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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마리 아기돼지' 중 누구? 진짜 살인범 찾아라

중앙일보 2019.05.09 10:00
[더,오래] 이광현의 영어추리소설 문학관(4)
아가사 크리스티의 '다섯 마리 아기돼지 (원제 : Five Little Pigs, 1941)'. 영국 폰타나 출판사의 문고판 원서다. 1990년 종로 서적에서 구입했다. [사진 이광현]

아가사 크리스티의 '다섯 마리 아기돼지 (원제 : Five Little Pigs, 1941)'. 영국 폰타나 출판사의 문고판 원서다. 1990년 종로 서적에서 구입했다. [사진 이광현]

 
스코틀랜드의 역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메리 스튜어트 여왕 (Mary, Queen of Scots, 1542~1587)이다.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5세와 프랑스 명문 귀족 출신인 마리 드 기즈 사이에서 태어났다. 나중에 스코틀랜드 여왕이자 프랑스 왕비가 된 그는 유년시절엔 화려한 삶과 영광을 누렸다.
 
180cm가 훨씬 넘는 늘씬한 키에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다. 프랑스어, 라틴어, 그리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음은 물론 문학, 사냥, 승마, 바느질, 악기에도 능해 당대 왕녀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세 번에 걸친 결혼, 두 번째 남편이었던 단리 경의 살해에 가담했다는 음모, 잉글랜드와의 끝없는 종교분쟁에 휩쓸리다 결국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처형당한 그의 삶은 절대 화려하지만은 않았다. 그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제각각의 상황, 사건 발생의 시점에 따라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메리 스튜어트 여왕. 그에 대한 평가는 상황, 사건 발생의 시점에 따라 달라졌다. [사진 Wikimedia Commons]

메리 스튜어트 여왕. 그에 대한 평가는 상황, 사건 발생의 시점에 따라 달라졌다. [사진 Wikimedia Commons]

 
마더 구스의 동요를 인용해 하나의 살인사건을 두고 상황이 어떤 식으로 다르게 인식되어, 어떻게 다른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다섯 마리 아기돼지’는 동일 상황을 대하는 다양한 인간 심리를 파헤친 걸작이다. ‘다섯 마리 아기돼지’의 동요 속으로 들어가 보자.
 
16년 전 화가 에이미어스 크레일이 자택 정원에서 독살당했다.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 악명 높았던 그는 모델인 엘사와 사랑에 빠져 아내 캐롤라인의 원한을 산다. 에이미어스가 마신 맥주잔에서 캐롤라인이 훔친 독이 검출되고 살인죄로 기소된 캐롤라인은 변변한 항변도 못 한 채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서 병사한다.
 
그런데 에이미어스와 캐롤라인의 딸인 칼라가 명탐정 에르퀼푸와로를 찾아와 어머니가 ‘자신은 무죄’라고 쓴 편지를 남겼다며 진범이 누구인지 조사해 달라고 부탁한다. 에르퀼푸와로는 사건 당시 연루되었던 다섯 사람과 인터뷰를 시작하는데…….
 
 
필립 블레이크 - 이 아기돼지는 시장엘 갔네(This little pig went to market).
“캐롤라인은 약하고 힘없는 모습을 보여 사람들로 하여금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게 했죠(Caroline had a frail, helpless look about her that appealed to people’s chivalry).” “항상 사랑스러운 듯하면서도 뭔가 불행하고 그러면서도 사람을 강하게 끄는 매력적인(always sweet and unfortunate and magnetic), 하지만 실제론 냉정하게 계산하고 음모를 꾸미는 여자였죠(actually a cold calculating, scheming woman).”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이 그 여자와 흡사했을 거예요(Mary Queen of Scots must have been a bit like her.).” - 때론 순교자로(as a martyr), 때론 부도덕하고 음탕한 여자로(as an unprincipled and wanton woman), 때론 머리가 둔한 성인으로(as a rather simple-minded saint), 때론 살인자, 음모자로(as a murderess and intriguer), 또는 상황과 운명의 희생자로(as a victim of circumstances and fate) 말이죠.
 
