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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웬수였는데…" 남편과 부부 사진전 여는 김미희 씨

중앙일보 2019.05.07 13:15
 "사진기만 보면 울화통이 터졌어요"
 
오는 10일 제주시 조천읍 돌문화공원에서 남편 최재영(67) 씨와 부부사진전을 앞둔 김미희(64) 씨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사진을 싫어하던 김 씨는 어쩌다 사진전까지 열게 됐을까?
 
부부사진전이 열리는 제주시 조천읍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 갤러리에 최재영, 김미희 부부가 전시작품들과 함께 섰다. [사진 최재영]

부부사진전이 열리는 제주시 조천읍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 갤러리에 최재영, 김미희 부부가 전시작품들과 함께 섰다. [사진 최재영]

김 씨는 평생을 사진기자로 산 남편을 두고 있었지만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사진의 '사'자도 모르는 평범한 학교 선생님이었다. 아니, 사진을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사진을 싫어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진이 싫었던 건 아니고 '사진을 하는 남편'이 싫었다. 남편 최 씨는 지독한 일중독자인데다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해 매일 술통에 빠져 늦은 시간에 귀가하기가 일쑤였다. 
제주 자택의 최재영, 김미희 부부. [사진 최재영]

제주 자택의 최재영, 김미희 부부. [사진 최재영]

 "집 거실에 사진기 수십 대가 놓인 장식장이 있었어요, 밤늦도록 남편 기다리다 눈에 사진기가 들어오는데, 그렇게 미운 거예요, 다 갖다 버리고 싶었죠" 
하지만 지금 김 씨에게 남편은 최고의 사진 선생님이 됐고, 사진기는 보물 1호가 됐다. 이들 부부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백남준 굿' 사진 앞에서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와 함께 한 최재영 씨. [사진 최재영]

'백남준 굿' 사진 앞에서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와 함께 한 최재영 씨. [사진 최재영]

2012년 두 번째 개인전인 '대한민국 대통령의 빛과 그림자' 전시장의 최재영 씨. [사진 최재영]

2012년 두 번째 개인전인 '대한민국 대통령의 빛과 그림자' 전시장의 최재영 씨. [사진 최재영]

남편 최 씨는 평생 사진을 업으로 살아왔다. 1976년 동아일보 사진기자를 시작으로 2년 후인 1978년 중앙일보로 회사를 옮겨 30년 넘게 사진기자로 근무했다. 백남준 미공개 사진, 역대 대통령들의 사진을 엮어 개인전을 가졌고 여러 차례의 단체전에도 참여했다. 1978년 남편과 결혼한 김 씨는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사진이라곤 소풍 갔을 때, 학생들 단체 사진이나 찍어 준 정도였지, 한 번도 제대로 사진기를 잡아보거나,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제주 오라동 메밀축제장에서 최재영, 김미희 부부. [사진 김미희]

제주 오라동 메밀축제장에서 최재영, 김미희 부부. [사진 김미희]

 
지난 2016년 작품활동 중인 김미희 씨. [사진 김미희]

지난 2016년 작품활동 중인 김미희 씨. [사진 김미희]

그러다 2014년 부부는 김 씨의 퇴직에 맞춰 제주도로 거처를 옮긴다. 갑작스러운 결정은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은퇴 후 삶을 계획했던 부부는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터전을 닦아두었다. 이들 부부의 삶에 변화가 생긴 것도, 김씨가 사진기를 잡게 된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최 씨는 "제주에 내려온 뒤 가장 큰 변화는 모든 걸 부부가 함께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살았으면 차도 2대고, 친구들도 다르니 서로 따로따로 지냈을 것 같아요. 여기 내려온 후부터는 모든 걸 함께 해요. 차도 1대니까 늘 같이 다니죠", "사진도 그러다가 시작하게 됐어요"
최재영, 김미희 부부의 자택 전경. [사진 김미희]

최재영, 김미희 부부의 자택 전경. [사진 김미희]

천생 사진가인 최 씨는 제주의 자연을 담으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물론 늘 옆자리엔 아내 김씨가 함께 했다. 남편이 사진을 찍는 동안 아내는 너무 심심했다. 언제부턴가 같이 나가려고 하지 않게 됐다. 보다 못한 최 씨가 아내에게 사진기를 들여줬다. 
 "아무거나 찍어봐, 찍다 보면 뭔가 발견하지 않겠어? 이쁜 거 찍어, 꽃 같은 거"
그렇게 김 씨의 손에 사진기가 들어왔고, 집 앞마당에 핀 꽃들을 찍기 시작했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시작한 사진인데 찍을수록 더 잘 찍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매일 500장씩 찍었어요. 그리고 바로 남편에게 평가를 받았죠. 그래서 사진 실력이 금세 늘어난 것 같기도 해요" 
 제주에 내려간 뒤 단체전에 참여한 최재영 씨가 부인 김미희 씨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김미희]

제주에 내려간 뒤 단체전에 참여한 최재영 씨가 부인 김미희 씨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김미희]

