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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붕괴]‘통곡의 벽’ 예타 넘은 지방 들떠있지만 인프라의 역습 우려도

‘통곡의 벽’ 예타 넘은 지방 들떠있지만 인프라의 역습 우려도

중앙일보 2019.05.09 05:01
정부가 지난 1월 29일 발표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사업 대상에 서부경남KTX가 포함됐다. 사진은 서울에서 출발한 KTX가 진주역에 정차한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 1월 29일 발표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사업 대상에 서부경남KTX가 포함됐다. 사진은 서울에서 출발한 KTX가 진주역에 정차한 모습. [연합뉴스]

“충북이 최대 수혜자가 됐습니다.”
 
지난 1월 31일 충북도청에서 열린 ‘충북선 철도 고속화 예타 면제 확정 환영대회’. 이시종 지사는 이틀 전 정부의 예비 타당성 조사(예타) 면제사업 발표를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1월 29일이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최고의 날이었다”고도 했다. 1조5000억 규모의 이 사업은 충남 조치원과 충북 제천을 잇는 충북선(115㎞) 중 청주공항~제천간 87.8㎞ 노선 개량으로 도의 숙원이었다. 구부러진 노선을 직선화해 철도 시속을 120㎞에서 230㎞로 끌어올리는 사업이다. 도는 2011년부터 이 사업을 추진해왔지만 예타 제도는 ‘통곡의 벽’이었다. 2017년 10월 KDI(한국개발연구원) 예비타당성 중간 점검에서 ‘비용 대비 편익(B/C)’이 0.37로 나왔다. 1만원 투입시 경제 효과가 3700원이라는 의미다. 이번에 사업이 예타 면제 대상에 포함될 수 있었던 것은 ‘강호축(강원~충청~호남)’연결 구상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지사는 “강원과 호남의 중간 다리인 충북선 철도를 고속화하면 강호축이 연결돼 국토균형발전을 앞당길 수 있다”는 논리를 펴왔다.  
 
경남도 충북 못잖은 수혜자다. 김천~거제를 잇는 남부내륙철도(서부 경남 KTX)가 예타 면제사업에 선정됐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1호 공약인 이 사업 규모는 4조7000억원으로 정부 발표 23개 사업(24조1000억원) 중 가장 많다. 그동안 조사에서 최대 B/C가 0.72로 예타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철도가 지나는 김천·합천·진주·고성·통영·거제 단체장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지자체는 홈페이지를 사업 선정 소식으로 장식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월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월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예타 면제사업 발표 100일을 맞은 8일, 사업 대상 지역은 환영 분위기에서 경기 부양 기대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거제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김모(57)씨는 “(부산~거제간) 거가대교보다 고속철도가 관광객 유입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며 “조선업 불황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는데 내년 말 남부내륙철도 기본 계획이 마련되면 부동산 가격도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도 김두문 남부내륙고속철도추진단장은 “거제는 관광 활성화를 꾀하고, 창원은 물류 중심지로 특화시키는 등 고속철도를 다각도로 활용하면 국가 전체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충북에선 철도 고속화가 도 전체 발전과 인구 유입의 견인차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강하다. 김대건 청주시관광협회 사무국장은 “고속화 사업이 끝나면 북부권에 편향된 관광산업이 청주와 진천·음성 등 충북 중부권까지 확대될 수 있다”며 “여기에 청주공항 노선이 확대될 경우 외국인 관광객이 청주에 내려 충주·제천과 강원도 명소를 찾는 관광상품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토 균형발전을 전면에 내세운 예타 면제사업은 지방에는 가뭄의 단비다. 인구가 줄고 공장이 하나둘씩 문을 닫는 상황에서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만한 단기 경기부양책은 찾기 힘들다. 지방이 기업과 관공서 유치와 더불어 예타 면제 사업 선정에 목을 매는 이유다. 김영민 기획재정부 타당성심사과장은 “1970년대 이후 수도권 중심의 불균형 발전이 계속 이뤄져 왔고 참여정부 때 균형발전을 외쳤지만, 수도권 집중화는 더 심화했다”며 “지역의 열악한 생활기반을 정부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해 정책적으로 사업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23개 예비타당성 면제 사업. [기획재정부]

정부가 추진하는 23개 예비타당성 면제 사업. [기획재정부]

그러나 예타 면제의 고삐가 풀린 데 대한 우려는 적잖다. 정부는 지난달 예타 심사 기준을 더 완화했다. 국책 사업의 문호는 그만큼 넓어진다. 1999년 외환 위기 극복 과정에서 도입된 예타는 나라 곳간의 문지기이자 방파제였다. 1999~2017년 685건의 예타를 통해 141조원의 예산을 절감했다(2017년 KDI 공공투자관리센터 보고서). 문재인 정부 들어 예타 면제 봇물이 터지면서 내년 총선을 고려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년간 문재인 정부 예타 면제 규모는 61건 53조7000억원으로, 이명박 정부 5년 규모(88건, 60조3000억원)에 육박한다.
  
