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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만 먹으면 하루 끝… 퇴직자 시간, 왜이리 빨리 갈까

중앙일보 2019.05.13 11:00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29) 
직장 다닐 때만큼 급한 일이 많지 않으니 언제나 충분히 여유 부리게 된다. 그러니 무엇을 하든 시간이 꽤 지나있을 수밖에 없다. [사진 박헌정]

직장 다닐 때만큼 급한 일이 많지 않으니 언제나 충분히 여유 부리게 된다. 그러니 무엇을 하든 시간이 꽤 지나있을 수밖에 없다. [사진 박헌정]

 
퇴직 후 좋은 건 귀찮은 식사 약속이 없어졌다는 점이고, 서운한 것은 식사 약속이 없다는 점이다. 연락 오면 귀찮고 연락 없으면 서운한 이 모순, 이 시대 교류관계의 일면 아닐까.
 
저녁 약속은 시간과 비용이 서로 부담스러워 낮에 자주 만난다. 그런데 직장인일 때는 몰랐는데 평소 집에 있는 퇴직자에게는 시내에서 밥 한번 먹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특히 현역들과의 식사는 더 그렇다. 그들은 열두 시쯤 사무실에서 겉옷만 들고나오면 되지만 나는 동네에서처럼 면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나갈 수 없으니 미리 신경 써서 외출준비를 해야 한다.
 
북적거리는 식당에서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밥을 뚝딱 먹고 근처에서 차 한잔 마시다 보면 점심시간이 끝난다. 시간을 힐끔거리던 상대방이 사무실로 들어가고 나면 벌건 대낮에 혼자 집에 들어와야 한다. 모처럼 옷 다려 입고 머리도 잘 매만지고 나갔는데…. 그러니 점심 약속은 비효율적이다. 어떤 때는 시내 여기저기 들러 처리할 일을 몇 개쯤 미리 엮은 후 약속을 잡기도 한다.
 
퇴직자들과의 만남이 점점 늘면서 시간 제약을 받지 않기 시작했다. 식당 붐비는 시간대를 피해서 술도 한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실컷 하다 헤어진다. 어느 정도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느껴지는 게 점심만 먹어도 하루가 후딱 지나간다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더니 나도 벌써 그런 건가? 오늘 하루도 시내 나가서 밥 먹은 것뿐이네?’. 물론 즐겁고 중요한 일이긴 한데 뭔가 허비한 느낌이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은퇴 후 대학원에 다니던 한 선배님도 그렇다며 점심 약속이 부담스럽다고 한다.
 
점심만 먹어도 하루가 후딱 지나간다.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더니 나도 벌써 그런 건가? [사진 박헌정]

점심만 먹어도 하루가 후딱 지나간다.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더니 나도 벌써 그런 건가? [사진 박헌정]

 
회사원 시절의 점심시간은 식사 후 병원 다녀오거나 낮잠도 잘 수 있었던, 고무줄처럼 늘어나던 60분이었다. 그뿐인가, 업무시간에는 무슨 일을 그렇게 많이 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어떤 역사적인 성과를 낸 기억도 없지만, 다이어리에 늘 엄청난 양의 업무가 적혀있었다. 지금은 밥 한번 먹으면 하루가 다 지나가는데 내가 그렇게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일했던 게 맞을까?
 
정말 은행만 다녀와도 반나절이 지나간다. 이게 참 이상하다. 물리적으로 계산하면 직장인보다 잠을 더 자는 것도 아니고, 접대나 부서회식에 시간 빼앗기는 것도 아니고, 출퇴근에 들던 두 시간이 더 확보되었는데도 하는 일은 없이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똑같은 하루 24시간인데 왜 더 빨리 지나갈까?
 