남편에게 사진을 배우다 싸운 적이 없냐고 물었다. 남편 최 씨는 "야단치거나 그런 적 없다. 쉽게 가르쳤다"고 대답했지만, 아내 김 씨는 "남편은 칭찬에 인색한 편이에요. 주로 '뭐가 잘못됐다'는 식의 지적이 많아요. 특히, 본인이 전문가랍시고 작가의 의도를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만 평가할 땐 좀 섭섭했어요"라고 말했다. 칭찬은 전혀 안 하느냐는 질문에 김 씨는 "정말 좋은 사진을 찍었을 땐 저보다 더 흥분해요, 막 감탄하다 볼에 뽀뽀해달라고 해요. 그게 가장 큰 칭찬이에요" 초반엔 야단 맞는 횟수가 많았지만, 지금은 칭찬을 받는 횟수가 더 많아졌다고 아내 김 씨는 말한다. 볼에 뽀뽀를 해주는 횟수가 늘수록 김 씨의 사진 실력은 쑥쑥 자라났다. 
우주, 빛방울 [사진 김미희]

우주, 빛방울 [사진 김미희]

 우주, 빛방울 [사진 김미희]

우주, 빛방울 [사진 김미희]

그렇게 4년여 마당의 꽃과 이슬을 찍던 김 씨는 새로운 사진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이들 부부가 '빛방울 사진'이라 명명한 시리즈다. 이번 부부 사진전에 김씨가 내보이는 작품들이다. 
 "지난해 4월에 처음 찍은 거로 기억해요. 내가 찍어놓고도 생각지도 못한 사진이 나와서 온몸에 전율을 느낄 정도였어요. 사진으로 이슬이 이렇게 표현이 되는구나. 정말 신기했죠"  김 씨는 처음 '빛방울'을 발견했던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남편 최 씨도 아내의 사진을 보고는 "정말 깜짝 놀랐죠. 빛이 쪼개지는 모습이 생기는데 육안으로는 절대 못 보는 장면이거든요. 아내의 사진 실력이 한 단계 더 성장한 걸 느꼈죠. 물론 뽀뽀를 마구 해달라고 했습니다" 
 
제주돌문화공원. [사진 최재영]

제주돌문화공원. [사진 최재영]

제주돌문화공원. [사진 최재영]

제주돌문화공원. [사진 최재영]

처음부터 부부사진전이 기획됐던 건 아니었다. 최 씨는 이미 오래전 제주돌문화공원에서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제주 섬을 창조한 여신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의 돌에 관한 전설을 테마로 만들어진 제주돌문화공원에는 백운철 원장이 기증한 2만5000여 점의 석상이 자리해 있다. 이 돌들은 모두 자연석으로 보는 방향에 따라, 빛에 따라,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인다. 최 씨는 10여 년 전 백 원장과의 인터뷰를 위해 이 공원을 방문했다가 이곳의 돌들에 빠지게 됐고, 제주에 정착하면서 곧바로 사진 작업에 나섰다. 맑은 날, 눈보라가 치는 날, 비바람이 부는 날, 돌들의 모습은 모두 달랐다. 그렇게 4년을 꼬박 돌에 매달렸다. 자연석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진 작업인지라 평범한 날, 평범한 방식으론 어림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최 씨의 집에 방문한 백 원장이 아내 김 씨의 '빛방울' 사진을 보게 됐다. 한눈에 범상한 사진이 아님을 알아본 백 원장은 그 자리에서 최 씨 개인전으로 예정된 전시를 부부사진전으로 하자고 제안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30년 넘게 각자의 영역에서 삶을 살아왔던 부부가 제주에 정착한 지 5년, 결혼한 지 41년 만에 제주의 탄생과 생명을 시각화한 사진으로 함께 전시를 열게 됐다.  
 
전시를 앞두고 테스트 프린트를 살펴보고 있는 최재영 씨. [사진 최재영]

전시를 앞두고 테스트 프린트를 살펴보고 있는 최재영 씨. [사진 최재영]

이번 전시에 대해 최 씨는 “제주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색채, 멋, 보다 제주다운 것들에 대해 깊이 느끼며 가슴으로 담아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며 “돌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공간성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또 “각각의 돌들이 숨과 기를 받아 생기가 살아나듯 각기 다른 형태의 표정으로 제 모습을 자랑하는 듯했다”고 말한다. 
아내 김 씨는 “아침 햇살이 이슬 위에 내릴 때 찬란한 빛의 세계를 보았고, 추위가 내린 새벽에 깜짝 나타나는 서릿발에서 무엇보다 힘찬 에너지를 보았다”며 “아름다운 빛과 피사체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인 거 같다. 제주와 사진으로 우리의 삶도 다시 태어났다. 인생의 동반자에서 사진의 동반자로 살아갑시다”라고 감회를 전했다. 
 
최재영, 김미희 부부사진전 포스터. [사진 김미희]

최재영, 김미희 부부사진전 포스터. [사진 김미희]

마지막으로 이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한다.
"제주와 사진은 우리 부부에게 가장 큰 선물이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개인전이든, 부부사진전이든 계속 하고 싶다"
앞으로 계획을 묻는 질문에 남편 최 씨는 "그동안 돌문화공원에만 매달려 있었다. 이제 제주의 곳곳에 숨은 돌들에 눈을 돌려보려 한다. 제주도 돌사진작업을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아내 김 씨는 "물방울이 빛방울로 변했듯, 빛방울이 또 어떤 것으로 변화할지 지켜보고 싶다. 다른 소재를 찾기보다 빛방울 사진을 더 발전시켜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전은 오는 10일부터 7월 28일까지 제주시 조천읍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 갤러리에서 열린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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