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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 언제 오시나"…당구 매력 더해주는 ‘운빨’의 강림

중앙일보 2019.05.11 13:00
[더,오래] 이인근의 당구 오디세이(5)
지난달 13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 아트리움광장에서 열린 PBA 슈퍼매치 혼성스카치더블 친선경기에 나선 차유람 선수가 쓰리 쿠션을 치고 있다. 오른쪽은 한팀인 하비에르 팔라존.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달 13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 아트리움광장에서 열린 PBA 슈퍼매치 혼성스카치더블 친선경기에 나선 차유람 선수가 쓰리 쿠션을 치고 있다. 오른쪽은 한팀인 하비에르 팔라존.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나는 소싯적 주로 4구를 치다가 요즘은 3구(쓰리 쿠션)를 즐긴다. 4구도 재미있지만 어느 정도 치다 보면 대개들 3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4구는 다득점 공략을 위해 모아치기를 추구하므로 공의 운동 거리가 짧다. 반면 3구는 쿠션의 탄성력을 이용해 테이블 전체를 활용하다 보니 공의 활주 거리가 훨씬 더 길어진다. 3구의 매력은 활발하고 시원하게 움직이는 공의 모습에서 우러나오지 싶다.
 
또한 3구에서는 공의 속도, 회전, 당점, 스트록 등의 요소가 긴밀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방법과 기술이 요구된다. 3구가 어렵지만 매력적인 게임이라고 하는 것은 그래서다. 대개의 스포츠 경기에 있어 승패는 객관적 경기 능력, 즉 실력에 따라 결정되기 십상이다. 물론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경우가 이따금 발생한다. 당구, 특히 3구 캐롬에서는 이런 역전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프로 게임은 동일하게 일정한 점수(30점 또는 40점)를 누가 먼저 따내느냐로 승패를 결정한다. 현재 당구의 세계 최강자는 이론의 여지 없이 벨기에의 프레드릭 쿠드롱이다. 나 같은 하수가 보아도 다른 선수들과 분명한 실력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그가 당구 게임에서 이길 확률은 7할대라고 한다.
 
다른 스포츠, 예를 들면 테니스 같은 경우 세계 최강자의 승률은 거의 9할 이상이다. 이처럼 당구가 상대적으로 승률이 낮다는 것은 실력 외에 변수가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젠틀하면서 공평한 게임 룰
3쿠션 월드컵에 참가한 벨기에의 프레드릭 쿠드롱(Frederic Caudron) 선수. [사진 위키미디아커먼(저자 Edmund Mevissen)]

3쿠션 월드컵에 참가한 벨기에의 프레드릭 쿠드롱(Frederic Caudron) 선수. [사진 위키미디아커먼(저자 Edmund Mevissen)]

 
동호인 당구에서는 선수처럼 동일한 점수를 놓는 대신 실력에 따라 개인별 ‘치수’를 정해 놓고 친다. 치수란 플레이어가 따야 할 점수에 차이를 두는 것으로, 골프의 핸디와 비슷한 개념이다. 고점자일수록 점수를 많이 따내야 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아주 젠틀한 룰이 아닐 수 없다. 치수 적용에 따라 분명 상·하수의 차이가 상쇄되는 부분이 있긴 하나 당구에선 하수가 이길 확률이 다른 종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당구 실력 말고도 승패의 향방을 결정하는 의외성을 우리는 쉽게 운이라고 표현한다. 운이라고 하는 것은 치기 쉬운 공이 자주 온다거나 어쩌다 보니 그날따라 유난히 잘 맞는 경우를 말한다. 당구를 치다 보면 ‘눈감고도 칠 수 있다’는 농담을 자주 주고받는다. 초보도 쉽게 점수를 낼 수 있는 공 배열이란 이야기다.
 
동호인들은 대부분 정확히 공이 가는 길을 계산해 치기보다는 눈대중으로 대략적인 길을 가늠한 다음 그 방향으로 공을 보낸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유독 잘 맞아 떨어지고 어떤 때는 아슬아슬하게 비껴가 한숨을 부른다. 게임이 잘 풀리는 날은 기분 내키는 대로 쳐도 척척 알아서 맞아 들어가는 반면 안 풀리는 날은 그동안 쳐오던 감각마저 무너져 내린다.
 