메레디스 블레이크 - 이 아기돼지는 집에 있었네(This little pig stayed at home).
“난 캐롤라인을 무척 좋아했죠(I had always been very fond of Caroline). 한때는 결혼을 원했던 적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꿈은 애초에 무산되어 버렸죠(But that was soon nipped in the bud).”
 
엘사 그리어 - 이 아기돼지는 로스트비프를 먹었네(This little pig ate roast beef).
“캐롤라인은 마땅히 처형되었어야죠. 그게 내가 원했던 바예요(I only wanted one thing.― To get her hanged, of course).”
 
푸와로는 엘사의 손 - 아름답지만 길게 굽은 손톱을 가진, 약탈자의 손을 유심히 지켜봤다(Poirot noticed her hands-beautiful hands but with long curving nails, predatory hands).
 
미스 윌리엄즈 - 이 아기돼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네(This little pig got none).
“난 크레일 씨를 좋아하지 않았죠. 내가 그의 아내였다면 난 그를 떠났을 거예요. 어떤 여자라도 참지 못할 면들이 그에게 있었죠.”(There are things that no woman should put up with.)
 
안젤라 워렌 - 이 아기돼지는 집에 돌아오는 내내 ‘꿀꿀꿀’ 울었네(This lilltle pig cried all the way home).
“캐롤라인 언니에게 불리한 증거가 엄청나게 많다는 건 틀림없어요(I’ve no doubt that the circumstantial evidence is overwhelming). 하지만 난 언니가 죽이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어요. 누구보다도 언니를 잘 알 수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거든요(But in Caroline’s case there were special reasons-reasons which I have a better chance of appreciating than any one else could).”
 
1980년대 대학생들의 만남의 장소로 곧잘 이용되었던 추억의 장소, 종로 서적을 회상하며... [사진 이광현]

1980년대 대학생들의 만남의 장소로 곧잘 이용되었던 추억의 장소, 종로 서적을 회상하며... [사진 이광현]

 
자, 캐롤라인은 무죄일까? 그렇다면 이 다섯 마리 아기돼지 중 과연 누가 범인일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의’ ‘적폐청산’이란 명분으로 전 정권에 대한 표적수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집권 당시엔 당당하게 시행되었던 온갖 화려한 정책들이 다음 정권에서는 부정부패의 산물로 전락하여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 시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위정자에 따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 판단 기준의 비일관성은 국가적 혼란을 초래해 국민의 원망을 사고 있다. 때론, 우리 사회가 오직 남의 약점에만 천착하는 ‘혐오사회’로 치닫고 있지는 않나 하는 우려를 자아내기도 한다. 30-50클럽에 가입한 세계 7개국 중 피식민지 경험을 지닌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는 ‘자화자찬식 경제 성적표’ 내밀기 수법은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하고 속이 들여다보이는 꼼수다.
 
나와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틀린 것’으로 간주하는 경직된 ‘이분법적 패러다임’이 아닌 역지사지의 관용과 유연성이 허용되는 ‘다원적 패러다임’이 뿌리내린 대한민국 안에서 비로소 우리는 선진국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광현 아름다운인생학교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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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현 이광현 아름다운 인생학교 강사 필진

[이광현의 영어추리소설 문학관] 영어 추리소설을 즐겨읽는 아름다운 인생학교 강사. 우리 모두는 '페르소나'를 쓴 이중적 인격의 소유자이다. 현대 사회가 설정한 패러다임에서는 누구나 가식적 가면을 하나씩 지닌 채로 본연의 나를 감추고 살아간다. 등장인물의 인간관계라는 드라마속에서 빈틈없는 논리 전개와 극적인 반전을 구사하여 페르소나를 벗겨내고 '인간의 민낯'을 들춰내는 대표적 추리 소설 작품을 통해 인간 본래의 모습이 복원되는 사회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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