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파꽃도 꽃이라고? 외면받아 ‘서러운’ 눈깔사탕 같은 흰 꽃

중앙선데이 2019.05.11 00:20 635호 27면 지면보기
단독주택에 살아보니
파꽃도 꽃이다. 마당 구석에서 외롭게 지난 겨울을 이겨낸 대파가 동그란 공모양의 꽃을 활짝 피웠다. [사진 김동률]

파꽃도 꽃이다. 마당 구석에서 외롭게 지난 겨울을 이겨낸 대파가 동그란 공모양의 꽃을 활짝 피웠다. [사진 김동률]

드디어 오월이 왔다. 오월은 단독살이 인생이 어깨에 힘을 주는 계절쯤 된다. 마당은 이미 조물주의 경연장이다. 구석구석 온갖 꽃들과 잔디 새순이 신비하다. 이른 아침 정원을 둘러보면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는 피천득 선생의 말을 실감하게 된다. 베토벤의 ‘오월의 노래’를 들으면 딱이다. 그것도 젊은 시절 피셔 디스카우의 음성으로.
 

어릴 적 소주병에 파꽃 꽂아 놓던
검은 머리 파 뿌리 된 어머니 생각
외롭게 자리한 파꽃에 애정 느껴

마당 김장독 김치 반년 만에 개봉
기대 이상으로 맛이 잘 들어 뿌듯
‘아끼면 X 된다’ 해도 아내가 밀봉

얼마 전 처음으로 김장독을 열었다. 김장독을 땅에 묻어 본 것은 짧지 않은 인생에 처음이다. 김장은 옆집 안 선생 내외가 도맡아 해 주셨다. 그러나 재료는 엄연히 우리 집 마당에서 나왔다. 지난해 8월 말 파종한 배추, 무가 늦가을이 되면서 제법 실하게 자랐다. 배추 스무 포기, 무도 열일곱 개 수확했으니 첫 농사치고는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농약을 치지 않은 고추는 병충해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잘 버무려진 김장은 마당 구석 단지에 넣었다. 비닐로 꽁꽁 봉한 뒤 뚜껑을 덮고 다시 거적을 덮었다. 마당을 내팽개친 지난겨울, 그래도 김장독은 종종 찾곤 했다. 그날 저녁 남은 겉절이로 저녁을 먹으며 김장김치를 먹게 될 봄날을 꿈꾸었다.
 
 
철쭉·작약 등 5월 마당은 꽃들 경연장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내는 김치를 담글 줄 모른다. 몇 번 시도해 봤지만 맛이 기대에 못 미치자 깨끗이 포기했다. 처음에는 다소 서운했지만 이젠 익숙해져 큰 불편을 못 느낀다. 덕분에 아내에게 잘 보이는 ‘경우의 수’가 하나 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귀갓길 김치를 들고 가거나 행여 누가 김치를 선물해 오면 아내의 얼굴에 환하게 미소가 퍼진다. 완전 작품이다. 그런 풍경을 보는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김치를 담그지 못하는 아내가 오히려 좋을 때가 있다. 김치 조달 능력으로 폼을 잡을 기회가 하나 덤으로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해 늦가을 묻었던 김장독을 반년 만에 개봉했다. [사진 김동률]

지난해 늦가을 묻었던 김장독을 반년 만에 개봉했다. [사진 김동률]

반년 만에 개봉한 김치는 기대 이상으로 맛이 잘 들었다. 안 선생 사모님의 빼어난 손맛 덕분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첫 두 포기를 꺼내 먹은 뒤부터 아내는 김칫독을 열기를 꺼린다. 잘 익은, 맛있는 김치가 너무 맘에 들어 아까워 그런 것이다. ‘아끼다 X 된다’고 설득했지만 막무가내다. 그래서 김장김치는 지금까지 딱 한 번 맛본 것으로 만족해하고 있다. 어쩌겠는가. 귀한 것이라 아껴두고 먹겠다는데. 달리 방법이 없다.
 
