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시론] 사법부의 좌편향 쏠림을 경계한다

중앙일보 2019.05.07 00:20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법부(대법원·헌법재판소)의 인적 구성이 좌편향으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 원래 정치권력은 좌와 우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법과 정의를 집행하는 사법부가 특정 정치 이념에 휩쓸리는 것은 법치주의와 사법부 신뢰라는 측면에서 매우 위험한 신호다. 입헌주의에서 정치와 법은 ‘건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긴장이 급속히 풀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해외순방 중에 제1야당이 반대한 이미선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전자결재를 통해 임명했다. 국회 인사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는데도 재판관 임명을 강행한 전례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엔 서기석·조용호 내정자에 대해 야당이 청문 보고서 채택을 거부하자 당시 박 대통령이 야당 지도부를 초청한 만찬 회동에서 인사검증 부실에 대해 사과하고 보고서 채택을 끌어냈다. 어느새 설득의 정치가 실종된 것이다.
 
왜 이렇게 무리수를 둘까.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김명수 당시 춘천지방법원장을 대법원장 후보로 전격 지명했다. 70년 대법원 역사에서 대법관보다 기수와 경륜이 낮은 지방법원장을 대법원장으로 임명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충격을 받은 법원 안팎에선 “청와대가 법원을 대대적으로 개혁하겠다는 뜻”이라는 말이 나왔다. 청와대의 법원 개혁은 권력분립의 헌법 질서에서 불가능한데도 예상대로 전개됐다.
 
한국에서 대법원장은 실로 제왕적이다. 전국 법관 3200여 명의 인사권, 대법관 13명의 임명제청권을 쥐고 있다. 헌법재판관 3명과 중앙선거관리위원 3명을 단독으로 지명하는 권한도 있다. 만일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정치 이념에 예속되면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현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영향 아래에서 대법관 6명이 이미 교체됐고 앞으로 4명이 더 교체될 예정이다. 대법원장을 비롯해 여러 대법관이 법원 내부의 진보성향 모임 또는 민변 출신이다. 법원 요직도 대법원장이 회장으로 있던 진보성향 모임의 판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다. 헌재소장도 법원 내 진보 성향 모임의 회장 출신이다. 재판관 5명이 현 대통령과 대법원장 취임 이후 교체됐고, 여당 추천 몫의 재판관 1명이 새로 임명됐다. 국가보안법과 사형제 폐지 등을 밀어붙일 수 있는 의결 표수(재판관 6명)를 사실상 특정 정치세력이 확보한 셈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사법부가 이렇게 특정 정치이념과 정치세력에 급격하게 단기간에 쏠린 적은 없었다. 2017년 3월 헌재의 탄핵 결정으로 대통령이 임기보다 1년 앞서 물러나고,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에 대한 인사권이 새 대통령에게 넘어간 상태에서 결국 제왕적 대법원장 제도의 맹점이 뚫린 것이다.
 
사법부의 과도한 쏠림은 국민의 이념적 지형과 큰 격차를 보여 사법부 불신을 일으킨다. 헌재는 지난해 6월 병역 거부 행위를 ‘양심’의 이름으로 승인했고, 4월에는 태아의 생명을 박탈할 권리를 인정해줬다. 한국사회가 수용할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성급한 결정 아닌가.
 
이제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은 법관과 재판관 개개인의 헌법적 양심에 전적으로 맡겨지게 됐다. 미국 연방 법전에는 모든 법관의 선서 규정이 있다. “나는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정의를 집행할 것이며, 빈자에게든 부자에게든 동등한 권리를 부여할 것이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법관(대법관)으로서 내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하고 불편부당하게 수행할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 대한민국 법관들이 좌와 우를 떠나 여야는 물론이고 빈자든 부자든, 약자든 강자든, 소시민이든 권력자든 구별하지 않고 불편부당하게 법과 정의를 집행하길 바란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