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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송현정 논란'이 보여준 대통령과 나랏님 사이

중앙일보 2019.05.13 00:03 종합 16면 지면보기
유성운 정치팀 기자

유성운 정치팀 기자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 대담에서 정작 핫 이슈는 인터뷰를 진행한 송현정 KBS 기자였다. 내용상으로 다소 야권 편향적인 질문을 했다는 점뿐 아니라, 겉으로 보이는 태도가 “무례하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었다. “매끄럽게 진행하기보다 질문자가 얼굴을 찡그리고만 있다. 소통의 기본이 아니다” “답을 제대로 듣지 않고 끼어들기 바빠 정작 답변자의 흐름을 끊었다”는 지적이 문 대통령 지지층에서 강하게 나왔다.
 
문 대통령 지지층에서 언론의 ‘태도’를 지적하는 건 처음은 아니다. 임기 초반에도 일부 언론에서 김정숙 여사를 ‘김정숙 씨’라고 지칭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비슷한 시기 문 대통령이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직접 밥을 덜어 먹는 사진을 소개했던 언론사도 ‘댓글 폭탄’에 시달렸다. “밥도 혼자 퍼서 먹었다”라는 대목 중 ‘퍼서’라는 표현이 “문 대통령을 하대한다”는 공격이었다.
 
송 기자를 향한 비난의 이면엔 언론에 대한 누적된 반감의 표출일 수도 있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여권 진영에선 보수 진영이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아 그 연장선상에서 비극적 죽음까지 초래했다고 여긴다”라며 “해당 인터뷰에서 기자가 ‘독재자’라는 표현을 쓰면서 불편한 질문으로만 점철해 간 것이 지지자들 사이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 때라면 감히 저렇게 했겠나’라는 반감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질문 수위와 태도를 두고서 기자 개인을 향한 비난은 다수에 의한 억압이란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번 대담 뒤 송 기자를 향한 비판은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올랐다. 특히 이같은 사회적 분노 현상에 대해선 “제도적으로는 민주적인 공화정을 지향하나 사회의식엔 조선왕조의 봉건적 사고가 자리해 있는, 한국적 지체현상이 여과 없이 폭발한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권위주의 시대 대통령을 비판하면서도 대통령에 대한 예의와 의리를 강조하는 괴리현상”이라고 전했다. 엄태석 서원대 교수도 “한국에서는 대통령을 여전히 ‘시민 대표’보다는 ‘통치자’라는 개념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군주적 사고관은 일반 시민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인 것처럼 강조하는 게 대표적 예다. 여권에서도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 대해 “자신이 모시던 대통령의 죽음 앞에 조문조차 하지 못하는 신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국민이나 공동체보다 ‘우리 주군’이 먼저라는 사고방식의 발로다.
 
올해는 민주공화국의 출발로 보는 대한민국임시정부 100년이다. 민주공화국이란 제도로만 완성될 수 없음을, 결국 시민사회의 성숙한 의식이 기본이어야 함을 이번 ‘KBS 대담 논란’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유성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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