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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프리즘] 북한이라는 문학적 상상력

중앙선데이 2019.05.11 00:20 635호 29면 지면보기
신준봉 전문기자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신준봉 전문기자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소설가 윤고은의 새 소설집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재미있어서다.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 같은 제목의 소설집에 실린, 제목을 따온 단편이다.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가시나. 기자 같은 사람은 ‘부루마불’부터 막힌다. 보드게임이라는 건 기억하겠는데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부루마불은 일종의 땅따먹기 게임이다. 집이나 호텔을 지을 수 있는, 보드 위의 토지를 최대한 사들여 남들을 다 파산시키면 이긴다. 미국의 ‘모노폴리(독점)’ 게임을 본 따 1980년대 초반에 만들어져 90년대 중반까지 인기를 끌었다고 인터넷 백과사전 나무위키에 나온다.
 
윤고은 소설은 북한 개성과 평양에 들어서는 새 아파트가 남한에서 분양되는 상황을 가정한다. 소설의 화자인 주인공 남성 ‘나’가 9년간 사귄, 그래서 오매불망 결혼으로 안정을 찾고 싶어 하는 여자친구 선영에게 ‘개성 힐스’ 분양 전단지를 들이밀자 선영은 이렇게 반응한다.
 
“와…신혼집이 북한이라니 말 다 했네. 이젠 분단 현실 때문에 안 된다는 거구나. 통일이 되어야 가능한 거야, 그치? 결국 우리 결혼은 이 땅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네. 싫으면 싫다고 하지. 됐어.”(『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 48쪽)
 
왜 아니겠나. 선영의 반응은 당장의 정보 지체 혹은 불균형 때문이었지만, 어떤 사람에게도 북한 아파트 남한 분양은 쉬운 상상이 아니다. 정작 윤고은이 하고 싶었던 얘기는, ‘나’가 경기도 용인의 모델하우스를 찾아가 보고 듣는 내용들이다. 일만오천 세대 이만한 대단지 봤냐, 이 정도면 하나의 신도시,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집값은 무조건 뛰는 거고 통일이라는 호재가 생기면 그야말로 대박…. 북한·개성·통일이라는 말들만 걷어내고 나면 남한, 서울의 부동산 중개업소 어디서나 천편일률적으로 들을 수 있는 자본의 레토릭이다. 그런 점에서 윤고은 소설이 겨냥하는 건, 북한을 걸고넘어지지만 실은 남한 사회 내부, 그중에서도 부루마불식 일확천금의 꿈들이다.
 
어쨌거나 윤고은 소설을 ‘북한에 관한 문학적 상상력’ 카테고리에 포함시키자. 이 분야 선배들은 꽤 있다.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 강영숙의 『리나』, 황석영의 『바리데기』 같은 작품들이 떠오른다. 하나같이 탈북자들의 국제 유랑 행로를 그린 작품들이다. 소설가 방현석은 아시아 출판사를 통해 북한의 요즘 소설들을 정식으로 수입해 출간한다. 지난해 말 출판사의 네 번째 북한 소설인 리희찬의 장편 『단풍은 락엽이 아니다』가 나왔다. 이렇게 ‘창작’이 아닌 ‘수입’도 ‘북한 상상력’ 카테고리에 포함시킨다면 모집단은 더 커진다. 2017년 국내 출간된 북한의 익명 작가 반디의 반체제 소설 『고발』도 그런 작품이다. 신경숙 소설의 미국 수출을 성사시켰던 국내 에이전트 이구용, 미국 뉴욕의 국제 에이전트 바바라 지트워가 힘을 썼다. 싫든 좋든 더욱 빈번하게 북한 소설, 또 북한에 관한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들을 마주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른 소설도 그렇지만 북한 소설, 북한 관련 소설도 의미를 찾겠다며 억지로 읽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읽어야 하나. 재미있으면 읽는 거다. 어떤 재미? 남의 사생활을 엿보는 재미라고 하면 어떨까. 인간은 타인에 대한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존재다. 소설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강력하지는 않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남의 치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더구나 재미에서 그치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가능성을 키운다. 그렇다는 게 문인들의 주장이다. 속는 셈 치고 읽어 보자. 우원(迂遠)하게 통일에 기여할 수 있다. 지금처럼 북한 비핵화 논의가 꼬인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읽어보니 재미있다. 『단풍은 락엽이 아니다』 말이다.
 
신준봉 전문기자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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