오월의 정원은 가히 백화난만이다. 철쭉에 이어 앵두, 황매화, 작약까지 구석구석 피었다. 그래도 가장 맘이 가는 것은 파꽃이다. 술자리에서 누군가 파에도 꽃이 있느냐고 묻는다. 파에도 꽃은 핀다. 어느 꽃인들 아름답지 않겠는가. 그러나 파꽃은 좀 다르다. 아름답지도 향기롭지도 않다. 게다가 꽃이 피는 방식도 다르다. 파가 오동통 살이 찐 뒤 늙으면 그 꼭대기에 동그란 공 모양의 꽃을 피운다. 그렇기에 꽃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파꽃은 서러운 꽃이다. 누구도 살아오면서 파꽃 다발을 받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청춘의 가슴에 뜨겁게 안기지도 않는다. 소녀의 머리에 공손히 꽂히지도 않는다. 그런 파꽃을 가만히 보면 ‘예뻐야만 꽃이 아니다’ ‘나도 꽃이다’라고 떼를 쓰는 것 같다.
 
 
겨울 내내 정든 파, 차마 못 베어 먹어
 
꽃이 크고 탐스러워서 함박꽃이라고도 하는 작약도 피었다. [사진 김동률]

꽃이 크고 탐스러워서 함박꽃이라고도 하는 작약도 피었다. [사진 김동률]

마당 구석에 외롭게 자리한 파꽃에 나는 특별한 애정을 느낀다. 지난겨울 비닐로 만든 어설픈 간이온실 속에서 누렇게 죽어 가던 파였다. 그런데 겨울이 지나며 파랗게 새순이 올라오더니 마침내 동그란 꽃까지 터뜨린 것이다. 하얀 눈깔사탕 모습의 꽃은 애틋하다. 텃밭에 파를 두고 파를 사 들고 오는 나를 보고 아이들이 놀린다. 겨울을 넘긴 파는 산삼 못지않다지만 지난겨울 내내 정이 들어 차마 베어 먹지 못하고 있다.
 
유년 시절, 시골집 마당에서는 꽃들이 많았다. 채송화, 봉숭아 등등 주로 토종꽃들이다. 그중에서 기억나는 것은 박하다. 신세대에게 페퍼민트로 더 알려진 박하잎을 따서 혓바닥에 대면 싸아한 박하향이 입안에 가득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갓난아기 뺨 같다며 유난히 파꽃을 좋아하셨다. 그런 어머니는 초록색 소주병에 파꽃을 꽂아 대청마루 구석에 올려놓았다. 동그란 파꽃에서 번지던 매운 냄새가 지금도 선명하다. 수돗가 파꽃에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된 고향의 어머니가 겹쳐 보인다.
 
올해도 벌써 오월, 많이도 갔다. 세월은 얼마 남지 않을수록 빨리 간다. 파꽃을 보니 한순간 텃밭에 파꽃이 뭉텅뭉텅 피어 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코끝이 찡해 온다. 집 뒤 북한산 둘레길, 트레킹을 나선 사람들이 떨어지는 봄꽃을 돌아보고 또 돌아다본다. 피기는 어렵지만 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우리는 그 얼마나 많은 세월 봄을 기다리며 살았고 또 보냈을까. 봄이 한창이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일찌기 소월이 그랬다.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 놓고도/ 가는 봄은 잡지도 못한다’고. 세이장(洗耳莊·집 이름)의 봄날도 가고 있다. 오늘 밤은 냉장고 구석에 숨겨져 있던 쓴 소주 한잔을 입에 털어 넣고 잠을 청해야겠다.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다. 고려대,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졸업. 매체경영학 박사. KDI 연구위원, 영화진흥위원, EBS 이사, 공기업 경영평가위원  등을 역임했다. 에세이가 고교 교과서에 실렸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