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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17조원(넷플릭스) 제작비로 쓰고 80조원(디즈니)에 기업 인수

중앙일보 2019.05.12 00:03
넷플릭스 독주 속 디즈니·애플·아마존 등 참전… 2022년 미국 ‘코드커팅’ 5510만 명 예상
 
역사의 수레바퀴는 너무 거대해서 움직임을 알아채기 어렵다. 통찰력 있는 선각자 정도나 꿰뚫어 볼 뿐, 대다수 사람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변화를 깨닫는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은 거대한 수레바퀴처럼 우리 삶을 하나둘씩 바꿔가고 있다. 주말에 장 보러 가는 일이 줄었고, 손을 들어 택시를 잡는 모습도 사라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9시 뉴스, 드라마, 주말 예능 등 TV 여가문화도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Over The Top)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원하는 시간에 다양한 콘텐트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어 리모컨 대신 스마트폰을 드는 사람도 늘고 있다. 넷플릭스가 독주하고 있는 이 시장을 두고 벌이는 거대 기업들의 치열한 동영상 콘텐트 대전 속으로 들어가봤다.
OTT 시장 주도권을 둘러싼 글로벌 기업들의 콘텐트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 사진:각 사

OTT 시장 주도권을 둘러싼 글로벌 기업들의 콘텐트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 사진:각 사

 
지상파·위성방송·케이블TV·인터넷TV(IPTV)…. 통신기술의 발전에 따라 지형도가 달라졌던 방송·콘텐트 시장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중심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되돌릴 수 없듯 OTT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이에 OTT 주도권을 둘러싼 콘텐트·정보통신기술(ICT) 공룡 기업들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처음 시장을 개척한 넷플릭스는 풍부한 콘텐트와 현지화 전략으로 세계 구석구석을 공략하고 있다. 디즈니는 막강한 콘텐트로 사용자들을 유혹하고 있고, 아마존과 구글은 조용히 연합 전선을 펼치며 시장 영향력을 키울 조짐이다. 애플은 아이폰과 마찬가지로 하드웨어에 기반을 둔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전략은 대동소이하지만, 목표는 같다. OTT 플랫폼의 주도권 장악이다. OTT란 TV와 연결된 셋톱박스(Top) 없이 제공되는 온라인 기반의 동영상 서비스를 포괄하는 말이다. 통신망 확대와 압축 등 영상처리 기술 발달 등으로 기존 방송 시장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큰 OTT 사업자는 넷플릭스다. 글로벌 유료 구독자 수는 1억4816만 명(3월 말 기준, 추산치)에 달한다. 올해 202억 달러(약 23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릴 전망이다. 사용자가 꾸준히 증가해 매출액은 2020년 250억 달러, 2021년 299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영업이익은 각각 26억 달러, 41억 달러, 59억 달러로 늘어날 전망이다. OTT는 여느 플랫폼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콘텐트 제작, 공급 등 투자비는 고정적인 편이라 영업이익률이 높다.
 
 
유료 방송 끊고 OTT 서비스에 가입한 사람 급증
 
 
케이블방송·IPTV·위성방송 등 전통 유료 방송 입장에서 스트리밍에 기반을 둔 넷플릭스는 생태계 파괴자다. 시장조사업체 이마케터에 따르면 미국에서 ‘코드커팅(code cutting, 유료 방송을 끊고 OTT 서비스에 가입)’을 한 사람은 지난해 8월 기준 3300만여 명에 달했다. 2022년에는 5510만 명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 IHS마킷 조사를 보면 넷플릭스·훌루·아마존 등 온라인 스트리밍 구독자는 지난해 6억1330만 명으로 전년 대비 37% 급증했다. 케이블TV 가입자 수 5억5600만 명을 추월했다. 미국 최대의 케이블TV 사업자 컴캐스트는 지난해 4분기 모든 채널 가입자 수가 줄었다고 밝혔고, 미국 소형 케이블 업체 RTC는 올해 7월부로 서비스를 종료한다.
 
미국에서 코드커팅이 벌어지는 것은 OTT가 기존 방송보다 경쟁력이 앞서기 때문이다. 콘텐트 유통을 공급자 위주에서 사용자가 자유롭게 원하는 선택할 수 있는 수요자 중심으로 바꿨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사용자의 기호에 맞춘 콘텐트를 찾아주기도 한다. 모바일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무엇보다도 OTT의 월 사용료는 10~20달러로 기존 유료 방송의 5~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넷플릭스가 일으킨 지각변동에 미국 콘텐트·IT 공룡들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세계 최대 영화 제작사 디즈니는 온라인 동영상 구독서비스인 ‘디즈니 플러스’를 내놓겠다고 4월 11일 밝혔다. 서비스 개시일은 11월 12일. 올해 미국을 시작으로 대륙별로 서비스 지역을 확대, 2021년 전 세계에 디즈니 플러스 콘텐트를 공급할 계획이다. 요금은 월 6.99달러, 연 69달러로 넷플릭스의 절반 수준이다.
 
