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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文明<문명>

중앙선데이 2019.05.11 00:20 635호 29면 지면보기
한자세상 5/11

한자세상 5/11

문(文)은 피부에 새긴 그림인 문신(文身)에서 유래했다. 꾸민 겉모습을 말한다. 바탕을 일컫는 질(質)의 반대말이다.
 
“바탕이 겉을 앞서면 야해지고, 겉이 바탕을 이기면 번드르르해진다. 속과 겉이 조화를 이뤄야 비로소 군자라 할 만하다(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는 『논어(論語)』 옹야(雍冶)편 문장이 대표적인 용례다.
 
공자가 여기서 말한 ‘사(史)’를 일본의 중국사학자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가 흥미롭게 풀었다. “천자와 제후의 어록을 엮어 기록할 때 실제 발언을 옮겨 적는 데 머물지 못하고 꼭 수식어를 덧붙인다. 이런 식으로 문장을 쓰는 사람을 ‘사’라 불렀다.” 권력자의 말을 듣기 좋게 분칠하는 어용 기자를 꾸짖는 해석이다.
 
문(文)은 영어 단어 문화(文化·culture)와 문명(文明·civilization)의 번역어로 당첨됐다. 오는 15일 중국이 ‘아시아문명대화대회’를 개최한다. 이름처럼 중국은 ‘문명’을 집요하리만큼 강조한다. 남성 화장실에 ‘앞으로 한 걸음이 문명의 큰 걸음(向前一小步 文明一大步)’이라 적은 표어가 흔하다. 마오쩌둥도 1949년 신정치협상회의 개막사에 “경제와 문화 건설이 높은 수준에 도달하면 중국인이 ‘불문명’이라 흉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시진핑 주석도 ‘생태 문명’을 역설한다.
 
민두기 전 서울대 교수는 중국의 문명 집착증을 전통과 근대의 이분법에 기반을 둔 발전지향의 역사의식으로 해석했다. “야만과 반대되는 고급한 단계, 서양의 부르주아적 가치를 지향하는 탈전통 지향의 뜻이 일체화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북한도 중국의 문명을 배웠다. 김정은은 지난달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 연설에서 “훌륭하고 문명한 생활” “행복하고 문명한 생활”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문화생활’, ‘문화주택’처럼 ‘문화’를 즐겨 쓴다.
 
중국의 ‘문명대화’의 슬로건은 ‘미미여공(美美與共)’ 즉 아름다운 문명의 공존이다. 사회학자 페이샤오퉁(費孝通, 1910~2005)의 16자 잠언에서 따왔다. 그는 여든 생일에 “각자 자신의 아름다움을 존중하고, 남의 아름다움을 존중하며, 서로의 아름다움을 한데 어우르면, 세상이 조화로와진다(各美其美 美人之美 美美與共 天下大同)”고 말했다. 대학자가 집대성한 화이부동(和而不同) 철학이 현존 국제질서를 바꾸려는 시 주석의 외교 슬로건으로 바뀌고 있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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