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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의사, 분쟁지서 총상도 치료하죠”…‘국경없는 의사회’ 활동가 김결희씨

중앙일보 2019.05.06 06:01
지난 24일 서울 신사동에서 만난 김결희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김씨는 국경없는의사회의 국내활동가 30여명 중 유일한 성형외과 전문의다. 고석현 기자

지난 24일 서울 신사동에서 만난 김결희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김씨는 국경없는의사회의 국내활동가 30여명 중 유일한 성형외과 전문의다. 고석현 기자

 
“현장에 안 간 사람은 있어도 한 번 간 사람은 없대요. ‘내 의술이 꼭 필요한 곳이구나’ 생각이 들어 구호 활동에 중독되죠.”  

강남 성형외과 근무하며 오지 봉사
열악한 환경에서 유연한 자세 배워
유럽처럼 자원봉사 휴가 생겼으면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성형외과 병원에서 전문의로 일하는 김결희(39)씨는 국제 의료구호단체 '국경없는의사회(MSF)'에서 활동 중이다. 김씨는 국경없는의사회의 한국인 활동가(의사‧간호사‧행정가) 30여명 중 유일한 성형외과 의사다.
 
지난해 10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찾은 김결희씨(맨왼쪽)가 총상환자의 다리 재건 수술을 하고 있다. [사진 김결희씨]

지난해 10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찾은 김결희씨(맨왼쪽)가 총상환자의 다리 재건 수술을 하고 있다. [사진 김결희씨]

환자들은 구호 활동을 온 의사를 좋아했다. 가자지구에서 진료한 20대 중반의 총상 환자는 치료를 받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사진 김결희씨]

환자들은 구호 활동을 온 의사를 좋아했다. 가자지구에서 진료한 20대 중반의 총상 환자는 치료를 받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사진 김결희씨]

다친 환자가 많은 분쟁 지역엔 주로 외과의가 파견된다. 김씨는 2016년부터 세 차례 현장을 찾았다. 지난해 10월엔 한 달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지역인 가자지구에 다녀왔다. 환자 대부분은 총상을 당한 젊은 남자다. 김씨는 정형외과 의사가 환자의 으스러진 뼈를 맞추고 나면 다른 신체 부위의 근육과 피부를 떼어와 복원하는 일을 했다. 
 
김씨가 국경없는의사회의 문을 두드린 건 2014년. 한림대 의과대학에서 전문의과정까지 마친 뒤 대학교수로 2년간 일했다. 그는 2012년에 미국에 건너가 하버드‧위스콘신‧미시간대 병원에서 전임의로 근무했다. “문득 미국에서도 의사로 사는 제 삶이 참 축복받았구나 싶더라고요. 남을 위해 작은 노력이라도 해야지 싶어 뉴욕의 국경없는의사회 미국사무소를 찾았어요.” 
2016년 5월 그가 첫발을 내디딘 현장은 아이티였다. 한 달간 임시병원에서 총상·자상 환자의 피부 재건을 맡았다. 두 달 뒤 나이지리아에선 한 달간 얼굴 피부가 썩는 노마병 환자를 돌봤다.
 
지난 2016년 나이지리아에서 김결희씨가 노마병 재건 치료를 맡았던 어린이들. [사진 김결희씨]

지난 2016년 나이지리아에서 김결희씨가 노마병 재건 치료를 맡았던 어린이들. [사진 김결희씨]

 
김씨는 한국에선 두경부암(머리와 목 부위의 암) 복원 수술을 주로 했다. 이를테면 설암 환자의 치료를 위해 혀를 도려낸 후 허벅지살을 이식하는 식인데, 이 과정에서 김씨는 혈관을 짓는 혈관 미세수술에 두각을 나타냈다. 김씨는 이 특기를 살려 미국에선 유방 재건술을 배웠다. 2016년 말 한국에 돌아온 후 현재까지 가슴‧체형 분야의 수술을 하고 있다. “흔히 우리가 ‘성괴’(성형괴물)만 만들어 낸다고 생각하지만, 혈관 미세수술을 응용한 총상 재건 수술은 성형외과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구호 현장은 베테랑 의사도 버티기 힘들 정도로 열악하다. 김씨는 “현장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통상 나이지리아에선 상처 위에 거즈를 덮지 않는다. 거즈는 상처 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쓰는데, 덥고 습한 이곳에선 거즈를 덮는 게 감염 위험이 더 크기 때문이다. 김씨는 가자지구에선 ‘포도식초’로 상처 소독을 하기도 했다. 보통 외상 수술 후 소독은 항생제로 한다. 하지만 총상처럼 치료 기간이 한 달 이상 걸리는 수술에 매번 항생제를 쓰면 내성이 생길 수 있다. 또 의료품이 부족한 이곳에선 항생제보다 포도식초를 구하기가 쉽다. 
 
가자지구에선 ‘포도식초’로 상처 소독을 하기도 했다. 항생제를 장기간 사용할 때 생길 수 있는 내성을 막고, 다른 의약품보다 구하기 쉽기 때문이다. [사진 김결희씨]

가자지구에선 ‘포도식초’로 상처 소독을 하기도 했다. 항생제를 장기간 사용할 때 생길 수 있는 내성을 막고, 다른 의약품보다 구하기 쉽기 때문이다. [사진 김결희씨]

 
한편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에서는 지난해 활동가 22명을 현장에 파견했다. 현지 수요에 따라 등록활동가 중 필요한 사람을 구호현장에 보낸다. 이 단체는 후원금으로 항공편‧체류비‧숙소와 최저시급 수준의 봉급을 지급한다. 일종의 ‘재능기부’다. 김씨는 적어도 2년에 한 번씩 현장에 갈 계획이다. 그는 “동료 의사들의 동참이 필요하다”며 “국내도 유럽처럼 의사들이 한 달 이상 자원봉사 휴가를 쓰는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석현·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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