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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의원 입북 사건 안기부 발표(요지)

중앙일보 1989.07.17 00:00 종합 3면 지면보기
<사건개요>

▲서경원은 85년 2월 하순께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서 개최된 「가톨릭 국제 농촌 청년연맹 회의」에 한국 가톨릭 농민회 대표로 참석한데 이어 85년4월 서독 방문 중 북한 공작원 성낙영 (33·무직)에게 유인되어 오스트리아 칼츠부르크에 가서 북한 공작 지도원들과 접선, 농민투쟁 실태와 국내 각계 각층의 반정부 투쟁 방향을 토의한 후 평양 방문과 김일성 면담 주선 및 농민 투쟁 자금 지원을 약속 받고 포섭되어 민족 통일을 위해 헌신할 것을 결의하는 한편, 북측과의 통신연락·조직을 약정하고 돌아갔음.

▲서경원은 86년 4월 서독에서 북한 공작원 성낙영과 다시 접선, 그의 안내로 유고 베오그라드 주재 북한 대사관에 가 1박하면서 평양에서 직접 파견된 소위「조국 평화 통일 위원회」(조평통) 간부 김모(60)로부터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 방안의 정당성과 비디오를 통한 북한체제의 우월성 등에 관해 세뇌교육을 받고, 그들의 요구에 따라 북한 공작원으로 정식 등재하거나 북한 노동당에 입당하기 위한 사전 절차의 하나인 자신의 상세한 신상이력서를 제공한 다음「향후 지속적인 공작금 지원과 김일성 면담 주선」을 약속 받고 「더욱 가열찬 통일 투쟁을 전개하라」는 지령 사항을 수수하였음.

▲88년 8월에는 북한공작원 성낙영으로부터 입북 방법을 통보 받고 북한 공작 지도원들의 안내로 북한「공무여권」을 이용, 체코 프라하에서 북한 특별기편으로 밀입북하여 2박3일간체류하면서 김일성을 면담, 남북 통일 성취를 위한 남북한의 과제 등 정세보고를 한 후 통일의 전제 조건으로 불가침 조약 체결과 미군 철수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김일성의 연방제 통일 방안에 적극 동조하였으며 대남 공작 총책인 허담과 회합, 대중 투쟁 방법 등을 교양 받고 「농민 운동을 대중 조직화하여 남북 교류를 추진할 것」「국회 내에 동조 세력을 육성할 것」「공작금 반입 및 연락 루트로 활용하기 위해 위장 업체를 설립 운영할 것」등의 지령과 함께 미화 5만 달러의 공작금을 받아 국내로 돌아와 원일 레벨㈜을 인수, 위장업체로 운영하면서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국회와 가톨릭 농민회 등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등 장기간 암약해 온 전형적인 북한 고정 간첩으로 밝혀졌음.

▲특히 서경원은 88년4월 제13대 국회의원 총선시 「정계에 진출하라」는 북한의 공작지령에 따라 소위 재야 입당파의 일원으로 평화 민주당에 입당, 전남 함평·영광 지역구 공천을 받은 다음 북한으로부터 2회에 걸쳐 서독화 2만6천마르크 (한화 1천1백만원 상당) 를 지원받아 선거운동에 사용하는 등 북한의 지령과 자금 지원에 의해 제도권 정치 투쟁의 합법적 공간 확보를 위한 국회 침투 사실이 드러났음.

▲한편 서경원은

-85년4월 서독에서 북한 공작원에 포섭시, 그리고 86년4월 유고 북한 대사관 수용 교육시 및 88년8월 밀입북시 국내정세 보고.

-88년7월 자신의 투쟁 경력과 농촌 문제에 대한 대책을 인터뷰한 기사가 게재된 『여성동아』(88년6월)를 비롯하여 『월간조선』『멋』『오늘의 한국』등을 자신의 비서관 방양균을 시켜 재독 북한 공작원 성낙영에게 우송.

-88년11월 비서관 방양균을 공작금 수령 목적으로 서독 밀파시 서독 거점 북한 공작원 이모에게「수세 폐지 운동」등 유인물 6종 6강, 평민당내 재야 입당파 국회 의원들로 구성된 「평민연」회의에서 논의한 내용을 종합한 국내 정세 분석 내용을 보고

-88년8월 밀입북시 북한 공작 지도원에게 13대 국회 의원의 학력·경력 등 인적 사항이 자세히 기록된 「국회수첩」(88년7월27일 발행) 과 자신의 투쟁 경력 및 프로필 소개 기사가 실린『샘이 깊은 물』(88년7월)『오늘의 한국』(88년6월)등 잡지 6종을 제공, 대북 보고를 하였음이 밝혀졌음.

