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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둥이귀족, 불륜, 죽음을 소설로… 필명 상드의 탄생

중앙일보 2019.05.10 12:00
[더,오래]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23)
조르주 상드. Candide Blaize. 1830. Musee Carnavalet, Paris 소장. [그림 Musee Carnavalet, Paris]

조르주 상드. Candide Blaize. 1830. Musee Carnavalet, Paris 소장. [그림 Musee Carnavalet, Paris]

 
조르주 상드와 그녀의 할머니는 똑같이, 귀족 신분의 부계와 천박한 신분의 모계를 배경으로 태어났다. 아들이 사망하자 할머니가 지체 없이 실행한 것은 손녀를 며느리에게서 떼어놓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프랑스 중부의 시골 마을 노앙에서 가정교사를 통해 손녀 상드에게 귀족적 기준에 맞는 교육을 했다. 손녀는 밝고 활발했다.
 
하지만 양부모의 결핍은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다. 어쩌다 어머니가 노앙에 들렀다 떠나면 상드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엎어져 울었다. 그러고는 한동안 심한 감정 기복을 보였다. 어머니에게 보낸 상드의 편지는 ‘사랑해요. 날 잊지 마세요’로 끝났다.
 
필자는 상드의 대표적 전원소설 ‘소녀 파데트(La Petite Fadette)’에서 상드의 어린 시절 모습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소설 속에서 파데트는 할머니, 절름발이 동생과 함께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외톨이처럼 생활한다. 그녀는 당당해서 동네 남자아이들과의 말싸움에서 지지 않는다.
 
파데트는 영리하고 생활력도 강하다. 그녀는 할머니의 살림을 돕는다. 키우는 가축을 살찌게 하고 병든 사람을 낫게 하는 약초도 캔다. 인근의 지리에도 밝아 길 잃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 때문에 말괄량이지만 두 남자 주인공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다.
 
노앙에서의 생활은 상드의 자아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필자가 결론적으로 정리하면 상드는 귀족적 지성을 가지고 농민과 하층민들에게 공감하는 사람이 되었다. 비슷한 출생 배경을 가졌지만, 할머니의 자리매김에 비하면 상드의 위치는 조금 더 아래쪽에 있었다. (본 시리즈 전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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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의 조르주 상드. Thomas Sully 그림. 1826. Johnson Collection, Spartanburg, South Carolina USA 소장. [그림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22세의 조르주 상드. Thomas Sully 그림. 1826. Johnson Collection, Spartanburg, South Carolina USA 소장. [그림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12~13살이 되자 사춘기의 상드는 독립심이 강해졌고 할머니의 교육방식에 반항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애정에 대한 갈증과 그리움도 커졌다. 할머니가 엄격하고 모범적인 생활을 강요할 때면 상드는 파리에 가서 엄마하고 살겠다고 소리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둘 사이의 갈등이 깊어가자 할머니는 손녀를 붙잡기 위해 참담한 심정으로 며느리의 과거와 현재의 방탕한 행실을 털어놓았다. 이것은 상드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평민의 자연스러운 삶과 천박한 삶은 다른 것이었다.
 
사춘기의 상드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증오하게 되었고 통제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파리의 수녀원 부속학교로 보내졌다. 그곳 학생들은 ‘악마반’, ‘돌대가리반’, ‘범생이반’ 등 3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상드는 악마반에 들어갔고 곧 그 반의 반장 노릇을 했다. 또래와 장난을 치며 즐거운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가면서 그녀는 종교적 신비주의에 빠졌다.
 
수녀원은 상드를 더 성숙하게 했다. 하지만 수녀가 되려 했기에 할머니는 그녀를 노앙으로 데려왔다. 노앙의 들과 숲으로 돌아온 상드는 물 만난 물고기 같았다. 이복 오빠인 이폴리트는상드에게 말 타는 것을 가르쳤다. 상드는 금방 말을 타고 울타리를 넘고 작은 내를 건너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할머니가 급히 노쇠해졌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할머니는 손녀가 침대맡에서 책 읽어 주는 것을 들었다. 상드가 노앙으로 돌아온 다음 해에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17세의 상드는 노앙의 저택과 그를 둘러싼 넓은 토지를 물려받았다. 큰 재산이었지만, 자신의 절대적 후원자였던 할머니가 없었으므로 그 모든 것은 텅 빈 듯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나타났다. 오랫동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 한쪽에 가지고 있던 상드였다. 하지만 둘은 화합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눈에 딸은 깐깐했던 시어머니의 모습과 겹쳤고, 상드의 눈에 어머니는 돈에 집착하는 천박한 여인으로 보였다.
 
