 중얼거리며 노래하듯 음악이 흘러간다. 조성(調性) 변화는 종잡을 수 없고 주제가 지나치게 많이 반복돼 어리둥절해지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슈베르트의 소나타는 오랫동안 거의 연주되지 않았다. 20세기까지 피아니스트들은 이 곡들의 존재도 몰랐을 정도지만 슈베르트는 피아노 소나타를 21곡이나 남겼다.
 
이 작품들이 연주 목록에 오르기 시작한 건 20세기 들어서다. 기악곡보다는 노래로서의 아름다움을 이해받았고 시적인 흐름에 대해 사람들은 “베토벤을 완전히 이해한 후 자신만의 어법을 만든 것”이라고 풀이하기 시작했다. 스트라빈스키는 “너무 길어서 잠들 지경이면 어떤가. 깨어나면 천국에 와 있을 텐데”라고 했다. 생소한 어떤 것들은 결국 황홀하다. 가치를 인정받는 데 오래 걸리기도 한다. 인내심이 부족해져만 가는 현대 청중에게도 ‘깨어난 후의 천국’이 계속 허락되길 바랄 뿐이다.
 
김호정 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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