 
애플도 3월 25일 ‘애플TV플러스’를 출시한다고 밝히며 OTT 진출을 공식화했다. 애플은 현재 애플TV 셋톱박스를 통해 훌루·ESPN 등 TV 프로그램을 공급 중인데 여기에 자체 제작한 콘텐트를 포함한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공급할 계획이다. 애플은 2016년부터 OTT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둬 왔다. 스마트폰 판매 부진 등으로 신규 사업 육성이 필요해서다. 이 과정에서 애플의 디즈니 인수설 등이 제기됐으나 결국 자체 제작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애플은 아이폰·아이패드 등 전 세계로 팔린 자사의 스마트 디바이스를 플랫폼 삼을 것으로 보인다. 애플이 앱스토어를 비롯해 애플뮤직·아이튠즈·아이클라우드 등 콘텐트 사업에서 큰 매출을 올린 것도 하드웨어 판매량이 안정적으로 뒷받침해 줘서다.
 
 
애플·아마존·구글, 셋톱박스 기반으로 OTT 확대
 
 
OTT에서 한발 뒤처진 구글과 아마존은 협력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두 ICT 공룡은 아마존 파이어TV에 유튜브를, 구글 크롬캐스트에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공급하기로 했다고 4월 18일 밝혔다. 2017년 자사 플랫폼에 상대 스트리밍 콘텐트를 서로 차단하며 갈등을 빚은 바 있다. OTT 시장에 몰아치고 있는 격동에 소모적 분쟁을 중단, 손을 잡은 것이다. 다만 두 회사는 클라우드·하드웨어·스트리밍 등 주력 사업이 비슷해 평화협정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국 2위 통신사업자 AT&T도 지난해 6월 미국 3위 미디어 기업 타임워너를 854억 달러(약 99조원)에 인수하며 OTT 진출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타임워너는 [해리포터] [왕좌의 게임] [프렌즈] 등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작품의 판권을 쥐고 있다. 컴캐스트도 NBC유니버셜을 통해 2020년부터 OTT 시장에 뛰어들 계획이며 인도의 지(Zee)엔터테인먼트 인수도 추진 중이다.
 
 
한국에서도 OTT 격랑이 휘몰아치고 있다. 한국은 미국보다 케이블TV·IPTV 요금이 저렴해 아직 코드커팅이 활발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넷플릭스 홈페이지·애플리케이션 방문자가 2월 기준 월 240만 명(닐슨코리아)으로 전년 동기 대비 3배 이상으로 늘어나는 등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토종 OTT는 현재 SK텔레콤이 운영하는 ‘옥수수’와 지상파 3사의 연합플랫폼 ‘푹(Pooq)’이 있다. 미국의 거대 OTT 플랫폼 사업자에 맞서기 위해 현재 통합 작업을 진행 중이다. 오리지널 콘텐트의 제작을 위해선 규모의 경제가 필요해서다. 현재 가입자 수는 옥수수 946만 명, 푹 400만 명이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이 엘도라도를 발견한 듯 OTT 시장에서 팽창하고 있지만, 시장 규모에 한계가 있어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플랫폼 확장 경쟁에서 뒤처진 기업은 밀려날 것으로 보인다. 승부는 결국 누가 매력적인 콘텐트를 많이 확보했느냐로 갈릴 전망이다. 많은 사용자를 끌어모으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뛰어난 콘텐트다. 특히 5세대(5G) 이동통신 시대가 열리며 콘텐트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넷플릭스가 자사의 경쟁자로 다른 OTT 업체가 아닌, 게임 포트나이트를 지목한 것도 ‘고객의 시간’을 둘러싼 새로운 경쟁 양상이 시작됐다는 뜻이다.
 
 
현재 시점으로는 넷플릭스의 콘텐트 경쟁력이 가장 우세해 보인다. 넷플릭스 구독이 일종의 유행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흡입력 있는 콘텐트를 만들고 있다는 의미다. 넷플릭스는 콘텐트의 다양성으로 승부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먼저 SF·판타지·역사물을 많이 다룬다. 멜로·드라마 등 장르로는 대중적 관심을 끌기 어렵고 트렌드를 이끌기 어려워서다. 완성도·작품성을 높이기 위해 편당 20억~50억원의 많은 제작비를 들이며, 10명 이상의 작가진을 구축해 세계관을 치밀하게 구성하는 역량을 보여왔다. 영국에서 제작된 드라마 [더 크라운]의 경우 1500억원의 천문학적 제작비를 들이기도 했다. 이런 오리지널 콘텐트는 사용자들을 넷플릭스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치열한 플랫폼 확장 경쟁… 콘텐트가 관건
 
