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삼중 스님이 지닌 염주에 깃든 사형수의 삶과 죽음

중앙일보 2019.05.12 13:30
박삼중 스님은 50년 동안 교정시설을 찾아 사형수와 무기수 교화 활동을 해오고 있다. 두 개의 염주에는 사형수의 삶과 죽음의 사연이 담겨 있다. 지난 4월 경북 경주 자비사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한달에 한번 서울구치소로 교화활동에 나선다. [중앙포토]

박삼중 스님은 50년 동안 교정시설을 찾아 사형수와 무기수 교화 활동을 해오고 있다. 두 개의 염주에는 사형수의 삶과 죽음의 사연이 담겨 있다. 지난 4월 경북 경주 자비사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한달에 한번 서울구치소로 교화활동에 나선다. [중앙포토]

경북 경주 자비사에 거처하는 박삼중 스님은 두 개의 염주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구명운동으로 풀려난 A씨가 과거 사형수 시절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염원을 담은 염주이고, 다른 하나는 1989년 사형이 집행된 ‘서진 룸살롱’ 사건의 고금석(당시 26세)이 생전에 금강경 법문을 새긴 것이다. 두 사형수의 삶과 죽음이 스며 있다.
 
삼중 스님은 평생을 죽음을 앞둔 사형수의 교화에 힘써왔다. 인연을 맺어온 사형수만 수백명에 이른다. 그는 1968년 재일동포의 차별에 항의하며 일본 야쿠자 단원을 총기로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고(故) 권희로(2010년 별세·당시 82세)씨 구명운동도 벌였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지난 9일 삼중 스님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A씨는 19년 전 부처님 오신날 특사로 자유의 몸이 됐다.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사형수 
삼중 스님과 A씨의 인연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A씨는 3인조 은행 강도살인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서울구치소에 복역 중이었다. 이미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상황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형수 법문을 해온 삼중 스님은 그를 만났다. A씨의 손에는 굵은 알의 염주가 들려 있었는데,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바람이 새겨져 있었다.
 
삼중 스님은 사형수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한다는 게 의아해 물어봤다고 한다. 이에 A씨는 의연한 어조로 “스님, 저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고 말했다. 삼중 스님은 그의 말이 진실인지 확인하려 A씨 모르게 두 명의 공범을 면회했다. 무기수였던 한명의 공범(당시 30대 중반)은 이미 숨진 뒤였다. 나머지 한명(당시 10대 후반)은 강도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했다. 이 공범은 본인의 처지보다는 오히려 가족이 있는 A씨를 걱정했다고 한다. 
박삼중 스님. [중앙포토]

박삼중 스님. [중앙포토]

 
점점 드러나는 고문, 허위자백 
이후 삼중 스님은 A씨를 믿고 구명운동을 시작했다. 변호사회 등의 도움으로 사건이 조작됐다는 의구심이 커졌다. 범행현장은 숨진 피해자가 흘린 피투성이였지만, A씨 의류에서는 혈흔은 발견되지 않았다. 옷을 태우거나 버린 정황도 찾지 못했다. 사건 당일 A씨는 얼굴 상처로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범행현장 답사를 온 것으로 의심되는 또 다른 3인조 중 붕대를 감은 이를 봤다는 직원은 없었다. 숨진 피해자의 상처도 설명하지 못했다. 결국 A씨는 경찰의 고문에 허위 자백을 했음이 드러났다. 
 
각계의 노력으로 A씨는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감형됐고, 결국 19년 만에 특사로 풀려나기에 이른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A씨는 복역생활에도 서예 등을 익혀 교정작품전에 출전, 입상하기도 했다. A씨는 석방 후 자신을 고문한 형사를 찾아가 용서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현재는 자신을 믿고 기다려준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서진 룸살롱 집단살인사건 피고인 고금석이 사형을 구형받았다. [중앙포토]

서진 룸살롱 집단살인사건 피고인 고금석이 사형을 구형받았다. [중앙포토]

 
서진 룸살롱 사건 고금석의 참회 
고금석은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을 참회하며 수감 생활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형집행 전까지의 짧은 생을 나눔에 썼다. 영치금을 넉넉하지 못한 형편의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보내주는가 하면, 형 집행 후에는 신체 일부를 기증하기도 했다. 
 
삼중 스님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무리 악인이라도 죽음을 앞에 두고는 선한 사람이 됐다. 이들은 나의 스승이자 부처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처님은 한 평생을 거리에서 걸식하며 어렵게 사는 이들의 눈물을 닦으셨다.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찾아 돕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불교계도) 부처님 오신날에 화려한 형식적인 봉축 행사를 하기보다는 거리로 나서는 자비행을 실천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