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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맥주 살리려니 소주 비명···정부 '술 세금' 건드리다 혼쭐

중앙일보 2019.05.08 11:44
국산 수제맥주. [사진 이마트]

국산 수제맥주. [사진 이마트]

주세 개편안 발표가 연기되며, 업계가 혼란에 빠졌다. 7일 기획재정부는 애초 지난달 말에서 이달 초에 발표하기로 한 주세 개편안을 다시 미뤘다. "업계 간 이견이 있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다. 개편 취소 가능성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고 해 무산 여지도 없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주류 가격에 세금을 매기는 기존 종가세에서 도수와 양을 기준으로 삼는 종량세 도입을 발표했다. 종량세로 전환하면 맥주의 세금은 내려가고, 소주는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당시 기재부는 "소주 가격 인상 없이 추진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종량세 도입을 손꼽아 기다리던 수제맥주 업계는 반발했다. 한국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내년 1월엔 시행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물 건너간 듯하다"며 "종량세로 간다고 확정이 나야 시설 투자도 하고, 소매점 판매를 위한 준비도 할 텐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주세 개편이 미뤄지는 동안 할인 프로모션을 앞세운 수입맥주의 시장점유율은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조원가가 높은 수제맥주는 주세도 그만큼 붙는다.    
 
기재부가 발표 연기 이유로 든 "업계 간 이견"에 대해서도 말이 달랐다. 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2주 전 기재부가 연 공청회에서 맥주 업계는 큰 이견은 없었다. 수입맥주 한두 군데서 난색을 보이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수입가를 낮게 신고한 일부 수입맥주는 그동안 주세를 적게 부담했다. '4캔 1만원', '6캔 1만원'이 등장한 배경이다. 하지만 종량세가 돼 가격이 오르면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랩 교수는 "수제맥주는 절실하다. 150여 개 제조사 중 열 군데는 벌써 문 닫았다"며 "5~6년 전 체코의 맥주 브루어리가 익산에 공장 짓고 국내서 만들겠다고 했다가 세금 때문에 손들고 나갔다. 맥주는 가격 경쟁력이 핵심인데 지금 상태로 가면 절반 이상이 문 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산맥주 1·2위를 달리는 오비맥주·하이트진로는 상대적으로 덜 조급한 모습이다. 맥주 시장점유율 절반에 달하는 카스를 제조하는 오비맥주는 동시에 버드와이저·호가든·스텔라아르투아·코로나 등 상위 수입맥주 브랜드를 갖고 있다. 최근 카스 점유율이 내려가고 있지만, 수입맥주는 선전하고 있어 나쁘지만은 않다. 
 
오비맥주는 지난 3월 오비맥주는 카스의 출고가(500mL 병 기준)를 56원 올렸다. 종량세 전환을 앞두고 가격을 인상한 것에 대해 업계에선 "오비맥주가 기재부의 종량세 개편안이 올해를 넘길 것을 예상하고 미리 가격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는 시각이 있었다. 올해 가격을 올려 수익성을 개선한 뒤, 내년에 종량세가 돼 세금이 내려가면 그때 가격을 내리는 마케팅을 펼칠 것으로 풀이했다.  
 
브랜드별 소주 시장점유율

브랜드별 소주 시장점유율

지난달 '테라'를 출시한 하이트진로는 초기 시장 반응이 나쁘지 않다. 가격을 올린 카스보다 출고가가 57원 낮은 테라는 식당 등 업소를 대상으로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가격을 내세워 테라의 시장점유율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또 하이트진로는 '참이슬'로 소주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기재부가 주세 개편을 앞두고 "소주 가격 인상은 없다"고 공언했지만, 뜻밖에 소주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있다.  
 
업계와 전문가는 기재부가 주세 개편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플레이어마다 입장이 복잡하다. 특히 소주를 고려하겠다고 단서를 달아 더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재부가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국산맥주의 주세를 개선하겠다' 등 생색을 냈다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다시 덜어내고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연기를 했으면 명확한 이유를 알려줬어야 했다"며 "정부가 '4캔 1만원 맥주 사라지나' '소주 가격 오르면 어쩌나' 등 (업계와 소비자의) 눈치를 너무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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