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캐비아 왕중왕’ 벨루가, 보드카 곁들이면…

중앙선데이 2019.05.11 00:20 635호 24면 지면보기
서현정의 월드 베스트 호텔 & 레스토랑
우아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캐비아 바 메인 홀. [사진 서현정]

우아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캐비아 바 메인 홀. [사진 서현정]

3월 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아직 겨울이었다. 해가 들지 않는 네바강 구석구석에는 두꺼운 얼음이 남아 있었고, 뿌연 하늘엔 진눈깨비를 담은 비바람이 거칠게 불고 있었다. 러시아에 있다는 게 절절히 실감 나는 날이었다. 짓궂은 날씨였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두근거리는 기대감이 솟고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유일한 캐비아 바에 초대받은 데다 이 도시에서 유일한 보드카·캐비아 마스터(장인)를 만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캐비아 바’
푸아그라·송로버섯과 3대 진미
카스피해의 자연산 최고로 꼽혀
계란 위에 얹은 오세트라 캐비아
디저트 같은 세브루가도 감칠맛

 
철갑상어 암컷 10년은 넘어야 알 낳아
 
각기 다른 철갑상어 알로 만든 세 종류의 캐비아 요리. [사진 서현정]

각기 다른 철갑상어 알로 만든 세 종류의 캐비아 요리. [사진 서현정]

철갑상어 알인 캐비아는 거위 간(푸아그라), 송로버섯(트러플)과 함께 세계 3대 진미로 꼽히는 식재료다. 철갑상어를 잡아 바로 알을 꺼내 알집을 둘러싼 얇은 막을 제거하고 소금물에 살짝 절여 저장한다. 흑해, 아무르강, 프랑스나 미국 일부 지역에서 나고 최근에는 대규모 양식을 하는 곳도 있지만, 러시아 카스피해의 자연산을 최고로 꼽는다. 작고 검은 알은 탱글탱글한 식감과 고소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철갑상어 암컷이 10년은 넘어야 알을 낳는 데다 생산지도 제한적이어서 예부터 부(富)를 상징하는 식재료였다. 러시아 왕실과 귀족의 사치를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캐비아가 등장했다.
 
보드카 마스터인 알렉산드르 드미트리브가 내준 명품 보드카. [사진 서현정]

보드카 마스터인 알렉산드르 드미트리브가 내준 명품 보드카. [사진 서현정]

이른 저녁 ‘캐비아 바 & 레스토랑’을 서둘러 찾아갔다. 보드카·캐비아 마스터인 알렉산드르 드미트리브(Alexander Dmitriev)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특별히 준비된 테이스팅 접시에는 세 종류의 캐비아 음식이 놓였다. 캐비아는 크기와 질에 따라 세 가지 등급으로 나뉘며, 철갑상어 종류에 따라 캐비아 맛도 달라진다. 각각의 캐비아 요리와 어울리는 보드카도 준비되었다.
 
첫째는 벨루가(Beluga). 스무 살이 넘는 대형 철갑상어의 알인 벨루가는 ‘왕중왕’이라 할 수 있다. 그저 스푼으로 알을 떠서 맨입으로 먹는다. 알이 금속에 닿으면 맛이 변하기 때문에 유리로 만든 그릇에 담아 자개 스푼으로 떠먹는다. 캐비아 본연의 맛을 즐기는 방법이다. 생선 알이지만 비린 맛이나 거북한 잔향이 전혀 없다. 비단처럼 반짝이는 모습 그대로 특유의 식감과 향만이 입안에 남는다.
 
캐비아 바의 대표 메뉴인 ‘에그 인 에그’. [사진 서현정]

캐비아 바의 대표 메뉴인 ‘에그 인 에그’. [사진 서현정]

둘째는 오세트라(Ossetra). 오세트라는 레스토랑 시그니처 요리인 ‘에그 인 에그(egg in egg)’ 스타일로 나왔다. 계란 껍질 속에 트러플 오일이 들어간 부드러운 스크램블드 에그를 넣고 그 위에 오세트라 캐비아를 얹었다. 셋째 세브루가(Sevruga) 요리는 달콤한 감자 크림 위에 캐비아를 얹어서 디저트 같았다.
 
보통 캐비아와 함께 먹는 러시아 팬케이크 ‘블리니’와 사워크림 ‘스메타나’ 같은 음식도 나왔지만, 캐비아에 집중하느라 맛볼 틈이 없었다. 한국의 젓갈처럼 진한 맛을 지닌 프레스드 캐비아(Pressed Caviar)도 주문해봤다. 고급 음식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러시아 밖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힘들고 과거 방식 그대로 만든 것이어서 짭짤한 맛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수요 급증과 밀렵 탓 멸종 걱정할 상황
 
캐비아 바가 있는 그랜드 유로파 호텔은 1875년 개업한 러시아 최초 5성급 호텔이다. [사진 서현정]

캐비아 바가 있는 그랜드 유로파 호텔은 1875년 개업한 러시아 최초 5성급 호텔이다. [사진 서현정]

캐비아를 맛보는 것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캐비아가 세계적인 진미로 주목받으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밀렵까지 더해져 철갑상어가 멸종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멸종위기종 야생동식물 국제거래협약(CITES)이 유엔과 공동으로 철갑상어 어업과 거래를 규제·관리하고 있다. 비싼 가격 때문에 캐비아를 맛보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기회가 왔을 땐 적어도 생산지와 유통 경로라도 확인해보는 게 좋겠다.
 
캐비아 바 & 레스토랑은 세계적인 샴페인 브랜드 ‘돔페리뇽’의 지원으로 2016년 문을 열었다. 캐비아와 어울리는 술이라면 무색무취의 보드카가 최고겠지만, 가벼운 거품으로 파티를 여는 샴페인 역시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식당에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15가지 캐비아, 12가지 돔페리뇽 빈티지, 35가지 보드카, 15가지 위스키를 맛보고 페어링할 수 있다.
 
바가 있는 ‘그랜드 호텔 유럽(The Grand Hotel Europe)’도 흥미로운 곳이다. 1875년 문을 연 러시아 최초의 5성급 호텔이다. 아르누보 스타일의 클래식하고 화려한 인테리어가 새로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자랑, 캐비아 바&레스토랑과 잘 어울린다.
 
서현정 여행 칼럼니스트 shj@tourmedici.com
인류학 박사이자 여행사 ‘뚜르 디 메디치’ 대표. 흥미진진한 호텔과 레스토랑을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품격 있는 여행 정보를 알려주는 여행사가 없어 아예 여행사를 차렸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