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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 법치만 고집하면 국민통합의 큰 그림 놓친다”

중앙일보 2019.05.10 00:15 종합 8면 지면보기
서울 광진구 아차산의 영화사에서 만난 월주 스님은 "부처님은 지혜와 자비를 일깨우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내가 있는 그대로 부처임을 깨닫는게 지혜요, 내가 부처인 만큼 남도 부처이니 남을 돕고 섬기는 것이 바로 자비다. 그걸 깨닫는 게 부처다"라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서울 광진구 아차산의 영화사에서 만난 월주 스님은 "부처님은 지혜와 자비를 일깨우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내가 있는 그대로 부처임을 깨닫는게 지혜요, 내가 부처인 만큼 남도 부처이니 남을 돕고 섬기는 것이 바로 자비다. 그걸 깨닫는 게 부처다"라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부처님오신날(12일)을 앞두고 서울 광진구 아차산 자락에 깃든 영화사에서 6일 월주(84) 스님을 만났다. 월주 스님은 총무원장을 두 차례나 역임한 조계종단의 큰어른이다. 국제구호를 위한 NGO 활동에도 일생을 바쳤고,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사회적 쓴소리도 마다치 않는다. 영화사 염화실에서 만난 그는 붓다의 법, 붓다의 관점으로 우리 사회의 불통(不通)과 혼란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월주 스님은 먼저 법치(法治)와 덕치(德治), 이 둘의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전 조계종 총무원장 월주 스님
과오 범한 자들, 개전의 정 땐
사면해 사회공헌 기회 다시 줘야

여야 정치권 흑백논리 심각
지지층 비난 두려워 양보 안해

법치와 덕치, 무엇이 우선인가.
“공자님은 인치(仁治)를, 맹자님은 ‘의치(義治)’를 내세웠다. 이 둘을 묶어 ‘덕치’라고 부른다. 반면에 질서와 규율을 중시하는 법가(法家)에서는 법치를 내세웠다. 여야를 막론하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 처음에는 법치를 내세운다. 문재인 정부도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법치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법치만 고집할 때는 결국 한계를 맞게 된다. 오히려 큰 그림을 놓칠 수도 있다.”
 
놓칠 수 있다는 큰 그림이 뭔가.
“우리 사회를 하나로 묶는 일, 즉 사회 통합과 국민 통합이다. 공자님은 덕을 통해 제자를 하나로 묶었고, 제자들은 그를 마음으로 따랐다. 그런 게 ‘큰 정치’다. 과오를 범한 자들이 처벌을 받고 일정 기간 복역한 후 개전(改悛)의 정이 있으면 사면절차를 밟아 석방할 수도 있어야 한다. 국가와 사회 발전에 공헌할 기회를 다시 줄 수 있어야 한다.”
 
월주 스님은 김대중 전 대통령 이야기를 꺼냈다. “정치적 조작과 탄압이란 배경이 있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도 내란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사면됐다. 그런 다음에 우리 사회를 위해 크게 공헌하지 않았나. 그 이후에도 전직 대통령들이 군사반란과 내란, 비자금 조성 등으로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했지만, 그들도 나중에는 사면됐다. 정치범 문제는 사회 통합과 국민 화합의 차원에서 다루면 좋겠다.”
 
 
 
정치범 문제, 국민화합 차원 다뤄야
 
월주 스님은 석가모니 붓다 당시에 인도 북부에서 일어났던 분쟁 일화를 꺼냈다. 사카(석가)족과 콜리야족은 서로 사돈관계였으나 가뭄이 닥친 해에 ‘로히니’라는 작은 강을 두고 다툼이 심해져 전쟁 직전까지 갔다. 이 소식을 들은 붓다는 홀로 분쟁 지역의 한가운데로 가서 앉은 뒤 이렇게 말했다. “옛날 히말라야에 폭풍이 불어와 사라숲을 덮쳤다. 숲속의 나무와 잡초와 덤불은 서로 엉겨붙어 의지하고 있었기에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 반면에 들판에 홀로 있던 큰 나무는 가지와 잎이 무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뿌리째 뽑히고 말았다. 친족들끼리 화목하지 않으면 어떠한 적도 막아낼 수 없다. 두 부족이 화목할 때 번영할 수 있다.” 이 말을 듣고서 사카족과 콜리야족은 싸움을 멈췄다. 월주 스님은 “부처님은 강물보다 더 중요한 게 우리의 생명과 행복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셨다. 정치인들도 이를 깊이 새겨야 한다”고 했다.
 
최근 여당과 야당의 대립과 갈등이 극에 달했다.
“여야 서로 상대를 탓할 일이 아니다.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더 심각한 건 일종의 흑백논리가 양당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식의 흑백논리인가.
“‘양보=굴종’이라고 믿는 시각이다. 양보할 경우 정치인들은 지지세력으로부터 비난을 받을까 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흑과 백을 도식적이고 경직되게 가른다. 이게 큰 병폐다. 그런 논리가 지배하는 한 양보와 포용과 타협이 있을 수 있겠나.”
 
월주 스님은 “불국토는 멀리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부처님은 이상세계를 따로 설정하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욕심을 버리고 청정한 마음을 내면 곧바로 부처이며, 낱낱의 부처가 어울려 살아가는 그 땅이 불국토”라고 덧붙였다.
 
현실 속의 불국토를 위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화쟁(和諍)’이다. 나만이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린 것이 아니라 내가 옳으면 다른 사람도 옳고, 다른 사람이 틀리면 나도 틀렸다는 성찰이 화쟁의 참된 의미다. 그런 화쟁이 한국 사회에 절실하다.”
 
 
내가 옳으면 남도 옳다는 ‘화쟁’ 필요
 
‘화쟁(和諍)’은 삼국통일 후 국론이 분열되던 시기에 신라의 원효가 주창한 불교사상이다. 서로 대립하는 의견이나 사상이 만나 한 차원 더 높은 사상으로 태어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월주 스님은 ‘개시오입(開示悟入)’ 네 글자를 말했다. “눈을 열도록 하고, 부처의 지견을 보이고, 깨닫게 하고, 그 경지에 들어가게 한다. 이게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다. 다시 말해 중생이 지혜와 자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내가 부처임을 깨닫는 게 지혜요, 내가 부처인 만큼 남도 부처이니 남을 돕고 섬기는 게 자비다. 지혜와 자비의 마음을 깨우치면 너와 나, 우리가 모두 부처다. 그곳이 불국토다.”  
 
월주 스님
1980년과 94년 두 차례에 걸쳐 제17대, 제28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했다. 신군부가 집권한 1980년 전두환 지지 성명 요구를 거부하고 민주화 운동을 후원했고, 조계종단 민주화를 위해 총무원장 3선 금지 제도를 마련했다.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 때는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와 함께 실업극복국민재단을 설립했고, 지금도 ‘함께일하는재단’(구 실업극복국민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현재 국제구호NGO 지구촌공생회 이사장을 비롯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쉼터 ‘나눔의집’을 설립해 28년째 이사장을 맡고 있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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