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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소주성, 빈약한 통계 위에 세운 모래성이었다

중앙일보 2019.05.14 00:02 경제 3면 지면보기
김도년 경제정책팀 기자

김도년 경제정책팀 기자

한국 경제가 성장한 만큼 내 월급은 올랐을까?  
 

통계 잘못 해석한 ‘임금 없는 성장’
지표 따져봐야 할 ‘분배 없는 성장’
이론 검증 없이 집행한 책임 져야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지만, 이를 실감한다는 사람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대중의 ‘뇌피셜(즉흥적 생각을 검증된 것처럼 여기는 것)’은 ‘실질 임금이 실질 경제성장률보다 낮았다’는 학계 주장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했다. 이는 인위적인 임금 상승을 정당화하는 ‘소득주도 성장’(소주성) 정책의 추진 동력이 됐다.
 
정말 우리 월급은 정체됐을까. 주변엔 분명 국가 복지 정책이 필요한 저소득층이 상당수 존재한다. 한편으론 저개발국 국민이 수개월 월급을 모아야 겨우 살 수 있는 최신형 스마트폰, 올레드TV를 ‘지르는’ 국민도 많아졌다. 한국 사람 주머니가 두둑해졌음은 해외에만 나가도 알 수 있다. 스위스·북유럽처럼 물가 수준이 높은 나라가 아니라면, 대다수 나라에서 ‘돈 쓰는 재미’를 느끼고 있는 한국인 관광객을 보게 된다. 내국인 출국자가 2000년 550만명에서 지난해 2869만명으로 늘어난 이유다.
 
최근 경제학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논쟁은 이런 ‘뇌피셜’에 대한 얘기다. ‘실질 임금이 실질 성장률보다 더 천천히 늘었다’는 이른바 ‘임금 없는 성장론’을 인제야 검증하게 된 것이다. 도출된 합의점은 놀라웠다. 이런 과거 연구 결과(박종규·2013년)가 부실한 통계 분석에 기반을 뒀음을 진보·보수 성향 경제학자 모두가 인정했다.
 
‘전체 국민소득 중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비중(노동소득분배율)이 줄었다’는 담론도 더 규명돼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런 ‘분배 없는 성장’ 담론도 소주성의 토대 중 하나가 됐다. 그동안 학계 일각에선 자영업자 소득을 노동소득에 포함한 지표(조정 분배율)를 근거로 이같이 주장했다.  
 
그러나 이 역시 자영업자 소득을 노동소득으로 봐야 하는지부터 명확하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이를 인정하더라도 노동소득분배율 하락은 자영업자 소득 감소 탓이지 노동자 임금이 줄어든 탓이 아니라는 반박(박정수)이 제기됐다. 지표가 고꾸라진 것은 자영업자가 어려워진 탓인데, 정부는 엉뚱하게도 노동자 임금을 올리는 처방을 해왔다는 의미다.
 
대중이 이해하긴 쉽지 않은 논쟁이다. 세부 사항은 학자들의 연구가 더 필요한 대목도 많다.  
 
그러나 이는 조선 시대 성리학 원리를 논한 ‘사단칠정’ 논쟁에 비하면 국민 삶에 훨씬 가까이에 있다. 당장 내 ‘지갑의 두께’를 결정하는 경제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근거가 논쟁으로 도출되는 결론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슈를 주도하고 있는 서강학파와 학현학파 주장 모두에서 귀담아들을 부분도 적지 않다. 분명한 점은 문재인 정부 2년 동안 추진된 소주성 정책이 통계 해석에 오류가 있거나, 구체적 검증이 필요한 지표 위에 설계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논쟁이 왜 지금에서야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론적 검증 없이 정책을 집행한 정부가 일단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나랏일’에 해바라기처럼 곡학아세해 온 ‘어용 지식인’들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소주성 토대 논쟁’을 처음 제기한 박정수 서강대 교수가 요즘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의심하고 검증했어야 했는데, 반성 많이 하고 있다”라고. 하지만 궁금해진다. 진정 반성해야 할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김도년 경제정책팀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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