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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궈쩐 믿지 않은 장징궈, 경제경찰 편성해 권총 지급

중앙선데이 2019.05.11 00:20 635호 28면 지면보기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576>
장징궈는 경제경찰 1200명을 편성하고 ’쓰레기 청소에 필요한 물건“이라며 권총과 실탄을 나눠 줬다. 상인 창고를 수색하는 경제경찰. 1948년 가을, 상하이. [사진 김명호]

장징궈는 경제경찰 1200명을 편성하고 ’쓰레기 청소에 필요한 물건“이라며 권총과 실탄을 나눠 줬다. 상인 창고를 수색하는 경제경찰. 1948년 가을, 상하이. [사진 김명호]

상하이는 중국의 경제와 금융 중심지였다. 중국과 서구의 온갖 것들이 뒤섞인 복잡한 도시였다. 인간관계의 얽히고설킴도 상상을 초월했다. 자본가, 매판, 비밀결사, 투기꾼들은 수도 난징(南京)의 고관들과 줄을 대고 있었다. 변칙이 상식이었다. 대형 사건도 적당히 넘어가곤 했다. 원칙대로 했다간 어느 귀신에게 물려갈지 몰랐다.
 

우궈쩐, 장제스에게 사직 요청하며
장징궈 행보에 대한 불안감 표명

장제스, 우궈쩐의 보완책 수용 않고
“장징궈의 명령에 따르라”고 지시

장징궈, 소련 유학 동기들을 측근에
상하이 치안기관 업무도 중지시켜

물가동결과 화폐개혁은 정권의 운명이 걸린 문제였다. 내로라하는 고관들 거의가 개혁 반대세력과 동업자 비슷한 사이였다. 장징궈(蔣經國·장경국)는 달랐다. 12년 만에 소련에서 귀국했다. 당력(黨歷)이 일천했지만 장제스(蔣介石·장개석)의 아들이었다. 국민당 내의 어느 계파에도 속할 이유가 없었다. 귀국 후 짚신 신고 벽촌만 다니다 보니 상하이와도 아무런 인연이 없었다. 상하이의 물가동결과 금원권(金圓券) 화폐개혁 밀어붙일 사람은 장징궈 외엔 대안이 없었다.
 
상하이 시장 우궈쩐(吳國楨·오국정)은 불안했다. 장제스에게 사직 요청하며 이유를 설명했다. 우궈쩐의 우려는 조리가 있었다. 장제스도 동의했다. “듣고 보니 네 말이 맞다. 재경긴급처분령은 이미 발표했다. 거두어들일 수 없다. 보완할 방법이 있으면 말해라.”
 
우궈쩐은 주저하지 않았다. “금원권은 배경이 약하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은본위국가다. 미국 은행에서 백은(白銀)을 대출받자.” 장제스는 솔깃했다. “알았다. 행정원장과 부원장의 의중도 중요하다. 점심 먹고 다시 와라.”
 
다시 만난 장제스는 오전과 딴판이었다. “원장과 부원장, 두 사람 모두 네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네 사직을 허락하면 민심이 요동친다. 상하이에 돌아가라. 부속기관에 경제문제는 장징궈의 명령에 따르라고 일러라.”
 
장징궈는 부친 장제스에게 상하이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수시로 난징을 오갔다. 1948년 11월 난징. [사진 김명호]

장징궈는 부친 장제스에게 상하이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수시로 난징을 오갔다. 1948년 11월 난징. [사진 김명호]

1948년 8월 21일, 장제스는 중앙은행 총재 류홍쥔(兪鴻鈞·유홍균)을 지휘관 격인 독도원(督導員)에 임명하고 경찰권을 부여했다. 이어서 장징궈에게 부독도원 임명장을 줬다. 류홍쥔은 미국 미시간대학을 마친 상하이의 부잣집 출신이었다. 이름만 독도원일 뿐, 진정한 독도원은 장징궈였다. 그날 밤 장제스의 일기 일부를 소개한다. “징궈에게 어려운 임무를 맡겼다. 후회할 날이 올지 모른다. 심지어 앞길을 막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 애를 보낼 수밖에 없다. 가슴이 답답하다.”
 
장징궈는 교수들에게 자문했다. 말만 그럴듯했지 쓸 만한 내용은 한마디도 없었다. 취재 경험 풍부한 젊은 기자들을 엄선했다. 상하이의 정치와 경제환경 귀담아들으며 연구에 몰두했다. 결론을 일기에 적었다.  
 
“상하이는 중국 최대의 도시다. 경제관제의 성패는 전국의 성패와 연관이 있다. 상하이의 상인들은 상도덕을 망각한 지 오래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첫째가 돈이다. 둘째 셋째도 모두 돈이다. 남이 애써 만든 물건 제 것으로 둔갑시키고, 탐관오리와 결탁하는 재주에 정부는 흔들리고 민심은 동요한다.”
 
장징궈는 상하이 중앙은행에 경제관제지휘부(經濟管制督導辦公室)를 차렸다. 국민당 기관지의 사설이 주목을 끌었다. “사회개혁은 다수의 이익을 중시하고 소수의 특권을 억제하기 위함이다. 화폐개혁은 곪은 맹장을 도려내는 것과 같다. 잘 잘라 내는 순간 건강이 회복된다. 잘못 도려내면 죽음에 이른다. 장징궈가 중임을 맡았다. 간악한 상인과 탐관오리를 박멸하고, 부패하고 악한 세력을 숙청해서 신경제정책을 관철하기 바란다.”
 
홍콩의 유력한 경제지는 실망을 표명했다. “고의로 그러는지, 무지 때문인지 판단하기 힘들다. 경제는 내버려 두면 저절로 굴러간다. 경제관제는 임시 진정제에 불과하다. 빈혈증을 완화시킬 수는 있어도 장기적인 효과는 불가능하다. 장징궈는 소련 공산당이 배양한 국민당원이다. 언제 중공 쪽으로 돌아설지 모른다.”
 
장징궈는 우궈쩐을 믿지 않았다. 상하이시의 관리나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시 경찰국과 철도경찰 등 치안기관의 업무를 중지시켰다. 소련 유학 동기들 초빙해 참모부 구성하고 경제경찰 1200명을 편성했다. “쓰레기 청소에 필요한 물건”이라며 권총과 실탄 백발씩을 나눠 줬다. 대상해청년복부총대(大上海靑年復務總隊)도 조직했다. 순식간에 1만2000명을 긁어모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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