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女구급대원 '위험순직' 인정…남편 소방관 "기쁘다가도 슬퍼"

중앙일보 2019.05.13 05:01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해 5월 2일 전북 전주시 대송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강연희 소방경의 빈소에서 강 소방경 남편 최태성(53) 소방위를 위로하고 있다. [뉴스1]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해 5월 2일 전북 전주시 대송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강연희 소방경의 빈소에서 강 소방경 남편 최태성(53) 소방위를 위로하고 있다. [뉴스1]

"귀하의 청구 건은 2019년 제4회 심사 결과 '인용'되었습니다."
 

정부, 지난달 30일 '재심 인용' 통보
故 강연희 소방경 사망 1년 되는 날
최태성 소방위 "처가 식구와 첫 제사"
두 아들 '소방관 부모' 자랑스러워해
최 "아내 살아 있다면 좋았을 텐데…"

전북 김제소방서 화재진압대원 최태성(53) 소방위는 지난달 30일 국무총리 소속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에서 보낸 이 '26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받고 만감이 교차했다. 인사혁신처는 이날 "(4월 29일) 재심 결과 강연희(사망 당시 51세) 소방경의 위험직무순직 유족보상금 청구 건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최 소방위는 취객을 구하다 숨진 익산소방서 구급대원 강 소방경의 남편이다.       
 
강 소방경은 지난해 4월 2일 익산역 앞 도로에서 술 취해 쓰러진 윤모(48)씨를 119구급차에 태워 병원으로 옮기다가 봉변을 당했다. 윤씨는 강 소방경 머리를 주먹으로 대여섯 차례 때리고 "○○년, XX를 찢어버린다" 등 모욕적인 말을 퍼부었다. 윤씨는 폭력 등 전과 44범이었다. 강 소방경은 사건 이후 불면증·어지럼증·딸꾹질에 시달리다 5월 1일 뇌출혈로 숨졌다.  
 
인사혁신처는 "구급 업무의 특성, 사건 발생 당시의 위급한 상황, 현장 조사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번 재심 결정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 1차 심사에서 "강 소방경의 사망은 공무원 재해보상법에서 정한 (일반)순직에는 해당하나 같은 법에서 정한 위험직무순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힌 결론을 바꾼 것이다.    
 
지난해 4월 2일 오후 1시 20분쯤 전북 익산시 원광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윤모(48)씨가 자신을 구해준 구급대원 강연희(51·여) 소방경의 머리를 때리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 캡처. [뉴스1]

지난해 4월 2일 오후 1시 20분쯤 전북 익산시 원광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윤모(48)씨가 자신을 구해준 구급대원 강연희(51·여) 소방경의 머리를 때리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 캡처. [뉴스1]

위험직무순직 공무원은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 재해를 입고, 그 재해가 직접적 원인이 돼 사망한 공무원을 말한다. 행정직 공무원이 출·퇴근하다 교통사고로 숨져도 일반순직이지만, 위험직무순직은 소방공무원·경찰·군인·교도관 등에 한해 인정된다. 위험직무순직이 인정되면 일반순직보다 더 많은 보상금과 연금이 유족에게 지급된다.  
 
정부가 강 소방경의 죽음을 '위험직무순직이 맞다'고 인정한 4월 30일은 그가 숨진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최 소방위는 이날 자정 무렵 전주 집에서 처가 식구들과 함께 아내의 첫 제사를 지냈다. 그는 1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처제와 처형이 음식을 준비해 와 제사상을 차렸다. 아내가 좋아하던 망고도 사 왔다"고 했다. 강 소방경은 옻 알레르기가 있어 망고 씨에 닿으면 안 되는데도 과일 중 망고를 제일 좋아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부부 소방관이었다. 강 소방경이 갑자기 먼저 떠난 뒤 최 소방위 홀로 중학교 1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인 두 아들을 키우고 있다. 이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두 아들에게 그는 위험직무순직 가결 소식을 전했다. 최 소방위는 "남자애들이라 얘기만 듣고 고개만 끄덕였다. 표현은 안 했지만 (무슨 뜻인지) 아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 3월 4일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전북 익산소방서 정은애 인화119안전센터장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취객을 구하다 숨진 부하 구급대원 고(故) 강연희 소방경에 대해 "위험직무순직이 아니다"고 결정한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사진 익산소방서]

지난 3월 4일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전북 익산소방서 정은애 인화119안전센터장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취객을 구하다 숨진 부하 구급대원 고(故) 강연희 소방경에 대해 "위험직무순직이 아니다"고 결정한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사진 익산소방서]

두 아들은 친구들에게 자랑할 정도로 '부부 소방관'인 부모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19년간 구급대원으로 헌신한 어머니가 본인이 구한 사람 때문에 숨지자 '패닉'에 빠졌다. 최 소방위는 "다행히 두 아들은 서로 없으면 심심해할 만큼 우애가 깊다. 큰아들이 방 청소와 설거지를 거들고 (축구 선수인) 동생도 잘 챙긴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큰아들이 '엄마는 국립묘지에 언제 가냐'고 물었을 때 가슴이 아팠다"며 "늦게나마 위험직무순직이 인정돼 아내의 국립묘지 안장 문제도 잘 풀릴 것 같다"고 했다. 국립묘지 안장 여부는 국가보훈처에서 심사하지만, 국립묘지법상 현장 활동 중 사망했거나 부상을 당해 상이 등급을 받고 숨진 공무원이 대상이어서 강 소방경의 유골은 사망 후 1년 넘게 전북 군산의 한 납골당에 안치돼 있다.  
 
최 소방위는 제사를 지낸 이튿날(5월 1일) 추모관을 찾아 아내 넋을 기렸다. 작은아들과 처가 식구들도 동행했다. 중간고사 기간인 큰아들만 빠졌다. 최 소방위는 재차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지난 2월 강 소방경의 위험직무순직이 부결되자 5만 명의 소방공무원들은 "이게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 사망한 공무원에 대한 예우냐"며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에 나섰다. "피는 펜보다 강하다"는 뜻이 담긴 '#피_더펜' 해시태그 운동도 병행했다.
 
최 소방위는 "(아내 사망) 1년 되는 날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서도 복잡한 심경을 나타냈다. "기쁘다가도 더 슬퍼진다. 이게(위험직무순직이) 무슨 필요가 있나. 살아 있다면 좋았을 텐데…."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