▲서경원은 85년4월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된 이래 88년12월까지 북한으로부터 14회에 걸쳐 공작금으로 미화 8만5천 달러, 서독화 3만4천1백 마르크 등 한화 총7천8백70만원 상당을 수수하였으며 최근에도 북한으로부터 공작금 10만 달러를 수렁하기 위해 출국을 기도한 사실이 드러났음.

<정치입문 . 국회침투>

▲서경원은 87년12월중순 서독 북한 공작원 성낙영으로부터 「지금이 적기이니 차기 국회에 진출하라」는 지령을 받고 88년1월「가농」회장을 사임하고 재야 통합모임인「범민주 정치세력 통합 추진 협의회」결성에 가담하는 등 활동을 하였으며 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88년2월 평민당에서 재야영입 문제가 거론되자

-현 평민당 문동환 의원 및 정상용 의원, 정책 기획실장 임채정 등 재야 정치 지망생들과 협의, 평민당에 정식으로 입당하였고

-평민당 입당 후 전남 함평·영광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당시 현역 의원 이진연 (59)과 경합, 공천 심사 위원회에서 결정을 보지 못하고 김대중 총재의 결정으로 공천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음.

▲평민당의 공천으로 국회 의원에 출마한 서경원은 북한 공작원 성낙영에게 선거자금 지원을 요청, 그가 재독 유학생 정명영 (39)을 통해 보내준 8천 마르크, 전 명동성당 청년 연합의장 기춘 (3O) 을 통해 보내준 1만8천 마르크 등 서독화 2만6천마르크 (한화 1천1백만원상당) 와 평민당 지원금 등으로 선거 운동을 하여 제13대 국회 의원에 당선됨으로써 합법적으로 국회에 침투하였음.

<김일성 면담>

▲서경원은 자강도 별장에서 휴양 중이던 김일성을 만나기 위해 8월19일 17시30분 비행기로 자강도 초대소에 가서 1박하고 다음날 아침 10시30분 김일성 별장에 도착, 김일성을 만나 3차례의 포옹과 기념사진 촬영 후 허담과 북한 공작 지도원「60대 김모」가 배석한 가운데 30분 동안 면담하였음.

<허담의 지령>

서경원은 체북 마지막날인 88년8월20일 16시부터 1시간 동안 대동강변 초대소에서 북한 대남 공작 총책인 조국 평화 통일 위원회 위원장 허담과 단독 면담하며 그로부터

-첫째, 『국회에서의 동조 세력을 육성하라』

-둘째, 『북남 국회 회담을 보면 평민당이나 민정당이나 다를 게 없다. 평민당이 통일을위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촉매 역할을 하라』

-셋째, 『김수환 추기경 방북을 추진하라』

-넸째, 농민 운동을 대중 조직화하여 북남 교류를 촉진하는 동시에 재야 운동권을 결속,당·사회단체·농민·학생 등 모두가 정부 간섭 없이 직접 북한과 대화할 수 있도록 하라』

-다섯째, 『남한의 운동권이 북쪽 용어를 여과없이 구호로 사용하여 과격한 운동을 하지 않도록 하라. 북쪽이 남한 혁명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지 모르나 대중의 기반을 얻는데 바람직 하지 못하므로 자기들 용어를 창의적으로 개발하여 서두르지 말고 안전하게 투쟁하도록 하라』

-여섯째, 『공작금은 계속 보내주겠다. 공작금 출처 은닉과 연락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위장 업체를 국내외에 설립, 운영하라』는 6개항을 지령하자 서경원은 『남한으로 돌아가 추기경님과 의논, 방북이 이루어지도록 하겠으며 조국 통일 사업을 힘껏 하겠습니다』 고 맹세했음.

