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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 논설위원이 간다] ‘7.27 담배’ 한갑에 1만7000원…북 마지막 외화 수입원

중앙일보 2019.05.08 00:03 종합 25면 지면보기
밀무역으로 제재 활로 찾는 북한 경제
북·중 접경인 단둥 세관의 2월 하순 모습. 정문에 신형 검색대가 설치돼 있고 주변 도로는 한산하다. [단둥 AP]

북·중 접경인 단둥 세관의 2월 하순 모습. 정문에 신형 검색대가 설치돼 있고 주변 도로는 한산하다. [단둥 AP]

“조국에서 만든 최고급품입니다. 맛 좀 보시라요.” 중국의 한 북한 식당에 들렀을 때 여성 종업원이 ‘7.27’ 담배를 건네며 한 말이다. 애연가로 알려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곁에 두고 산다는 바로 그 담배였다. 짐짓 “이름이 왜 7.27이냐”고 물었더니 “해방전쟁(6·25 전쟁을 의미)에서 승리한 날을 딴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 북한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7월 27일을 ‘전승절’로 기념한다. 그 식당에선 한 갑에 100위안(약 1만7000원)을 받았다. 만만치 않은 값이지만 유명세를 탄 탓인지 중국인 손님들에게 꽤 인기라고 했다. 북한 내부 사정을 알만한 사람에게 물었더니 “평양에서 열 달러(10달러) 안 되는 가격에 팔리는데 일반 주민들이 사 피우기엔 비싼 가격”이라고 했다.
 
다양한 상표, 다양한 가격대의 북한 담배가 중국 동북 지역을 중심으로 인기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단둥(丹東)이나 옌지(延吉) 등 접경 지역 도시에서는 중국 담배와 나란히 북한 담배를 파는 곳이 많다. 한 관광 기념품 상점에는 어림잡아 30가지 이상의 북한 담배들이 진열돼 있었다. 단둥의 한 주민은 “맛과 품질은 중국 담배와 별 차이가 없는데 값은 절반 수준이어서 북한 담배만 사 피우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담배는 고강도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에 남은 몇 안 되는 외화 수입원이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던힐’ ‘말버러’ 등의 짝퉁 담배를 만들어 밀수출했으나 지금은 자국 브랜드를 내걸고 판다. 하지만 중국 해관(세관)의 공식 통계에는 담배 거래가 잘 잡히지 않는다. 대부분이 밀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는 지난해 “북한의 담배 밀무역 순이익이 연간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밝혔다. 담배 밀무역은 중국 수입업자가 어선을 타고 공해나 북한 인근까지 가서 담배를 옮겨 싣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지난 3월 하순 배 한 척이 침몰해 선원 6명이 실종되는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담배 밀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것은 대북 제재가 효과를 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석탄·철광석을 비롯한 광물과 수산물, 의류 등 북한이 내다 팔 수 있는 어지간한 상품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금수 품목으로 지정됐다. 2016년까지 민수용은 예외로 한다는 등의 단서조항이 제재의 구멍 역할을 했지만 2017년 이후에는 예외 없이 모두 금지됐다.
 
중국의 대북 제재집행이 다소 느슨하던 지난해 9월 같은 장소를 촬영한 것. 북한으로 건너가려는 트레일러 차량 10여대가 줄을 서 있다. [뉴시스]

중국의 대북 제재집행이 다소 느슨하던 지난해 9월 같은 장소를 촬영한 것. 북한으로 건너가려는 트레일러 차량 10여대가 줄을 서 있다. [뉴시스]

이에 따라 북한의 외화벌이는 직격탄을 맞았다. 북한 교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으로의 수출액은 2018년 2.2억 달러로 2017년에 비해 87%가 감소했다. 한국은행이 추정한 북한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3.5%였는데 올해는 그 폭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의 외환보유고가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북한의 또 다른 외화수입원으로 해외 파견 근로자들이 벌어들이는 임금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안보리 제재로 올 하반기 이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2017년 12월에 채택된 제재결의 2397호에 북한 노동자를 2년 이내에 송환하라고 명기했기 때문이다. 비자 기간이 남아 있어도 예외가 없다. 중국 중앙정부는 이보다 앞선 6월 말까지 북한 노동자들을 내보낸다는 계획을 각 지방의 관련 기관에 내려보냈다. 신규 비자 발급이 중단된 것은 물론이고 체재 기간이 만료된 사람들에게는 기간 연장을 해 주지 않고 있다.
 
