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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90쪽 vs 심재철 13쪽 '1980년 진술서' 전말은

중앙일보 2019.05.07 17:39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다. 1980년 ‘서울의 봄’을 이끌었던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당시 서울대 대의원회 의장)의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 합동수사본부 진술서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유튜브 캡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유튜브 캡처]

 
지난달 유시민 이사장의 1980년 합수부 진술서를 일부 공개하며 “21살 청년의 자필 진술서가 다른 민주화 인사 77명의 목을 겨누는 칼이 되었다”고 주장했던 심재철 의원은 6일 유 이사장 진술서 전체와 자신의 진술서를 모두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당시 운동권 내부에선 심 의원이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에서 동지들을 배신하는 진술을 한 탓에 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투옥됐다는 게 30년 가까이 정설로 통해왔다. 심 의원의 진술서 공개는 그런 정설에 대한 반격 차원이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연합뉴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연합뉴스]

 
◇유시민 진술서 내용 봤더니
유 이사장은 자신의 진술서 일부가 공개된 뒤인 지난 1일 팟캐스트 ‘알릴레오’를 통해 ‘밀고’ 의혹을 정면 반박했다. 요지는 “저는 그 진술서를 보면 잘 썼다고 생각한다. 감출 것은 다 감췄고 부인할 것은 다 부인했다”는 것이다. 이에대해 심 의원은 추가 자료를 통해 다음과 같이 재반박했다.
 
①진술서 작성 시점=유 이사장은 방송에서 “심 의원이 공개한 건 자필 진술서다. 제가 추측하기엔 1980년 7월 중순 이후에 쓴 거로 보인다. 심 의원이 잡혀 온 6월 30일 이후 합수부에 재차 불려가 심 의원이 진술한 내용에 맞춰 자술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유 이사장 진술서엔 ‘1980.6.12 자술인 柳時敏(유시민)’이라는 자필이 남아있다. 심 의원의 자필 진술서 작성 시점은 ‘1980.6.30’으로 적혀있다. 즉 “심 의원 진술에 맞춰 썼다”는 유 이사장의 해명은 시간상 앞뒤가 안 맞는다는 게 심 의원의 주장이다.
 
②진술의 범위=유 이사장은 “학생운동가 수칙에 따라 진술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첫째, 학내 비밀조직과 써클을 감추고 모든 일은 학생회에서 한 것으로 진술. 둘째, 정치인들과 묶어 조작하는 것에 휘말리면 안 된다. 특히 김대중 총재와는 절대 얽히지 말 것”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공개된 유 이사장의 진술서엔 당시 운동권 내 여러 단체명과 모임명은 물론, 학생 운동 관련 인사 77명의 이름이 실명 그대로 적혀있다. 심 의원은 “유 이사장의 진술로 인해 행적이 소상히 밝혀진 77명 학우 가운데, 당시 미체포 상태였던 18명은 그의 진술 직후인 6월 17일 지명수배됐다”고 주장했다.
 
또 유 이사장 진술서엔 “‘민청협’(민주청년협의회) 회장이고 김대중씨와 관계한다고 소문이 돌던 이해찬(사회학과)”이란 표현도 등장한다. 민청협은 신군부에 반대하던 학생 운동 단체이며,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시 서울대 복학생 대표였다.  
 
③누가 밀고 했나=유 이사장은 “(당시) 비밀조직의 전모가 거의 몽땅 다 들어가 있었는데, 거기에 ‘유시민 경제78 농촌법학회’가 딱 나와 있었다. 그래서 봤더니 우리 친구들 진술서였다”고 말했다. 농촌법학회 동료들이 자신을 밀고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심 의원은 “유 이사장 진술서에는 농촌법학회 핵심 인물들이 2명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즉 유 이사장이 먼저 농촌법학회 동료들을 누설했다는 게 심 의원의 주장이다.
 
◇유시민·심재철 진술서 비교하면
PDF 파일 형식으로 공개된 진술서는 ‘치안본부’ 양식의 서류에 자필로 작성됐다. 심 의원은 13쪽, 유 이사장은 90쪽 분량이다. 심 의원은 7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나는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 기소 당사자였기 때문에 비교적 많은 13쪽을 썼지만, 다른 동료들은 2~5쪽 분량만 적어냈다. 최소한으로 진술하자는 불문율 때문이다. 그런데 유 이사장은 혼자서만 90쪽을 적어냈다. 경찰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1980년 계엄보통군법회의의 심 의원 내란 혐의 재판 기록 중 법원이 채택한 증거 목록 표. [심재철 의원실 제공]

1980년 계엄보통군법회의의 심 의원 내란 혐의 재판 기록 중 법원이 채택한 증거 목록 표. [심재철 의원실 제공]

 
◇유시민 “수사관 속이려 창작”
논란이 커지자 유 이사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당시 진술은 수사관을 속이기 위해 그럴듯하게 창작해서 적은 것이다. 또 심 의원 등 이미 사정 당국에 노출된 사람들만 적극적으로 내세운 것일 뿐, 비밀조직을 공개했다거나, 경찰에 적극 협조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유 이사장은 이해찬 대표에 대해선 “이해찬 선배가 몇 천명 보는 데서 내 멱살을 잡은 적이 있기 때문에 그것까지 진술하지 않기는 어려웠다”며 “다만 ‘그렇다’고 하지 않고 ‘그렇게 들었다’는 식의 표현을 썼다”고 말했다. 유 이사장 측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형제처럼 지냈던 심 의원에게 법적 대응은 할 생각도 없고, 논쟁을 계속 이어갈 생각도 없다”고 밝혔다.
 
이번 논쟁과 관련 당시 서울대 학생운동권이었던 윤호중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고 문익환 목사, 이해찬 대표, 설훈 최고위원 등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투옥시킨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의 유죄판결에서 핵심법정증언이 바로 형(심 의원)의 증언임이 역사적 진실로 인정되고 있다는 것을 어찌 형만 부정하냐”고 비판했다. 이에 심 의원은 “내가 체포되기 전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은 다른 피고인의 자백으로 완성돼 있었다”고 반박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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