어머니로부터 출구를 찾던 상드는 전부터 알고 있던 아버지의 옛 친구를 찾아갔다가 그 지방의 청년 카지미르 뒤드방(CarsimirDudevant, 1795~1871)을 만났다. 그는 장-프랑수아 뒤드방 남작과 그의 하녀 사이에서 태어난, 상드보다 9살 연상의, 막 제대한 하급 장교였다. 상드의 눈에 그는 미남이었다. 18세의 상드는 어머니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카지미르와 결혼했다. 첫날밤 카지미르는 아내를 거칠게 대했고 상드는 실망했다.
 
조르주 상드와 남편 카지미르 뒤드방 남작. Francois-Auguste Biard 그림. 1823. Musee George Sand et de la Vallee Noire au chateau de La Chatre 소장. [그림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조르주 상드와 남편 카지미르 뒤드방 남작. Francois-Auguste Biard 그림. 1823. Musee George Sand et de la Vallee Noire au chateau de La Chatre 소장. [그림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그래도 그녀는 전통적 가치관에 따라 헌신적인 아내가 되려고 노력하였다. 아들이 태어났고 아이의 이름은 상드의 외조부와 부친의 이름인 모리스로 지었다. 상드는 아들을 몹시 사랑했다. 어쩌다 아이와 떨어져 있게 되면 슬퍼했다. 남편은 교양이 부족했고 다듬어지지 않은 성격에다 상드의 지적 열정과 강한 개성을 받아주지 못했다. 둘은 대화도 통하지 않았고 취미도 맞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드는 실망했다. 무미건조한 결혼 생활은 그녀에게 삶의 활력을 뺏어갔다.
 
그녀는 결혼으로 어머니에게서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남편이 어머니를 대신하여 그녀를 속박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그 시대의 여성은 그렇게 운명 지어져 있었다. 결혼으로 노앙의 저택과 토지는 남편의 소유가 되었다. 남편은 상드의 반대에도 정원의 오래된 나무를 베어냈고 꽃밭을 멋대로 없앴다. 남편은 사람들 앞에서 상드를 때리기도 했다.
 
기분 전환을 위한 여행에서 만난 지방법원 판사 오렐리앙 드 세즈(Aurélien de Sèze)는 상드에게 숨 막히는 결혼생활에 틈을 열어 주었다. 그녀는 지적인 그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속에 쌓인 열정을 쏟아냈다. 그는 상드에게 조언과 위로를 주었다. 후일 정치인과 변호사로 성공했던 드 세즈는 상드처럼 생각이 깊고, 말을 조리 있게 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사물을 보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남편은 아내와 낯선 남자의 플라토닉한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집안에서 하녀와 놀아났다. 우울증에 빠진 상드는 치료를 핑계로 파리여행을 요구했다. 상드는 인근에 살던 한 청년과 파리에서 시간을 보냈고 9달 후 딸 솔랑주가 태어났다. 부부의 사이는 더 벌어졌고 남편은 술과 여자에 더 빠져들었다. 1830년 여름 어느 날 상드는 인근의 청년 지식인들이 모여있는 친구의 저택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한 청년이 상드의 눈에 띄었다.
 
쥘 상도. Henri Lehmann의 원 그림을 Metzmacher가 가필(혹은 복사). 1858.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그는 1858년 프랑스 학술원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이름 상도에서 상드라는 이름이 파생되었다. [그림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쥘 상도. Henri Lehmann의 원 그림을 Metzmacher가 가필(혹은 복사). 1858.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그는 1858년 프랑스 학술원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이름 상도에서 상드라는 이름이 파생되었다. [그림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다른 사람들이 정치 상황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그는 배나무 아래에서 고전을 읽고 있었다. 상드는 다가가서 그와 말을 주고받게 되었다. 19세의 쥘 상도(Jules Sandeau)는 막 문학상을 받은 작가 지망생으로 근처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둘은 말이 통했다. 정원을 같이 걸을 때 그는 버드나무 가지를 걷어 올리며 상드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와의 대화는 시간 가는 것을 잊게 했다. 상드는 다시 한번 꽉 막힌 벽에서 숨구멍을 찾았다.
 