단둥의 현지 소식통은 “짐을 꾸리고 북한으로 넘어가는 노동자나 식당 종업원들의 행렬이 목격되고 있지만 1개월짜리 도강증(渡江證)을 받아서 되돌아오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북·중 육로 무역량의 80%를 차지하는 단둥은 대북 제재의 직격탄을 받은 곳이다. 지난해 3월 김정은 위원장의 전격 방중이 성사된 이후 이 도시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북·중 경제협력이 곧 가시화되고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됨에 따라 제재도 완화될 것이라 본 각지의 투자자들이 단둥의 아파트와 상가 등을 매입했다. 그랬던 거품 경기는 1년 만에 롤러코스터를 타고 꺼져버렸다. 단둥의 침체는 이곳에 거점을 둔 북한 무역상이나 압록강변에 즐비해 있던 북한 식당들의 영업에 타격을 입혔다. 여기에 노동비자 발급제한이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옌볜(延邊) 조선족 자치주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곳의 특징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일반 식당에 취업한 북한 종업원들이 많다는 점이다. 현지 관계자는 “옌지에서 식당을 운영하려면 중국어와 한국어를 모두 할 줄 아는 종업원이 필요한데 조선족만으로 채우기에는 일손이 부족하다. 한국으로 일자리를 구해 나가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 빈자리를 메워 주는 것이 조선(북한)에서 건너와 일하는 종업원들이다. 실제로 6월 말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북한이 의존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은 밀무역밖에 없다.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한 랴오닝(遼寧)성의 북·중 무역 관련자와 대화를 나눴다.
 
중국 동북지방의 한 상점에 ‘7.27’을 포함한 30여 가지의 북한 담배가 진열돼 있다. [중앙포토]

중국 동북지방의 한 상점에 ‘7.27’을 포함한 30여 가지의 북한 담배가 진열돼 있다. [중앙포토]

정식 수출은 막히더라도 중국 당국이 밀수를 눈감아주면서 북한의 숨통을 열어주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있다.
“북·중 관계의 좋고 나쁨에 따라 단속의 강도가 왔다 갔다 하는 게 사실이다. 2017년에는 중국 당국이 밀수 단속을 강화했다가 2018년 김정은의 방중이 이뤄진 이후 느슨해졌다. 최근에는 강도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높아져 무역 종사자들은 숨 쉴 틈도 없다고 울상이다. 미국과의 무역 전쟁을 풀어야 하는 입장에 있는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 사항에 협력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노이 노딜’ 이후 미국이 중국에 제재를 엄격히 집행하라고 더욱 채근하는 듯하다.”
 
밀무역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
“세관 감시가 허술한 점을 이용해 신고된 상품 이외의 물건을 싣고 들어가는 방식이 가장 손쉽다. 하지만 요즘은 중국 세관이 첨단 검색장비를 설치하고 전수검사에 가깝게 깐깐하게 화물 검사를 하기 때문에 그런 방식은 어렵다. 결국은 어선을 타고 나가 물건을 받아 오는 수밖에 없다. 북한 서해안 지방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데 만조 때 딱 2시간 동안 모든 물건을 옮겨 싣고 돌아와야 하므로 숙련된 사람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북한산 수산물이 여전히 다롄(大連)이나 단둥의 시장에서 보이는 것 같은데.
“정식 수입이 가능하던 때보다 양이 크게 줄었다고 보면 된다. 동해안 수산물은 산지에서 가까운 두만강 지역 세관을 통해 수출이 이뤄졌는데 지금 그게 막히니까 육로로 서해안 용암포까지 싣고 와서 중국 밀수선에 넘기곤 한다. 그러다 보니 신선도가 떨어져 헐값에 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
 
중국 당국이 단속을 강화해도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뿐 아니라 중국인 중에서도 직업적으로 밀무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당국의 감시를 빠져나가는 노하우도 축적돼 있다. 담배 밀무역이 대표적이다. 어선 한 척이 나가 5만 위안 어치씩 싣고 돌아오면 두 배로 팔 수 있다고 한다.”
 
북한이 아무리 밀무역으로 활로를 찾는다 해도 2016년 대비 93%가 줄어든 무역 수입을 만회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정형곤 박사는 “대북 제재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5건의 안보리 제재 해제를 의제로 내놓았다는 사실 자체가 북한이 제재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말해 준다”며 “제재 효과가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점을 감안하면 2019년의 북한 경제는 더욱더 힘든 고난의 행군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영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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