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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세계 경제 전망] 덩치 커진 중국의 맷집 앞에 미국 일방적 승리 어려워졌다

중앙일보 2019.05.13 00:03 종합 26면 지면보기
‘투키디데스 함정’으로 풀어본 미·중 무역전쟁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패권국과 신흥 강대국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미·중 무역 전쟁을 통해 생생히 되풀이되고 있다. 미·중은 지난 주말 워싱턴 합의가 ‘노딜(No Deal)’로 끝나면서 오늘부터 4차 관세 보복에 들어간다. 화력은 미국이 막강하다. 1~4차에 걸쳐 5750억 달러어치의 중국 제품에 25% 관세 폭탄을 투하하는 반면에 중국은 1~4차에 걸쳐 1550억 달러에 그칠 전망이다. 결과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미국의 중국 견제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사실은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미국은 영·독·러·일 차례로 꺾어
중국 경제력, 이미 미국 70% 도달
미국이 쉽게 압도하기 어려운 형국
한국은 독자적 힘 길러야 살아남아

미국은 지금까지 네 번의 투키디데스 함정을 건너왔다. 모두 완승이었다. 18세기에 한 번, 20세기에 세 번의 대결이 있었다. 첫 번째는 종주국 영국과의 독립전쟁이었고, 두 번째는 2차 대전에서 연합국을 이끌고 독일을 제압했던 때였다. 세 번째는 냉전에서 러시아를 누를 때였다. 이 세 번의 승부는 전쟁 또는 냉전을 거쳤는데 본질은 경제적 패권 다툼이었다. 네 번째는 2차 대전 이후 다시 맞붙은 일본과의 경제 패권 다툼이었다. 미국은 엔화 값을 올리는 플라자합의를 통해 일본을 눌렀다.
 
미국에 도전했던 나라들은 경제적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해가 지지 않았던 영국은 세계 국내총생산(GDP) 5위 국가로 떨어졌고 지금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그나마 독일은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GDP 순위 4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올해 성장률이 0.8%에 그칠 것으로 예상할 정도로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의 경제 봉쇄에 막혀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땅이 넓은 나라임에도 지난해 한국에 GDP 순위 11위를 내놓았다.
 
자산 규모가 한때 미국 전체를 추월할 기세였던 일본은 2010년 중국에 경제 대국 2위 자리를 내줬다.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지난해 GDP는 5조710억 달러로 추정된다. 20조5130억 달러로 추정되는 미국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더구나 13조4570억 달러로 추정되는 중국에는 3분의 1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풀어본 미국의 다음 상대는 중국이다. 21세기 세계 경제의 판도가 여기에 달려 있다. 양국 모두 핵무기 보유국이라 전쟁은 원하지 않는다. 대안은 무역전쟁 밖에 없다. 선전포고는 지난해 3월 2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에서 4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적자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운 행정명령 서명이었다. 중국도 맞대응하면서 분쟁이 격화하자 트럼프는 지난해 12월 1일 휴전을 선언했다. 양국은 올해 들어 경제사절단을 서로 파견해 화해를 모색했지만,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 내 국가자본주의 지지자들이 류허(劉鶴) 부총리가 주도해 만든 양보안을 거부하면서 협상이 결렬됐다”고 보도했다. 트럼프가 즉각 트위터로 “추가 관세 부과” 소식을 날린 배경이다. 이 충격으로 UBS증권의 추산으로는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최대 2%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시진핑 주석은 끝까지 가보자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미·중 무역 전쟁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왜 이번 반전이 시작된 것일까. 초반에는 미국의 압승이 예상됐다. 군사력과 경제력을 겸비한 데다 일본 및 유럽 국가들과의 결속도 미국의 패권을 뒷받침했다. 중국 경제가 1978년부터 시작된 개혁개방 40년 동안 과도한 부채를 짊어지고 있다는 것도 약점으로 부각됐다. 중국 내에서도 도광양회(韜光養晦, 야심을 숨기고 힘을 기르다)를 너무 일찍 끝낸 것 아니냐는 자성론까지 나왔다.
 
그러나 포연이 걷히면서 양상이 당초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 시간은 중국 편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 경제는 앞으로 연 5%만 성장해도 2030년경 미국을 뛰어넘는다.
 
