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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 체력단련실·드레스룸···학교가 설립자 왕궁이었다

중앙일보 2019.05.13 13:36
전주 한 사립학교 재단 설립자 김모(74)씨 부부가 중학교 교실을 불법 개조해 드레스룸 등을 갖춘 사택으로 바꾼 모습. [연합뉴스]

전주 한 사립학교 재단 설립자 김모(74)씨 부부가 중학교 교실을 불법 개조해 드레스룸 등을 갖춘 사택으로 바꾼 모습. [연합뉴스]

드레스룸(옷방)과 체력단련실, 욕실 등을 갖춘 주거 공간…. 어느 유명 연예인의 집이 아니다. 전북 전주의 한 사립학교 재단 설립자 김모(74)씨가 중학교 교실을 불법 개조해 만든 김씨 부부 사택(私宅)이다.  
 

檢, 30억 빼돌린 재단 사무국장 기소
특경법상 횡령…70대 前이사장 구속

현재 재단 이사장은 김씨의 아들이 맡고 있다. 딸은 중학교 행정실장이고, 배우자는 재단 이사다. 김씨 일가가 수십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하고, 교직원들에게 이른바 '갑질'을 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전주지검은 13일 학교 공사비 등 수십억원을 빼돌린 혐의(횡령)로 전주 모 사학법인 재단 사무국장 정모(52)씨를 구속기소 했다. 정씨는 2009년부터 최근까지 약 10년간 재단이 소유한 중학교와 여고의 시설 공사와 급식 자재 단가를 부풀려 집행한 뒤 차액을 돌려받는 수법 등으로 30억원가량의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다. 검찰은 설립자 겸 전 이사장인 김씨를 같은 혐의로 지난 9일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사무국장 정씨를 시켜 학교 예산을 빼돌려 사적 용도로 썼다. 두 사람 모두 범행을 자백했다. 다만 김씨 등은 검찰에서 "학교 발전을 위해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 한 사립학교 재단 설립자 김모(74)씨 부부가 주거 공간으로 바꾼 중학교 교실 모습. [연합뉴스]

전주 한 사립학교 재단 설립자 김모(74)씨 부부가 주거 공간으로 바꾼 중학교 교실 모습. [연합뉴스]

검찰 조사 결과 김씨 일가는 학교 책걸상부터 급식 식자재까지 학교 대부분의 시설과 물건을 축재 수단으로 삼았다. 전북교육청은 지난 달 "학교를 사유재산처럼 사용한 설립자 일가와 교직원 비리를 포착했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김씨 일가와 교직원 11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김씨 일가의 횡령 금액이 지금보다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구속된 사무국장은 설립자의 '오른팔'이자 재단과 거래한 업체 수십 곳의 리베이트 통로로 밝혀졌다. 본인도 이 과정에서 일부 돈을 유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과 전북교육청에 따르면 김씨 일가는 계약서 작성 후 실제 공사(노역)는 중·고등학교 행정실 시설관리직원 4명에게 시켰다. 비자금은 설립자 가족의 카드비와 보험료·의복 구매·골프 비용 등으로 쓰였다.  
 
설립자 김씨는 학교 시설을 수년간 부부 사택으로 썼다. 중학교 2층 교실을 드레스룸 등을 갖춘 주거 공간으로 개조했다. 김씨는 2014년에도 학교 도서실을 없애고 부부 사택을 만들어 사용하다 교육청에 적발됐다. 당시 도서실은 원상 복구되고, 이사장이던 김씨는 징계를 받아 아들에게 이사장 자리를 물려줬다. 명목만 이사장인 아들은 현재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학교 옥상을 태양광 사업자에게 임대했다. '학교 기본 재산은 임대할 수 없다'는 규정을 어긴 것이다. 임대료는 연간 240만원을 받았고, 태양광 사업자는 연간 3000여만원씩 지난 4년간 1억2000만원을 챙겼다. 전북교육청 감사 결과 임차인은 설립자 아들인 이사장이었다. 아들 김씨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돈을 받았고, 관리는 행정실 직원이 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전북교육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9일 전북 전주시 전북교육청에서 '비리종합세트 사학법인 해산 및 사학공공성 강화 종합대책 수립'을 촉구하는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전북교육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9일 전북 전주시 전북교육청에서 '비리종합세트 사학법인 해산 및 사학공공성 강화 종합대책 수립'을 촉구하는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김씨는 외조카 배우자를 행정실 직원으로 허위로 올린 뒤 인건비도 가로챘다. 지난 7일엔 이번 비리로 검찰 조사를 받은 중학교 교직원 A씨(57)가 자살하기도 했다. A씨는 주변인에게 '이사장이 책임을 나한테 미룬다'는 식으로 불만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지검 관계자는 "학교 운영 예산의 90%가 국고보조금이다. 이 돈을 (김씨 일가가) 빼먹은 만큼 학생들이 저질 교육을 받은 셈"이라며 "왜 이런 비리가 일어났는지 사립학교법 등 제도적 허점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횡령 외에 다른 범죄도 있어 수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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