 
넷플릭스는 시장 확대를 위해 콘텐트의 현지화 전략도 꾀하고 있다. 한국에서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한 조선시대 좀비물[킹덤]이 대표적이다.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성공한 콘텐트를 아시아 시장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넷플릭스는 2015년 일찌감치 일본에 진출했다가 쓴 맛을 본 적이 있다. 미국에서 제작한 콘텐트가 아시아에서 통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방송 콘텐트는 지역의 문화·정서가 많이 반영된다는 점을 간과했다. 일본 시청자들이 즐길 만한 드라마 콘텐트가 없었다. 이에 비해 아마존은 [가면라이더] 등 일본 토종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한 오리지널 콘텐트를 공급하며 훌루·NTT에 이어 일본 OTT 3위에 오르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아시아·남아메리카 등지의 유능한 제작사를 섭외해 소구력 있는 콘텐트를 만들고 있다. 콘텐트의 현지화와 다양성 확보를 위해서다. 넷플릭스는 올해 콘텐트 제작비용으로 연 매출의 4분의 3에 달하는 150억 달러(약 17조원)를 사용할 계획이다. 이에 국내 콘텐트 제작사들도 넷플릭스에 손을 내밀고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콘텐트의 양적·질적 측면으로는 디즈니도 넷플릭스에 뒤지지 않는다. 디즈니는 애니메이션·영화의 세계 최대 제작사로, 마블·스타워즈·픽사를 소유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스포츠 채널인 ESPN과 다큐멘터리 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도 갖고 있다. 올 3월에는 [사운드 오브 뮤직] [타이타닉] [심슨가족] 등의 IP를 가진 이십세기폭스 713억 달러에 인수했다. 디즈니는 마블 히어로 로키·팔콘·윈터솔저, 스타워즈, 디즈니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등 여러 콘텐트의 스핀오프 시리즈를 준비 중이다. 특히 어벤저스 등 현재 넷플릭스·구글·아마존 등에 공급 중인 콘텐트는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판권을 거둬들여 디즈니 플러스에서만 공급할 예정이다. 디즈니는 자사 콘텐트가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넷플릭스도 디즈니의 등장에 잔뜩 경계심을 내비치고 있다. 김민정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디즈니 플러스 출시와 관련해 “글로벌 스트리밍 시장은 아직 초기 시장으로 성장 잠재력이 크다”며 “전통 미디어, 대형 플랫폼 업체가 내놓는 신규 OTT는 출혈경쟁보단 시장 창출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당장 디즈니의 가장 큰 숙제는 사용자 확대와 수익성 확보다. 디즈니는 2024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6000만~90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할 계획이다. 크리스틴 맥카시 디즈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 시점에는 흑자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디즈니의 목표치는 현재 넷플릭스 유료 가입자 수의 절반이며, 구독료도 절반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디즈니가 넷플릭스에 콘텐트 공급을 중단하면 연 1억5000만 달러에 달하는 콘텐트 공급 매출도 사라진다.
 
 
디즈니 플러스, 사용자·수익성 확보가 관건
 
 
미국 시장조사업체 오범(Ovum)의 토니 기너슨 수석 애널리스트는 “가족 중심의 OTT 디즈니 플러스는 월 5달러의 낮은 비용 덕에 가입자가 늘어날 전망”이라면서도 “다만 미국 OTT 경쟁으로 메이저 업체로 성장하는 데는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올해 시장점유율은 2%를 밑돌 것이다. 6개월 만에 300만 명의 유료 가입자 모집은 엄청난 도전”이라고 내다봤다.
 
 
애플도 애플TV플러스의 오리지널 콘텐트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매년 1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애플은 아이폰의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iOS로 묶었듯 OTT도 자사 스마트 디바이스 플랫폼에 꾸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스마트폰 판매량 감소로 알 수 있듯 소비자들의 디바이스 구매가 부진한 점과 애플TV플러스를 대체할 만한 OTT가 넘친다는 점에서 전략적 수정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애플은 영상 제작사가 애플TV플러스에만 콘텐트를 공급할 것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여러 채널에 콘텐트를 공급해야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제작사로서는 애플TV플러스 플랫폼만을 반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오리지널 콘텐트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토종 OTT들은 당장은 해외 콘텐트를 통해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푹은 5월 중으로 NBC유니버설·디즈니 등 해외 제작사들의 콘텐트 187개 타이틀, 2880개 에피소드를 선보일 계획이다. LG유플러스는 넷플릭스·아마존프라임비디오·왓챠플레이 등과 손을 잡았고, KT는 국내에 개봉하지 않은 워너브러더스·소니픽쳐스·이십세기폭스의 영화 판권을 확보하고 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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