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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도 않은 폐비닐 4만톤 재활용한다고 지원금 86억원 꿀꺽

중앙일보 2019.05.08 14:31
김관정 전주지검 차장검사가 8일 전주지검 중회의실에서 '재활용 쓰레기 지원금 편취 및 감독기관 비리'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김관정 전주지검 차장검사가 8일 전주지검 중회의실에서 '재활용 쓰레기 지원금 편취 및 감독기관 비리'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있지도 않은 폐비닐 4만여 t을 수거·재활용했다고 속이고 라면 회사 등이 내는 법적 분담금 86억원을 가로챈 업자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감독 기관들은 이런 비리를 알고도 눈감아준 것으로 나타났다.         
 
전주지검은 8일 "최근 3년간 폐비닐 4만2400t을 처리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분담금(지원금) 86억원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로 회수·선별업체 및 재활용업체 대표 10명(구속 8명, 불구속 2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들 업체가 지원금을 빼돌린 것을 알고도 묵인한 한국환경공단 직원 2명과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이하 유통센터) 직원 1명 등 3명도 업무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에 따르면 수도권 최대 규모 폐비닐 회수·선별업체 2곳(인천·경기 김포)의 실제 대표 A씨(59)는 각 업체 사장 2명과 짜고 2015년 1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폐비닐 2만7600t을 재활용업체에 넘긴 것처럼 허위 계량확인서를 작성·제출해 22억7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다. 광주에 있는 회수·선별업체 대표 3명도 같은 방법으로 지원금 13억7000만원(1만4800t 분량)을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호남 지역 최대 재활용업체 2곳(전남 영광)을 운영하는 대표 B씨(58)는 비슷한 시기 회수·선별업체로부터 폐비닐 1만2725t을 받지 않았는데도 이를 가지고 재생원료 등을 생산한 것처럼 신고해 지원금 21억4000만원을 타낸 혐의를 받고 있다. 전북 진안·정읍과 전남 장성 재활용업체 대표 3명도 이런 식으로 지원금 28억원(1만8920톤)을 챙겼다.     
 
한국환경공단 호남지역본부 과장과 팀장은 B씨 업체 2곳의 지원금 편취 증거를 확인하고도 2016년 7월 현장 조사 때 업체의 시간당 재활용 가능량을 부풀려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과장은 지난해 10월 다른 업체로부터 지원금 단가가 인상되도록 품질 등급을 높여 달라는 청탁을 받고 평가 점수를 매긴 혐의(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도 받고 있다. 유통센터 팀장은 각각 2017년 12월과 2018년 2월 인천과 광주 회수·선별업체의 지원금 편취 사실을 알고도 무혐의 조치하거나 제재를 낮춰준 것으로 확인됐다.  
 
최민지 환경부 자원재활용과장이 8일 전주지검 중회의실에서 "재활용 실적 관리 체계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김준희 기자

최민지 환경부 자원재활용과장이 8일 전주지검 중회의실에서 "재활용 실적 관리 체계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김준희 기자

검찰에 따르면 이들 10개 업체가 3년간 가짜로 처리한 폐비닐 4만2400t은 라면 봉지 90억개와 맞먹는다. 국내 연간 라면 소비량은 36억개다. 환경부는 지난해 10월 전북 정읍에 있는 성형제품 제조업체를 오가는 트럭이 서류에 적힌 수보다 현저히 적은 정황을 포착하고 이곳을 관할하는 전주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번 범행은 각각 회수·선별 및 재활용 업계 전국 1위인 업체 대표 A씨와 B씨가 애초 계획하고, 전국에 있는 동종 업계 대표들을 끌어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업체들이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제도의 허점을 악용했다"고 봤다. 업체끼리 미리 공모해 폐비닐의 회수·선별→재활용→제조 단계마다 매입·매출 실적을 일치시킨 조직적 범죄라는 것이다.
 

전주지검 김관정 차장검사는 "회수업체와 재활용업체, 감독 기관이 먹이사슬처럼 얽혀 있어 한 사람이 자백하면 나머지 허위 거래가 드러나는 구조"라며 "생산자가 법률에 따라 분담금을 납부하기 때문에 업자들이 가로챈 돈은 공공 재원으로 볼 수 있고,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라고 했다.  
 
환경부는 적발된 10개 업체에 대해 계약을 해지하고, 편취한 지원금도 환수할 방침이다. 또 실적을 조작한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최근 3년간 유통센터에 실적을 제출한 폐비닐 회수·선별 및 재활용업체 261곳에 대해 이달부터 7월까지 전수 조사한다.  
 
최민지 환경부 자원재활용과장은 "실적을 임의로 조작하지 못하도록 전국 448개 선별·재활용업체에 차량자동계량시스템을 구축하고, 재활용품을 거래할 때 입·출고량이 전산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유통센터와 한국환경공단에 전송되도록 할 계획"이라며 "사업장 계량대 주변에는 차량번호와 적재함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폐쇄회로TV(CCTV)도 달겠다"고 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제도란>

생산자책임재활용 제도(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는 생산자가 재활용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납부한 분담금을 재활용업체의 재활용 실적에 따라 지원금으로 지급해 회수·재활용을 촉진하는 제도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라면 제조업체 등 포장재를 이용한 제품 생산자는 제품 및 포장재 폐기물 일정량을 재활용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런 의무 생산자는 폐기물을 직접 처리하거나 회수·선별업체와 재활용업체에 수거·재활용을 위탁하는 대신 분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환경부 산하 준공공기관인 한국환경공단은 연 1회 실적 조사 후 재활용 실적을 확정한다. 환경부로부터 실적 점검 업무를 위탁받은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는 의무 생산자가 납부한 분담금을 매달 회수·선별업체와 재활용업체에 지원금으로 지급하고, 분기마다 실적 조사를 한다.

회수·선별업체는 폐비닐 수거 후 재활용 가능한 재질만을 선별해 재활용업체에 넘긴다. 재활용업체는 폐비닐을 녹여 성형(成形) 제품으로 제조하거나 합성수지 제품의 재생원료로 공급한다.

▶출처: 환경부·전주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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