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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거대악과 싸워라…웃음폭탄 선물한 열혈 콤비

중앙일보 2019.05.07 00:02 종합 23면 지면보기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쏭삭과 장룡 역할로 사랑받은 배우 안창환(왼쪽)과 음문석. 무에타이 자세를 취한 이들은 ’추리닝과 가발을 벗으면 다들 못 알아본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쏭삭과 장룡 역할로 사랑받은 배우 안창환(왼쪽)과 음문석. 무에타이 자세를 취한 이들은 ’추리닝과 가발을 벗으면 다들 못 알아본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달 종영한 SBS ‘열혈사제’(박재범 극본, 이명우 연출)는 여러모로 많은 것을 남긴 드라마다. 금토드라마에 첫 출사표를 던진 SBS로서는 시청률 22%를 기록한 효자요, 일일극이나 주말극을 제외하면 한 자릿수 시청률에 고군분투하던 지상파에 새로운 희망을 안겨준 작품이다. 가톨릭 신부를 필두로 검찰·경찰·국정원까지 총출동해 악의 카르텔과 맞서 싸우는 장르물도 얼마든지 코믹할 수 있음을 보여준 덕이다. 신부 역의 김남길은 물론 모든 배우가 고루 빛났다.
 

드라마 ‘열혈사제’ 빛나는 조연들
태국출신 배달부 쏭삭 역 안창환
외국인처럼 보이려 주 4회 선탠
단발머리 조폭 장룡 맡은 음문석
동대문서 가발·원색정장 직접 사

그중에서도 시청자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은 것은 태국 출신 중국집 배달원 ‘쏭삭’ 역을 맡은 배우 안창환(34)과 대범무역의 넘버3 격인 ‘장룡’을 연기한 음문석(37)이다. 장룡은 쏭삭과 마주칠 때마다 ‘간장공장공장장’ 발음 테스트를 하며 티격태격하는 앙숙 케미를 선보였다. 찰랑거리는 단발머리로 장룡의 영어식 이름인 ‘롱드(롱드래곤)’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여기에 쏭삭이 태국 왕실 경호원이자 무에타이 고수였다는 과거가 드러나면서 전복된 두 사람의 관계는 큰 웃음을 선사했다.
 
종영 후 함께 만난 두 사람의 실제 모습 역시 극 중 캐릭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음문석이 “연기에 몰입하다 보면 충동적으로 애드리브도 자주 하는 편”이라고 말하면 안창환이 “그 충동이 너무 자주 일어나서 문제”라고 되치는 식이다. 이들은 “함께 있을 때 더 재밌는 캐릭터라서 촬영이 없는 날에도 오요한 역의 고규필까지 셋이 자주 만났다”며 “호흡을 맞추다 보면 재미가 2~3배가 되니 상대를 믿고 연기할 수 있었다”며 끈끈한 애정을 자랑했다.
 
이들의 캐릭터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음문석은 이명우 PD가 전작 ‘귓속말’(2017)에 조폭 보스를 모시는 ‘부하 4’로 출연한 모습을 눈여겨보고 다시 찾았다. “전화를 받고 달려갔더니 대본이 딱 한장 놓여 있더라고요. 장르도, 내용도 전혀 몰랐죠. 그냥 건달이고, 단발머리고, 외국인을 괴롭히는 사람이라고만 하셨어요. 리딩을 했는데 고민하는 눈치길래 바로 동대문으로 달려가 가발을 사서 쓰고는 사진을 찍어서 감독님께 보냈어요. 그래도 불안해서 영상도 또 찍어 보냈죠.”
 
‘열혈사제’에서 화제를 모은 절도 있는 쏭삭(위)과 우아한 장룡의 격투신. [사진 SBS]

‘열혈사제’에서 화제를 모은 절도 있는 쏭삭(위)과 우아한 장룡의 격투신. [사진 SBS]

이름 있는 배역을 처음 따낸 그는 장룡에게 나름의 얘기를 입혔다. 표준어 대사를 충청도 사투리로 바꾸고, 빨강·노랑·파랑 등 원색 정장도 갖췄다. “서울에 처음 왔을 때 제가 그렇게 입고 다녔거든요. 지방에서 왔다고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극 중 의상은 직접 동대문 가서 맞춘 거라 지금도 제 방에 걸려있어요. 시즌 2, 시즌 3 계속할지도 모르잖아요.” 충남 온양에서 태어난 그는 중3 때 상경, 량현량하·god 등 백댄서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반면 안창환은 20회 내내 ‘이화여대 ROTC’라고 쓰인 파란색 트레이닝복 한 벌만 입고 등장한다. 그는 “의상 고민을 안 해도 돼서 편했다”며 “대신 진짜 외국인처럼 보이기 위해 주 3~4회씩 선탠을 했다”고 밝혔다. 덕분에 전작 ‘슬기로운 감빵생활’(2017)에서 민머리 똘마니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음에도 첫 촬영 당시 ‘진짜 태국인’이라는 감독의 농담에 모두 속아 넘어갔다. 삭발 투혼에 이은 선탠 투혼인 셈이다.
 
정작 태국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그는 태국 음식점에 찾아가 종업원을 인터뷰하고, 이를 촬영한 영상을 보며 연습했다. “외국어가 아닌 서툰 한국어를 쓰는 거잖아요. 억양도 그렇지만 눈빛이 정말 선해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이들의 ‘반전 과거’도 주목받고 있다. 음문석은 2005년 솔로 가수 SIC으로 데뷔, 프로젝트 그룹 몬스터즈와 베베몬, 댄스 경연 프로그램 ‘댄싱9’(2013)출연까지 다양하게 활동해왔다. 2017년엔 단편영화 ‘미행’의 감독이자 ‘아와어’ 배우로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그는 “‘열혈사제’에서 형님으로 모신 고준 형이 제 연기 스승”이라며 “제대 후 연기를 꿈꿀 때 형을 만나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편집·촬영·극본·연출까지 관심을 갖게 된 건 “늦게 시작했지만 연기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이자 “연기를 오래 하기 위해선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덕분이다. 그는 13년간 연마한 무에타이 실력을 뽐내며 촬영현장에서도 쏭삭을 위한 특훈을 펼치는 등 매사 넘치는 열정을 보였다.
 
이와 달리 안창환은 수원대 연극영화학부 재학 시절 처음 무대를 경험한 이후 “나는 계속 연극만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마음이 바뀐 건 2013년 배우 장희정과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두 사람은 2011년 연극 ‘됴화만발’을 통해 만났다. “아무래도 가장의 책임감이 생기면서 다른 도전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영화 ‘그랜드파더’(2016)를 시작으로 다양한 장르를 오가고 있다.
 
“과거에 쌓아온 것들이 어떤 형태로든 다시 돌아와서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과거를 종종 돌이켜봐요. 연극 ‘관객모독’을 할 때 언어유희가 굉장히 많았는데 그것도 쏭삭의 말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됐거든요.” 경험파 음문석과 사색파 안창환이 다음 작품을 끝내고 나면 또 얼마나 성장해 있을지 궁금하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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