예타 면제 선정 사업 자체를 두고도 말들이 많다. 토건국가형 SOC 사업 편중은 그 첫째다. 인공지능과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시기에 85% 가량의 사업비(20조5000억원)가 이 분야에 투입된다. ‘제2의 4대강’사업과 뭐가 다르냐는 비판은 이 때문이다. 통영환경운동연합 정용재 사무국장은 “4대강 사업 때 지방의 정주 여건이 개선돼 인구가 유입될 것이라고 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오히려 김천과 거제를 오가는 남부내륙철도 건설로 수도권과 지방간 이동 시간이 줄어들면 ‘빨대 효과’가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거제에 거가대교가 건설되자 거제 주민들이 부산에 가서 소비하는 부작용을 들면서다.  

 
일부 사업은 중복 투자의 우려도 적잖다. 균형 발전을 내세우면서 사업을 지자체별로 균배하면서다. 건국대 김원식 교수(경제학)는 “8000억원이 들어가는 새만금 국제공항은 기존의 광주공항과 중복된다”며 “인근에 청주공항과 무안공항도 수요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새만금 국제공항을 지으면 공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예타 면제사업으로 철도 등 인프라가 구축돼도 문제다. 지방 인구가 감소하는 데다 10년 후에는 65세 이상 고령 비율이 급증하는 만큼 이용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인프라의 수익성이 낮아 자칫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충북선의 경우 지난해 이용객 수가 147만여 명으로, 여객분담률이 1.04%에 불과하다. 경부선(42.74%), 호남선(11.7%), 전라선(9.08%) 등 주요 노선의 여객분담률을 크게 밑돈다. 충북도는 호남과 강원 연결에 기대를 걸지만, 고속화 사업 후에도 승객 확보는 큰 과제로 남을 전망이다. 건국대 김 교수는 “수익성이 낮은 사업은 민간사업자를 찾기 어렵다”며 “결국 국비로 시설을 만들고, 운영비를 감당해야 한다. 운영을 지자체가 맡아야 하는 사업은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에 족쇄가 될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인프라의 역습’은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1990년대 중반 버블 붕괴 후 대규모 SOC 투자로 경기 부양에 나섰다가 인구 감소 등으로 부메랑을 맞는 곳이 한둘이 아니다. 현재 JR 홋카이도는 적자로 대폭적인 운임 인상을 검토 중이다.  
한국환경회의 회원들이 지난 1월 29일 오전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추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한국환경회의 회원들이 지난 1월 29일 오전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추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예타 면제사업이 추진되면서 지역 간 갈등 양상도 일어나고 있다. 충북선 철도 고속화 사업은 제천역 경유와 봉양역 경유를 놓고 지역 민심이 엇갈리고 있다. 남부내륙철도 사업 역시 역사 위치를 두고 거창군, 의령군, 사천시, 합천군이 경합 중이다. 김두문 남부내륙고속철도추진단장은 “의견 수렴의 한 과정일 뿐”이라며 논란을 일축했지만, 남부내륙철도 기본계획이 수립되는 2020년 9월 전후로 지역 간 갈등은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정권 교체 이후의 후유증 우려도 나온다. 김두얼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예타 면제 사업은) 4대강 사업처럼 정권이 바뀌고 나면 부작용이 드러나고 정치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정권마다 특정 사업을 하기보다는 선순환 구조의 시스템을 마련하는데 국비를 쓰는 게 맞다”고 조언했다. 건국대 김원식 교수는 “세계적 추세가 지방 균형보다는 메가시티 위주로 경제가 움직이고 있다”며 “인구 절벽인 지방에 똑같은 세금을 투입해봤자 소생 가능성이 없다. 3~4개의 지자체를 통합해서 투입 비용 대비 최대 효과를 끌어낼 수 있도록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부산ㆍ청주=이은지ㆍ최종권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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