그래서 내가 흘린 시간이 도대체 어디 떨어져 있는지 찾아보는 일에 착수했다. 일단 집안부터 구석구석 뒤져보았는데, 전에는 못 본 척 외면하던 일들이 조금씩 보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곳곳의 너저분한 것들 정리하고, 생색내는 일 없이 조용히 설거지해치우고, 재활용 배출도 세심해지고… 집안의 묵은 먼지가 많이 없어지고 강아지도 더 깨끗한 밥그릇에 밥을 먹게 되었다.
 
퇴직자 신분인 내게 이 세상이 요구하는 일정량의 시간이 있음을 알아냈다. 퇴직자는 시간이 많다는 전제하에 ‘나눔’을 요구하는 것인데, 가령 금융기관에서는 볼 일 다 봤어도 쉽게 놔주지 않고 연계상품을 권한다. 양복 벗으니 동네를 돌아다녀도 말 붙이는 사람이 많아지고 나도 잘 받는다. 어머니와 통화할 때에도 예전처럼 용건 중심이 아니라 주변 분들과의 일상 등 ‘수다 모드’로 들어가신다. 아내는 반강제적 재능기부를 요구하며 자기 일 일부를 넘긴다.
 
무엇보다도 행동이 느려져서 많은 일을 할 수 없다. 절도 있게 수직적으로 내려오는 지시가 없으니 특유의 ‘귀차니즘’이 발동하고, 모처럼 예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나면 충분한 회복과 충전시간이 필요하다. 신호등이 깜빡거릴 때 뛸 수 있는 신체적 젊음은 남아있지만, 다음 신호를 기다리게 되었다. 아예 걸음 자체가 늦어졌다.
 
나이 들면 걸음부터 느려진다. 신체적 활력이 저하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목표지향적인 삶에서 조금씩 해방되기 때문이다. [사진 박헌정]

나이 들면 걸음부터 느려진다. 신체적 활력이 저하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목표지향적인 삶에서 조금씩 해방되기 때문이다. [사진 박헌정]

 
이해관계 없는 일에 투자되는 시간도 늘어났다.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자주 들었지만 잘 모르던 개념에 대해 정리해보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리고 정치 쪽에도 왜 그리 관심이 생기는지, 이거야말로 어디서 떠들어봐야 생기는 것 없이 적만 만들 테니 입 꾹 다물고 있다.
 
물론 나에게 흡수되는 시간도 있다. 책을 읽어도 더 집중하고, 느낌 중심이던 글쓰기에서도 가끔 ‘생각’이란 것에 빠져볼 때가 있다. 하루 한 번씩 아내와 커피 마시러 바깥에 나가는 것도 몸과 마음을 챙기는 일이다.
 
이상이 내가 찾아낸 시간의 ‘누수(漏水) 공간’들이다. 그런데 이런 것 말고도 비는 시간이 많다. 원인을 더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아마 끝까지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아니, 못 찾는 척하지만 답은 이미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게 있을 자유’ 속으로 전부 빠져들어 가고 있지 않을까.
 
퇴직자의 생활도 회사처럼 출퇴근제라면 모두 퇴직 후에 새로운 지평을 열 것 같다. 자기가 목표한 것에 24시간 투자할 테니 전문가가 되지 못할 사람이 있을까. 그렇지만 우리는 대부분 그런 거래를 원하지 않는다. 한번 자유를 맛본 이상, 자유와 실리를 바꾸는 것에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박헌정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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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정 박헌정 수필가 필진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 25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50세에 명퇴금 챙겨 조기 은퇴해서 책 읽고, 글 쓰고, 여행하는 건달이자 선비의 삶을 현실화했다. 은퇴 후 도시에 뿌리 박혀버린 중년의 반복적이고 무기력한 삶에 저항하기로 했다. 20대는 돈이 없어 못하고, 30-40대는 시간이 없어 못하고, 60대는 힘과 정보가 없어 못하던 일들, 꿈만 같지만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할 일들, 50대의 전성기인 그가 그 실험에 도전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인생 환승을 앞둔 선후배들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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