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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회에선 70대가 커피 심부름…농촌은 지금 '노노케어'

중앙일보 2019.05.11 15:00
[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46)
5월에는 자녀, 부모, 스승 등 가까운 사람들을 위한 행사 날이 많다. 이중 어버이날은 농촌에서 큰 잔치가 열리는 날이다. 사진은 작년 강원 양양군 서면에서 열린 한 어르신 경로잔치의 모습. [연합뉴스]

5월에는 자녀, 부모, 스승 등 가까운 사람들을 위한 행사 날이 많다. 이중 어버이날은 농촌에서 큰 잔치가 열리는 날이다. 사진은 작년 강원 양양군 서면에서 열린 한 어르신 경로잔치의 모습. [연합뉴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연달아 있고 스승의 날이 있다. 나들이 가기에 가장 좋은 달이다. 꽃 피고 나뭇잎이 푸르러지니 농사짓기에도 참 좋다. 해 질 무렵에는 가족 생각이 난다. 무얼 같이 해 먹을까 즐거운 고민도 한다.
 
어버이날 잔치는 농촌의 3대 행사
농어촌은 어버이날마다 경로잔치를 열어 마을 어르신들을 한 번 더 살핀다. 지자체마다 어르신을 모시는 잔치를 연다. 올해도 어김없이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어쩌면 어버이날 마을 잔치는 농촌의 3대 행사다. 설날 잔치, 추석 잔치, 어버이날 경로잔치가 그렇다. 어버이날 즈음해 음식을 만들어 어르신을 대접하는 건 지역에서 꼭 해야 하는 잔치이다.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노래자랑 대회도 열어 매우 흥겹다.
 
지금 농촌은 노인 아들이 노인 부모를 모시는 ‘노노케어(老老care)’ 바람이 불고 있다. 우리나라는 노인 인구가총인구의 14%를 넘어선 고령사회다. 그러나 농촌은 젊은이들이 대거 빠져나가서 노인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라고 볼 수 있다. 몇몇 지자체는 65세 인구 비중이 50%를 넘는다. 읍면 단위로 가면 그 비중이 80%에 달하는 곳도 있다.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마을 중 한 곳인 충남 서천군 시초면 풍정리 마을 정자에 모인 할머니들. 이날 모인 할머니들의 연령은 대부분 70~80세를 훌쩍 넘겼으며, 그 중 막내가 69세였다. [중앙포토]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마을 중 한 곳인 충남 서천군 시초면 풍정리 마을 정자에 모인 할머니들. 이날 모인 할머니들의 연령은 대부분 70~80세를 훌쩍 넘겼으며, 그 중 막내가 69세였다. [중앙포토]

 
그래서 그런지 농촌에서는 60대는 노인 축에도 못 낀다. 50대는 청년 취급하며 돌도 씹어 먹을 나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농촌에선 65세 이하는 청년회에서 활동하고 70대 이상만 노인회에 가입이 된다. 노인회장으로 입후보하려면 최소 75세는 되어야 한다. 그러니 70대 초반은 노인회에서 막내 취급을 받으며 형님들을 위해 커피믹스를 탄다.
 
요즈음 귀농·귀촌은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살려는 이유도 있지만 연로한 부모를 모시기 위한 경우도 많다. 부모를 요양병원이나 실버타운에 모시기 어렵기 때문에 귀촌하기도 한다. 노인에게 요양원이란 들어가면 죽어야만 나오는 곳으로 인식돼 있다. 이러니 불편해도 집에서 모시게 된다. 어떤 부모는 상속을 미끼로 집에 들어와 같이 살자고 요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농촌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삶이 녹록지 않아 오랜 시간 농촌에서 살아온 부모의 도움을 받게 된다. 시골 생활을 안 해본 자식의 삶을 부모가 거꾸로 거들어 주는 셈이다. 자식들이 뭘 먹고 뭘 입는지 궁금해하고 하나라도 더 먹이려는 게 부모다. 어쨌든 부모라는 멘토를 두고 하나하나 익히는 것이야말로 농촌 생활 정착에 좋은 방법이다. 부모는 멘토가 되고 자식은 부모의 손과 다리가 되어 이것저것 돕고, 여기저기 모셔다드리는 모습은 보기에도 좋다.
 
도시보다 일하는 어르신의 비중이 높은 농촌이니 어르신을 위한 복지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확실히 노인이 많이 살다 보니 노인 대상으로 특화한 복지제도나 시설이 들어서 있긴 하다. 이동식 목욕차량이나 100원 택시가 대표적이다. 노인복지관도 잘 돌아가고 있고, 경로당과 노인회관은 노인들의 커뮤니티 역할을 한다. 물론 노인을 위한 의료 복지 서비스가 더 개발되어야 하는 것은 숙제다.
 
서울 양원초등학교-양원주부학교 졸업식에서 한복을 입은 졸업생들이 졸업사를 들으며 눈물을 닦고 있다. 옛날 어머니들은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자기 인생을 찾겠다고 하면 매정한 엄마라는 소리를 듣는 시대에 살았다. [연합뉴스]

서울 양원초등학교-양원주부학교 졸업식에서 한복을 입은 졸업생들이 졸업사를 들으며 눈물을 닦고 있다. 옛날 어머니들은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자기 인생을 찾겠다고 하면 매정한 엄마라는 소리를 듣는 시대에 살았다. [연합뉴스]

 
점점 학력과 지적 욕구가 높아 지역 사회에 무언가 기여하고 싶은 실버계층이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다. 이들이 지역 사회에 봉사할 기회를 늘리고 문화적·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도 나와야 한다. 노인은 걸어 다니는 도서관이라고도 부른다. 노인의 다채로운 지식과 경험을 청년들에게 전수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 청년들에게 무언가를 전수한 만큼 노인을 지원하는 제도 도입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농촌의 엄마들도 자기 인생 찾아야
이번 어버이날을 맞이해 생각해 보니 농촌의 어머니들이 진짜 고생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평생 남편과 자식들에게 헌신과 희생만 하고 살았다. 간혹 자기 인생을 찾겠다고 하면 매정한 엄마라는 소리를 들었다. 왜 자기 인생은 도시 엄마만 찾고 농촌 엄마는 못 찾는 것인가. 남편과 자식들에게 늘 헌신만 했던 신사임당 같은 이미지를 만들고 놓고는 희생을 강요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얼마 전에 농촌의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심리상담을 했다는 어느 전직 교장 선생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평생 한 번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준 사람이 없었다며 교장 선생을 붙잡고 울며 좋아하더란다. 새삼스레 자신을 돌보지 않고 평생 헌신만 하며 살아온 우리 농촌 할머니들에 대한 미안함이 느껴진다.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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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필진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 농촌이나 어촌에서 경험한 아름다운 기억을 잊지 못해 귀농·귀촌을 지르는 사람이 많다. “나는 원래 농촌 체질인가 봐”라며 땅 사고 집도 지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그러나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고 후회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귀농·귀촌은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녹록지 않다. 필자는 현역 때 출장 간 시골 마을 집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가 그리워 귀농·귀촌을 결심한 농촌관광 컨설턴트다. 그러나 준비만 12년째고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준비한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정착한다고 했다. 귀농·귀촌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통해 정착 요령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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