설령 무역 전쟁이 계속되더라도 이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 금융위기나 경기침체만 일어나지 않도록 상황만 잘 관리하면 갈수록 중국의 힘이 세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츠푸린(遲福林) 중국개혁발전연구원장의 분석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그는 세계 경기 둔화로 중국도 단기적으로 경기가 둔화될 수밖에 없다고 인정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얘기가 달라진다. 츠푸린 원장은 “여전히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올 1분기 예상을 뒤집어 6.4%의 성장률을 달성한 것은 중국 경제의 맷집이 세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은 위력적이다. 빅데이터·인공지능(AI)·자율자동차·전자상거래는 미국의 수준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미래 기술의 승부처가 될 AI 분야 ‘인용지수 상위 1% 논문 비중’에서 중국이 미국을 따돌릴 것으로 전망(앨런 인공지능연구소)되고 있다. 미국이 ‘인공지능 전략’에 중국의 위협을 명시한 이유다.
 
이들 4차 산업 분야에서는 중국 기업들이 미국과 맞설 만한 근육질을 자랑하고 있다.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가 미국의 근육이라면, 중국에선 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가 선두에 서 있다. 이들 기업 대다수는 세계 시가총액 상위 10위에 진입한 지 오래다.
 
특히 화웨이는 미국을 직접 위협하는 중국의 간판 공격수로 떠올랐다. 미국은 매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창업자의 딸이자 최고재무책임자인 ‘멍완저우(孟晩舟) 체포 작전’까지 벌이고 주요 동맹국들에 화웨이 사용 금지를 요청했지만, 독일은 물론 미국의 형제국인 영국조차 “우리가 알아서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중국이 유라시아를 하나로 연결해 21세기 해상·육상 실크로드를 만드는 ‘일대일로(一帶一路)’에 참여해 미국의 중국 봉쇄를 무력화하고 있다.
 
더 위력적인 것은 중국이 4차 산업을 이끌어간 유니콘 창출 능력도 압도적이라는 사실이다. 유니콘은 ‘기업 가치 1조 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 갈 기업들이다. 미국이 156개로 최대 국가이지만 중국도 92개사를 보유하고 있다. 미·중의 GDP 비율과 마찬가지로 유니콘에서도 중국은 GDP 규모와 마찬가지로 미국에 대해 60% 수준의 파워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쿠팡(전자상거래)·크래프톤(게임)·비바리퍼블리카(간편 송금) 등 6개에 불과하다.
 
중국은 한국 경제의 마지막 기둥인 반도체 ‘굴기(일으켜 세움)’의 완성도 눈앞에 두고 있다. 선진국의 제조업 수준을 달성한다는 ‘중국 제조 2025’ 달성과 함께 반도체 자급률을 75%로 높인다는 계획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이쯤 되면 도광양회는 더는 의미가 없어진다. 덩치가 너무 커 어딘가 몸을 감추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결국 미·중 무역 전쟁, 나아가 패권 다툼의 결말이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은 지난 200여년 동안 영·독·러·일을 전쟁 또는 무역을 통래 차례로 눌러 왔지만, 중국에 대해선 일방적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물론 중국이 GDP 1위를 달성해도 군사력을 비롯한 종합 국력에선 여전히 패권국이 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중국은 일대일로·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중국 주도의 신경제 질서 구축을 통해 패권에 다가설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트럼프가 ‘아메리카 퍼스트’에 나서면서 미국은 주요 동맹국들과 불화를 겪고 있다. 그럴수록 미국의 경제 파워도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지난달 26일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각국 정상 등 150개국 대표단이 대거 참석한 것은 이런 ‘축의 이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국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중국 경제가 강해질수록 기회도 있지만, 위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회는 살리기 어렵고, 위협은 커질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기회라고 하면 중국 경제가 계속 성장하면서 한국이 그 추세에 기대어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중국이 한국 자본에 설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 고통스럽다.
 
중국은 이제 한국의 제조업은 다 따라잡았다. 토종 기업을 앞세워 이제는 세계 경제의 주도자로 나서고 있다. 현대차가 중국에서 고전하고, 세계 최고였던 삼성전자 스마트폰이 중국 시장점유율을 1%도 지키기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 한국은 결국 미·중 경제 어느 쪽에 기댈 생각 말고 독자적 힘을 길러야 한다. 4차 산업의 총아인 바이오·AI의 실력을 키우고 반도체의 초격차를 서둘러 확보해야 한다. 이것이 미국으로부터는 보호무역주의, 중국으로부터는 기술 굴기에 따른 한국 기업 따돌리기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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