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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 가사·서재필 가운, 섬세한 ‘외과수술’로 살렸다

중앙선데이 2019.05.11 00:02 635호 6면 지면보기
[SPECIAL REPORT] 문화재 보존의 과학
문화재보존과학센터 학예사들이 조선시대 박정양의 ‘죽천고’를 보수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 기자]

문화재보존과학센터 학예사들이 조선시대 박정양의 ‘죽천고’를 보수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 기자]

대전에 있는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직물팀에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의류를 보존처리해달라는 요청이 2014년 접수됐다. 400여 년 전 사명대사가 입었다는 금란가사와 장삼이다. 사명대사의 가사와 장삼은 국가민속문화재 29호로 지정돼 있다. 임진왜란 때 승병들을 이끌고 왜군과 맞서 싸운 사명대사의 공을 인정해 선조가 하사한 것이다. 이 문화재의 소장처는 밀양 표충사다. 원래는 홍색으로 염색한 여덟 가지 문양의 비단옷인데,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원래 빛깔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퇴색했다. 옷의 대부분이 찢어지고 해어져 30cm 남짓한 유물상자에서 꺼내기조차 힘든 상태였다. 가사의 한가운데가 분리돼 본래의 모습을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종합병원’ 문화재보존과학센터
광학현미경으로 손상된 옷 조사
접착제 대신 전통 바느질법 따라

녹슬고 찢어지고 부서진 유물들
X선·CT·3D스캔 등 동원해 복원

 
가사·장삼, 원래 홍색의 8개 문양 비단옷
 
센터 측은 우선 광학현미경과 실체현미경 등을 이용해 섬유를 분석했다. 가사와 장삼에 대해 색온도 측정도 이뤄졌다. 본격적인 보수 절차는 오염 부분을 세척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손상이 심한 금란가사는 건식 세척, 장삼은 건식과 습식 세척이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유물용 진공청소기와 부드러운 붓을 이용해 옷에 묻은 먼지 등 이물질도 제거한다.
 
가장 정교한 작업은 바느질이다. 가사는 바람구멍 즉 부처가 다니는 길이라고 하는 통문(通門)을 둔다. 앞에서 보면 빠진 데 없이 바느질돼 있지만, 뒷면에는 1㎝ 미만의 바느질하지 않은 구멍이 숨어 있다. 이런 특징을 그대로 살리면서 수술하듯 정교한 바느질을 통해 복원·보수가 진행됐다. 아교 등 접착제는 사용하지 않고 유물의 바느질법을 그대로 쓰는 것이 핵심이다.
 
가사의 분리된 주폭(主幅)을 이어 그 형태를 되살리는 데만 수개월이 걸렸다. 원형을 복원한 뒤 훈증 소독이 이어졌다. 곰팡이와 세균 등 미생물과 해충으로 인한 손상을 방지하기 위한 과정이다. 가사와 장삼은 3년 동안의 보존처리 후 밀양 표충사로 인계됐다. 안보연 문화재보존과학센터 학예연구사는 “유물의 구성법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조각을 잇거나 통문을 두기 위한 (조상들의) 철저한 계산과 꼼꼼한 바느질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녹슬고, 찢어지고, 부서지는 등 아픈 우리 문화재를 보존처리하는 과정은 병원에서 이뤄지는 외과수술과 닮아 있다. 문화재를 치료하는 ‘종합병원’이 문화재보존과학센터다. 센터는 유물의 재질에 따라 금속팀, 지류팀, 속조팀, 목재팀, 직물팀, 도자기팀, 비파괴진단팀, 벽화팀 등으로 나뉘어 있다. 문화재 보존 및 복원 처리 과정은 재질에 따라 세부적으로 조금씩 다르다. 보존처리 결정이 나면 특수 장비를 이용해 문화재를 원소 장처에서 센터로 안전하게 옮긴다. 이후 기초 조사가 진행된다. 필요에 따라 육안으로 확인이 어려운 문화재의 내부 상태를 들여다보기 위해 X선, CT, 3D 스캔 등 특수 장비가 동원되기도 한다. 원형 상태, 파손 정도 등 기본 조사가 마무리되면 세척, 안정화, 강화, 접합, 복원 등 작업이 단계별로 진행된다.
 
지난 2월 말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보존처리로 되살아난 서재필 박사의 ‘진료가운’도 이런 절차를 밟았다.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던 당시 서 박사가 입었다는 진료가운은 변색과 굵은 주름이 심했다. 세척과 형태 보정 등의 처리 과정에서 옷에 남아있는 서 박사 관련 기록이 지워지거나 번지지 않도록 하는 안정화 처리가 중요했다. 진료가운 안쪽에 남아있는 ‘Dr. P .S. J’( 서재필의 영문 이름인 ‘필립 제이슨’의 첫 글자를 딴 것)라는 글자,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업체의 상호와 주소를 표시한 라벨이 세척 등 처리 과정에서 손상되지 않도록 해야 했다.
 
목재 재질의 문화재를 보수할 때도 섬세한 과학적 처리 과정이 있다. 특히 출토 당시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목재 문화재가 저습지에서 수습되면 수분을 많이 머금고 있다. 이런 문화재는 수분이 날아가면 쉽게 바스러진다. 이를 막기 위해 PEG라는 약품을 이용해 목재 세포 내부에 존재하는 수분을 대체한다. 화장품 원료로 많이 쓰이는 PEG를 이용해 목재 내부를 채워주면 목재에 남은 수분이 제거되면서 형태와 강도는 유지된다. 일종의 경화 처리 과정이다. 난파선 등 목재 재질의 문화재 보존처리를 위해 자주 사용되는 방식이라고 한다.
 
 
원형 보존에 주력, 주관은 철저히 배제
 
이 밖에 이 센터는 월남사지 유물, 경산 임당1호분 유물,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 현묘탑, 죽천고(조선후기 시문집), 창덕궁 인정전의 ‘일월오악도’ 등 많은 문화재를 치료하고 있다.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3~4년까지 치료 기간도 다양하다. 보수 과정에서 흙 알갱이, 미세한 금속 파편, 섬유 조각 하나라도 떨어지면 원형이 손상 또는 변형될 수 있다. 보존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보수나 복원이 과하게 이뤄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이 센터 장성윤 학예연구관은 “문화재 보존처리에는 과학적 사전 조사와 객관적 데이터 확보가 중요하다”며 “원형을 해치거나 변형시키는 과한 작업은 경계해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런 보존처리 원칙 때문에 작업에 참여하는 이의 주관은 철저히 배제된다.
 
고성표 기자, 정미리 인턴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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