그해 겨울, 상드는 집 서랍에서 남편이 자신을 비방하는 글을 읽게 되었다. 더는 두 사람은 같이 갈 수 없었다. 격한 말다툼 끝에 상드는 남편에게 몇 개월의 자유시간을 요구했다. 남편이 받아들이자 상드는 두 아이를 노앙에 남겨둔 채 파리로 갔다. 파리로 온 상드는 자유를 만끽했다. 극장, 박물관, 도서관 등을 돌아다녔고 지적 욕구를 풀 수 있는 모임도 찾아다녔다. 겨울이었기에 감기에 걸렸고, 비싼 신발은 망가졌다.
 
상드는 신발 축에 쇠를 박아 튼튼하게 만들었다. 옷은 활동에 편리하게 남자 옷을 고쳐 입었다. 남장의 상드는 여자의 출입이 어려운 곳도 들어갈 수 있었다. 파리에서 공부 중이던 쥘 상도를 만났다. 둘은 가진 것이 없었고 센(Seine) 강 근처의 다락방에 들어갔다. 당장 겨울을 나고 생활을 하는 데 돈이 필요했다. 상드는 선물 상자, 보석 상자 꾸미는 일을 했으나 큰돈은 안됐다. 그러다 신문사 피가로(Figaro)의 편집자를 소개받았다. 상드는 틈틈이 글을 써왔었다.
 
돈을 벌기 위해 쥘 상도와 상드는 공동 집필한 몇 편의 글을 ‘J Sand’라는 이름으로 기고했다. 상드가 지어낸 줄거리에 쥘 상도가 쓴, 소설 ‘여배우와 수녀(Rose and Blanche)’는 ‘J Sand’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어 꽤 팔렸다. 출판사는 다음 작품을 원했다. 상드는 마침 노앙에서 소설을 하나 써둔 게 있었다.
 
앵디아나의 표지. 조르주 상드의 이름으로 출간된 첫 소설. 모리스 투쌩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자극적이었다. [그림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앵디아나의 표지. 조르주 상드의 이름으로 출간된 첫 소설. 모리스 투쌩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자극적이었다. [그림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순진한 19세의 여주인공, 앞뒤가 꽉 막힌 나이 많은 남편, 여주인공과 하녀를 동시에 유혹하는 이웃의 바람둥이, 주인공에게 따뜻한 위로와 조언을 주는 지적인 사촌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상드의실제 경험을 반영한 것이었다. 1832년 상드가 이 소설을 ‘앵디아나(Indiana)’라는 제목으로 낼 때 쥘 상도는 자신의 기여가 없었으므로 기존의 ‘J Sand’ 대신 다른 이름을 쓰길 바랐다.
 
이에 편집자는 ‘G Sand’를 생각해냈다. 알려진 기존의 이름 ‘Sand’를 유지하면서도 다른 이름이었다. ‘G’는 ‘George’로 풀어써서 ‘조르주 상드 George Sand’가 완성되었다. 영어식으로 읽으면 ‘조지 샌드’가 되는 남자이름이었다. 결혼과 불륜, 자살 등의 자극적 소재를 다룬 이 한 편의 소설로 상드는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때는 쇼팽이 파리에 와서 두 번째 연주회를 갖던 때였다.
 
이후로 상드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성공을 거두며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고 원고료는 치솟았다. 파리에서 그녀의 자리는 확고해졌다. 성공은 그녀를 더 대담하게 했고 그녀 속에 잠재된 바람기가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기묘하게 엇갈렸던 쇼팽과 상드의 출생배경과 성장 과정에 대한 비교가 다음 편에 이어진다.
 
송동섭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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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섭 송동섭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필진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 한국인이 좋아하는 고전 음악가 쇼팽. 피아노 선율에 도시적 우수를 세련된 모습으로 담아낸 쇼팽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일생의 연인 상드와 다른 여러 주변 인물에 관련된 일화를 통해 낭만파시대의 여러 단면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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