이를 극복하고자 신중 모드에 들어가면 더욱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어쩌다 쉬운 배열이 오더라도 이건 반드시 쳐야 한다는 부담감에 결국 실수를 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그 뒤론 멘붕 상태가 돼 버려 게임을 아예 망쳐 버린다. 당구를 멘탈 게임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당구에는 정말 미묘한 요소가 많다. 당구 채널의 해설자가 아슬아슬하게 빠지는 공을 보고 “저건 플레이어의 잘못이라기보다 운의 영역이지요”라는 선문답식 해설을 하곤 한다. 이렇듯 운의 작용이 다른 스포츠에 비해 강한 까닭은 당구에는 지극히 감각적인 요소와 우연적인 행운이 교묘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미묘함이 한 게임에 그치거나 길어 봤자 하루를 넘기지 않는 단발성이라는 점이다.
 
오늘은 비록 게임에 져 다소 우울해지더라도 다음번에는 이기리란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으니 이러한 운빨의 무작위적 강림(친구들 사이에서는 '그분이 오셨다'고 표현한다)은 당구가 가지고 있는 불가측적 매력이라 하겠다.


의외성의 백미는 ‘플룩’
 
의외성의 백미는 단연 ‘플룩(fluke, 의도 한 바와는 전혀 다르게 요행으로 맞는 것)’이다. 속칭 ‘후로꾸’ 내지 ‘뽀로꾸’ 인데 후로꾸는 일본식 발음인 것 같고, 이것을 된소리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뽀로꾸로 부르지 않았나 싶다. 플룩이 생길 때 기본 에티켓은 상대방에게 미안하다는 제스처로 손을 들어 올리거나 가볍게 목례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친구 사이에서는 거의 그 반대의 반응이 나타난다. 묵례는커녕 멋쩍은 웃음도 아니고 진정 기쁜 마음으로 웃어 젖히기도 하고, 한술 더 떠 “후로꾸도 실력”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내 경우는 “열심히 하다 보면 안 되는 게 없다니까”라며 상대방을 골려 준다. 그러면 상대방은 “야, 이건 정말 역대급이야”, “복기 가능한 거야?”라며 시기 어린 비아냥으로 되받아친다.
 
그리고 나선 ‘플룩 뒤에 한 큐’를 외치지만 우리의 실력상 이를 반전의 기회로 삼기는 어렵다. 선수에게 플룩은 게임의 행방을 바꿀 수 있는 행운의 기회이지만 우리 같은 하수에겐 그저 한 번 웃을 수 있는 즐거운 해프닝이어서다.
 
결론은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당구도 물론 실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경기보다 유독 운이 많이 작용하는 부분이 있고 이것은 당구의 또 다른 매력으로 기능한다. 고백하건대 우리 대부분은 ‘내실남운(내가 이기면 실력이고 남이 이기면 운)’을 외치며 운 또한 자신의 실력으로 믿고 싶어한다.
 
운적 요소의 불가측적 개입과 이로 인한 실력과 운의 혼재 속에서 우리는 웃을 수 있고, 밉지 않은 허세를 부릴 수 있다. 승리의 기쁨은 짜증난 친구에게 소주 한잔 사줄 아량을 베풀 수 있게도 해준다. 그렇다면 운이라는 의외성은 당구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인지도 모르겠다.
 
깨알 당구 팁
당구공과 큐케이스. [사진 아라미스 홈페이지]

당구공과 큐케이스. [사진 아라미스 홈페이지]

 
우리나라에서 당구가 대중화하면서 당구용품의 국내 생산도 활발해지고 있다. 당구대와 당구 큐의 경우 국제적으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당구용품의 꽃으로 불리는 당구공은 벨기에의 S사가 전 세계 공급의 80% 정도를 차지한다. 물리 역학이 적용되는 당구에서 당구공은 완벽한 균형, 치밀한 밀도, 균일한 탄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이를 충족하기 위한 고도의 기술 작업이 필요하다. 
 
S사의 당구공 제품설명서에는 40만 회의 타격에 견디고, 순간 속도 시간당 30km의 충격을 받아내며, 당구공을 칠 때의 순간 마찰열은 섭씨 250도까지 견디고, 5t의 하중도 버텨낸다고 쓰여 있다. 당구공에 태극 문양이 들어간 것이 있는데, 이 또한 벨기에 S사가 세계 최대 당구공 수요국인 대한민국을 겨냥해 만든 제품이라 한다.
 
이인근 전 부림구매(주)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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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근 이인근 전 부림구매(주) 대표 필진

[이인근의 당구 오디세이] 하루 당구장 내방객 120만명, 애호가 1200만명, 전국 골목 곳곳에 당구장 2만2000개, 세계 유일의 당구 전문 TV 채널…아마 한국은 당구를 세계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라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 열풍의 주역은 바로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다. 대학 시절부터 당구를 쳐온 애호가의 알량한 구력과 지식에 잡생각을 섞어 당구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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