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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인싸]여경 이전에 경찰이라더니…‘여경의날’ 제정 논란

중앙일보 2019.05.07 05:00
‘여의도 인싸’는 국회 안(inside)에서 발생한 각종 이슈와 쏟아지는 법안들을 중앙일보 정치팀 2030 기자들의 시각으로 정리합니다. ‘여의도 인싸’와 함께 ‘정치 아싸’에서 탈출하세요.
“1947년 여성 경찰의 독립 부서가 최초로 신설된 7월 1일을 기념일로 지정하여 여성 경찰의 권익을 보호하고 전반적인 여성의 사회참여를 확대하려 함(안 제4조의2 신설)”
 
지난 1일 국회에 발의된 ‘경찰법 일부개정법률안’입니다. 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 등 10명 의원은 “여성 경찰은 1946년에 탄생하여 현재까지 73년이 지났음에도 전체 경찰에서 약 11%에 불과한 실정”이라면서 법 개정을 주장합니다.
 
2016년 7월 1일 제 70회 여경의 날을 맞아 서울 경찰청에서 으뜸여경으로 선정된 부산청 교통과 안전계 조지영 경사가 깅신명 경찰청장과 가족으로부터 특진 계급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2016년 7월 1일 제 70회 여경의 날을 맞아 서울 경찰청에서 으뜸여경으로 선정된 부산청 교통과 안전계 조지영 경사가 깅신명 경찰청장과 가족으로부터 특진 계급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폐지 수순 밟던 기념행사가 법률로 부활?
사실 ‘여경의 날’은 이미 30여 년 전부터 경찰 내부적으로 존재해왔습니다. 1984년 서울경찰청 소속 여성 경찰들이 비공식 친목 모임을 가진 게 계기인데 점차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경찰청은 1995년에 7월 1일을 ‘여경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2000년엔 아예 경찰청 공식 주관행사로까지 그 지위가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 행사가 단순 기념행사를 넘어, 특진의 장이 되면서 이상한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 조선 시대 여성 수사관을 다룬 드라마 ‘다모’가 히트를 하면서, 이듬해 여경의 날에 ‘다모대상’이 신설됐습니다. 수상자는 1계급 특진이 보장됐죠.
 
이후부터 매년 여경의 날엔 여성 경찰만을 대상으로 한 특진과 포상ㆍ표창 수여가 관례로 자리 잡았습니다. 안 그래도 승진 문제에 민감한 남성 경찰들이 ‘역차별’이라고 볼멘소리를 했죠. 논란이 커지자 경찰청은 2014년 내부 전산망을 통해 ‘여경의 날 행사 실시에 대한 여론조사’를 벌였는데, 응답자의 62%는 ‘남성 경찰의 사기 저하를 초래한다’고 답했습니다.
 
결국 경찰은 2016년 행사를 끝으로 더 이상 여경의 날 행사를 열지 않고 있습니다. 여성 경찰들의 친목 도모라는 본래 취지와는 멀어진 채, 남녀 갈등만 촉발시켰으니 말이죠. 그런데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가 싶었던 여경의 날이 정치권의 ‘심폐소생술’로 부활할 가능성이 생긴 겁니다.
 
◇‘경찰의 날’ 있는데 왜 ‘여경의 날’?  
법안 발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일부 시민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앞서 경찰 내부에 있었던 남녀 갈등이 진급을 둘러싼 현실적 갈등이었다면, 현재 네티즌들은 ‘공정성’ 문제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바로 “경찰의 날(10월 21일)이 이미 있는데 왜 여경의 날을 또 만드는 거냐”라는 지적입니다. 나아가 “같은 경찰인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대하겠다는 건 남녀평등에도 위배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으로도 이어집니다.
 
경찰 공무원을 준비 중인 여성 김모(26)씨는 “사회적으로 여경은 내근이나 편한 업무 소위 ‘꿀 보직’만 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여경의 날까지 만들어 진급 잔치를 벌이면 이런 선입견이 더욱 강화될까 우려스럽다”고 했습니다. 경찰 공무원 준비생들이 모인 한 온라인 카페에서도 “여경의 날이 꼭 필요한가”라는 주제를 두고 옥신각신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단순히 해당 성별이 소수라고 해서 따로 기념할 거면 ‘남자 간호사의 날’ ‘남자 초등교사의 날’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조롱도 나옵니다.
 
◇“여성 우대 정책 필요” vs “시대착오적 발상”
논란의 기저엔 ‘경찰’의 내집합인 ‘여경’을 독립집합으로 분리하려는 시도에 대한 반발이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여성을 분리해 남녀갈등을 조장한다는 의심이죠. 
 
불똥은 아직 개봉도 안 한 영화 ‘걸캅스’로 튀었습니다. 최근 몇주 간 온라인에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두 여성 경찰이 비공식 수사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를 해결한다는 내용인데, 포스터엔 “경찰마저 포기한 사건 우리가 일.망.타.진.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경찰과 여성 경찰은 서로 별개인 건가?’라는 의문을 들게 합니다.
 
영화 '걸캅스' 포스터.

영화 '걸캅스' 포스터.

여성 경찰의 열악한 지위와 환경을 고려하면 우대 정책이 필요하다는 반박도 있습니다. 여경은 11%에 불과한 데다 80%가량이 경사ㆍ경장ㆍ순경 등 하위 3계급에 있습니다. 반면 총경(경찰서장급) 이상은 10여 명뿐이죠. 장필화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남성 경찰들의 반발도 이해는 가지만 여성 경찰들이 알게 모르게 받아온 차별과 사회적 편견 등을 고려하면, 제도적으로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에서 총여학생회도 없어지는 마당에 공공기관에서 ‘여성’을 앞세우겠다는 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경찰 업무에 남성의 일, 여성의 일이 구분돼 있진 않다고 생각한다. 여성 동료를 ‘여사’라고 부르는 직원들에게 ‘제대로 호칭을 해 달라’고 말해 왔다.”
 
순경으로 시작해 여성 최초로 치안정감까지 오른 이금형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석좌교수가 2017년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성 치안정감 기록은 이 교수가 유일합니다.
 
이번 개정안이 통과될지는 불투명합니다. 다만, ‘민중의 지팡이’로서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경찰에 ‘여성’이라는 별도의 머리띠를 씌우는 게 타당한지에 대해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치안의 영역에서도 ‘네 편 내 편’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는 지나친 걸까요.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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