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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마동석과 올해 칸영화제 초청된 29살 한국 신인감독

중앙일보 2019.05.12 07:15
연제광 감독 단편 '령희' 포스터.

연제광 감독 단편 '령희' 포스터.

올해 제72회 칸영화제에 나설 한국영화는 송강호가 주연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공식경쟁)이나 마동석 주연의 ‘악인전’(감독 이원태, 미드나잇 스크리닝)만이 아니다. 29세 신예 연제광 감독도 단편 ‘령희’로 시네파운데이션(학생단편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전 세계 2000여 개 출품작 중 11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후보 17편에 선정됐다.  

 
“작년에 기대를 많이 하고 출품했다 탈락해서 아쉬웠거든요. 이번엔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서울에서 미리 만난 그가 쑥스럽게 웃었다. '령희'는 그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과정 졸업작품. 2년 전 그는 단편 ‘더 게스트’가 비경쟁부문인 ‘쇼트필름코너’에 상영되며 처음 칸영화제에 다녀왔다. “경쟁부문으로 다시 찾고 싶다는 조바심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단속 중 숨진 불법체류자 실화가 토대 
단편 '령희'로 오는 14일 개막하는 제72회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학생단편경쟁부문)에 초청된 연제광 감독을 한국에서 미리 만났다. [사진 연제광]

단편 '령희'로 오는 14일 개막하는 제72회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학생단편경쟁부문)에 초청된 연제광 감독을 한국에서 미리 만났다. [사진 연제광]

‘령희’는 한국에서 함께 살며 공장에 다니는 중국 동포 홍매(한지원)와 령희(이경화)의 이야기. 공장에 들이닥친 불법체류 단속을 피하려다 령희가 죽자, 공장 측은 이를 은폐하려 한다. 그날 밤 홍매는 공장이 빼돌린 령희의 시신을 찾아 나선다.  
 
감독이 뉴스로 접한 실화가 토대가 됐다. 그는 “불법체류자가 단속을 피하려다 추락사했는데 서류에는 자살로 처리된 사건이 있었다”며 “수사로 진상이 밝혀졌는데, 사람이 떨어졌는데도 단속은 계속됐다더라. 최소한 인간의 존엄성조차 지키지 못하게 만든 상황이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사건을 자극적으로 비추기보다 인물의 내면에 눈이 가게 한 절제된 연출이 돋보인다. 첫 장면에서 여느 때처럼 령희와 함께 아침밥을 먹고 출근했던 홍매는 만 하루도 안 돼 깊은 새벽 홀로 죽은 령희를 찾아 헤맨다. 허름하지만 온기가 깃든 단칸방, 아침에 미처 못 치우고 나간 밥상 등 세세한 일상 풍경이 그의 상실감을 더 크게 공감시킨다.  
 
불법체류자 이전에 '사람' 이야기
단편 '령희'. [사진 연제광]

단편 '령희'. [사진 연제광]

홍매는 령희의 시신을 어떻게든 장례치러주려 하지만 공장 측 사람들은 사건을 덮기에 급급하다. [사진 연제광]

홍매는 령희의 시신을 어떻게든 장례치러주려 하지만 공장 측 사람들은 사건을 덮기에 급급하다. [사진 연제광]

새벽녘 시신을 찾아 헤매는 홍매. 감독의 실제 외갓집이 있는 충북 괴산 시골마을에서 촬영했다. [사진 연제광]

새벽녘 시신을 찾아 헤매는 홍매. 감독의 실제 외갓집이 있는 충북 괴산 시골마을에서 촬영했다. [사진 연제광]

연 감독은 “불법체류자 이전에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 속 공간들이 충북 괴산에 있는 저희 외갓집”이라며 “그 뉴스를 접한 뒤 외갓집에 갔다가 새삼 우리 주변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아졌다는 걸 느꼈다. 두 개의 풍경이 합쳐지며 이 영화를 구상해나갔다”고 설명했다.  
 
특히 “카메라의 시선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윤리적으로 잡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돌이켰다. 홍매가 시신을 찾아 다다른 개울가에서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이 무언가를 태우고 있는 장면이 한 예다. “어찌 됐건 약자의 일을 또 약자가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약자들의 마지막 모습을 마주하는 건 결국 또 다른 약자인 거죠. 홍매와 동남아 노동자들의 시선이 일치할 수 있도록 촬영했습니다. 동남아 분들이 조금이라도 나쁘게 보이거나 의도치 않은 오해를 만들지 않도록 고민 하며 찍었습니다.”
 
하늘로 치솟는 연기를 마주하며 홍매는 말을 잃고 막막한 얼굴이다. 감독은 “실제는 소품을 태운 것이지만 불 소리도 그렇고, 령희의 무언가가 연기에 담겨있는 듯 느껴졌다”고 돌이켰다. 

 
영화엔 또 다른 의미의 추모도 있다. “제가 많이 따랐던 외할아버지가 5년 전 돌아가셨어요. 생전에 하시던 양조장 사무실, 트럭으로 드라이브 시켜주셨던 마을길 등 추억의 공간들을 영화에 하나하나 담았죠.” 
 
'쥬라기 공원' 닳도록 보며 감독 꿈꿔
촬영 현장에서 연제광 감독의 모습. [사진 연제광]

촬영 현장에서 연제광 감독의 모습. [사진 연제광]

그는 영화를 좋아하는 어머니 영향에 더해, 어릴 적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1993)을 비디오가 닳도록 보며 영화에 빠졌다. “영화 안에선 공룡과 사람이 만날 수 있다. 뭐든 가능하다”는 데 끌렸다. 다르덴 형제 등 현실을 담아낸 감독들 영화에 눈뜨며 “내 이야기도 영화로 해볼 수 있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상명대 영화과 졸업 후 한예종 전문사 과정에 입학, 여러 영화제에 꾸준히 단편을 선보였다. 접대문화를 여성 회사원 입장에서 바라본 ‘홍어’(2016), 범죄에 연루된 모텔 알바 청년을 그린 ‘더 게스트’(2016), 남편을 죽여 달란 누군가의 부탁에 고민하는 남자의 이야기 ‘종합보험’(2017), 부모의 이혼으로 친척집에 얹혀사는 재수생을 비춘 ‘표류’(2018) 등 주로 기로에 놓인 약자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렸다. 줄곧 함께해온 한상길 촬영감독과 현재 장편 데뷔작도 준비 중이다. 경제적 곤경에 처한 청년에 관한 사회파 드라마다.
 
곤경에 처한 약자에 꾸준한 관심
연제광 감독의 전작 '표류'.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에 초청됐다.

연제광 감독의 전작 '표류'.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에 초청됐다.

“관객 취향을 미리 맞추려다 자기 것을 놓치기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영화에 집중해서 잘 만들면 관객들도 인정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봉준호 감독님 존경합니다. 주위에 솔직하고 냉정하게 조언해주는 분들이 많아 부족한 점을 채워나가고 있어요. 자존심을 세우기보단 좋은 작품을 위해 늘 유연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이번 영화제에서 ‘령희’를 상영할 순간이 기대된다”며 “정서적으로 응원 받고 기운 받고 올 것 같다. 안주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고 싶다”고도 했다.  
 
이번 영화제는 프랑스 칸에서 14일 개막, 오는 25일까지 열린다.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서 그동안 한국영화는 2011년 손태겸 감독의 ‘야간비행’, 2009년 조성희 감독의 ‘남매의 집’ 등이 3등상을 받은 바 있다. 올해 수상자는 23일 발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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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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