▲이어서 허담으로부터 평민당 김대중 총재의 차기 집권 가능성」과 『전민련 등 재야단체에 지도자로서 적격자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 『두 김씨의 극한적인 분열과 대립, 그리고 지역 감정 등으로 나뉘어 있어 국민들의 앙금이 아직도 남아 있다. 두 김씨가 하나가 되었더라면 민주화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김대중 총재는 능력은 있지만 중산층이 탐탁치않게 보는 점이 문제다. 그리고 군부를 장악하는데 역부족이기 때문에 김대중 총재의 집권 가능성은 앞으로 두고 볼 문제다』

- 『현재로선 김 총재를 제외하고는 재야 지도자로 백기완·계훈제·문익환·이재오·장기표·이부영 등이 있으나 재야를 지도할만한 적격자가 없다고 본다』고 하였음.

<연락·접선·음어>

▲연락시 보안 유지를 위해 「음어 조직」을

-서 의원→원 박사

-북한 대사관 직원→이 선생

-미화1천불→성경책 1권

-김수환 추기경→어른

-추기경 방북 추진 상황→성가대 연습

-방북→고향 방문

-시국이 안 좋다→머리가 아프다

등과 같이 약정 하였으며

▲「접선조직」으로,

-북한 공작 지도원이 평양에서 오는 시간을 고려해 5일전에 전화, 약속 일시를 정하여 「제네바공항」임의 지점에서 접선하고

▲「대북보고」에 대해,「열심히 활동하면 신문에 보도될 것이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으므로 보고하는데 너무 구애받지 말라」고 하였음.

<국회침투 활동>

▲서경원은 국회 침투 이후 허담이 지령한 사항을 수행할 목적으로 「가농」등 운동권 단체와의 연대를 위해 관련자와 빈번히 접촉하는 한편 그들이 주관하는 행사에 적극 참석하고 ▲국회의원이란 신분을 십분 활용하여 합법적 국회발언을 통해 『북한에서는 60년대 말에 김매는 기계를 개발해서 김을 매고 있는데 우리 나라는 선진국인 외국의 기업으로부터 독성이 강한 제초제를 수입해 쓰라고 강권하고 있다』『북한이라든가, 소련·중공 연안의 목재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것으로 아는데 왜 캐나다 목재를 가져오는가』

-『북한 함경도 벽창이라는 데서 제일 질이 좋은 쇠고기가 나온다. 일 잘하고, 고기맛이 좋은 벽창소와 남한의 황소를 교미시켜 전통적인 한우를 키우고 장려하자』고 주장하여 북한 찬양 발언 및 농민 교류를 통해 정부를 배제한 남북 교류 분위기를 고조시키려고 하였음.

<공작금 사용내역>

-88년12월 인수한 위장 업체인「원일레벨」의 운영자금

-「영광 가톨릭 농민회」「전국 농민 운동연합」「천주교 정의 평화 실천 협의회」「민주화 실천 가족 운동 협의회」등 단체의 운영비 지원

-「가농」회장시 활동비 충당

-내연의 처 고금숙의 생활비 보조 등에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음.

<법적 처리>

▲서경원으로 부터 밀입북 사실을 듣고 이를 당국에 알리기 않은 김수환 추기경과 함세웅·정호경·문정현·장익·김승오 신부 등에 대해서는 7월7∼8일 서경원으로부터의 밀입북사실 청취 경위 및 불고지 이유 등을 엄정 조사한 결과

-『이들은 서경원의 밀입북 사실 고지가 고해성사는 아니었으나 성직자의 양심으로 당국에 신고할 수는 없었다』는 성직자의 종교적 입장을 토로하면서 『정부 당국과 협의를 거치지 않은 무분별한 개인적 입북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기본 입장을 명백히 하고있고

-서경원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김수환 추기경 등 가톨릭 성직자들을 정략적으로 이용했고, 이들이 서경원의 방북 권유에 동조하거나 간첩 활동을 지원함이 없이 성직자의 종교적 입장에서 신고치 못하고 고뇌해온 점등을 감안, 입건치 않기로 하였음.

▲윤재걸을 통해 서경원 밀입북 사실을 알고도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한겨레 신문사 편집위원장 장윤환과 편집부위원장 겸 정치부 편집위원 김명걸은 편집 간부로서 간접적으로 알게된 사실 등을 고려하여 입건치 않기로 하였음.

▲또한 평민당 김대중 총재와 전 부총재 문동환 의원에 대해서도 서경원 입당 경위, 국회의원 공천 경위, 사전 입북 사실 인지여부 등을 조사할 계획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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