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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검찰 ‘특수수사 칼’ 계속 쓰겠다는 정부

중앙일보 2019.05.07 00:03 종합 16면 지면보기
정진호 사회팀 기자

정진호 사회팀 기자

“특수수사라는 ‘잘 드는 칼’은 정부가 계속 쓰고 싶은 건 아닐까요.”
 
국회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놓고 검찰과 경찰 안팎에서 나오는 비판 중 하나다. 검찰의 직접수사권은 그대로 두고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조항만 삭제한 여야 4당의 수사권 조정안 때문이다.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검찰청법 개정안은 부패·경제·공직자·선거 범죄, 방산비리, 경찰공무원의 직무 관련 범죄 등 6가지에 대해서는 검찰이 직접 수사하도록 정하고 있다. 지금껏 검찰의 정치권 및 기업 수사 때마다 “검찰이 직접수사권을 가지고 정부 입맛에 맞게 칼날을 휘두르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정작 직접수사권을 건드리지는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수사권 조정안이 아닌 ‘수사지휘권 조정안’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까지 검찰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자의 의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일례로 박근혜 정부 당시 검찰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초본 회의록을 무단 폐기했다는 혐의로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을 기소했다. 백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은 1·2심에서 무죄를 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에 의해 공정하고 중립적인 수사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상황은 비슷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적폐수사 그만하고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단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수사는 정부가 통제할 수도 없고 통제해서도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이다”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지난 3월) 김학의·장자연 사건에 대해서는 철저 수사를 지시하더니 이제 와서 통제할 수 없다는 게 무슨 말이냐”며 “검찰이 국민에게 정치적 집단으로 인식되면서 조직이 망가졌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여야를 불문하고 검찰을 자신의 이해득실에 맞춰 활용하고자 하는 모습 또한 여전하다.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은 패스트트랙 법안 지정 과정에서 충돌이 일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다음날 한국당이 민주당 의원들을 맞고발하면서 대거 고발전으로 번졌다. 검찰 간부 출신의 변호사는 “정부와 여당은 검찰이 자신들 뜻대로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니 문제를 검찰로 들고 오는 것 아니겠냐. 그게 과거 정권부터 이어온 검찰에 대한 정치권의 인식이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불거진 근본적 원인은 명확해 보인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근본 문제에 대한 반성 없이 검찰과 경찰 사이의 밥그릇 싸움으로만 수사권 조정 문제를 풀려는 모습이다. 이러니 검찰은 검찰대로 “아직도 경찰을 믿을 수 없는데 검찰 지휘 없는 수사를 맡길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경찰은 “이제는 경찰도 역량이 된다”며 자체 특수수사 권한까지 부여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계에서도 비판 움직임이 나온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는 최근 학회원들에게 수사권조정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돌리고 의견을 취합하고 있다.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개혁은 검찰을 정치의 도구로 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조정안의 방향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여야 모두 정치권이 아닌 국민에게 도움되는 수사권 조정안이 무엇인지 되새겨봐야 한다.
 
정진호 사회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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