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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 독재와 싸운 원칙론자" 이랬던 여권이 부메랑 맞았다

중앙일보 2019.05.06 06:00
신속처리 안건이 된 검찰개혁 법안에 대해 문무일 검찰총장의 반발이 계속되면서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아군’ 검찰총장이 현 정부에 반기를 드는 모양새여서 여권에서도 대응 수위를 놓고 고민 중이다.
 
문 총장은 해외출장 중이던 지난 1일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된 수사권 조정 법안과 공수처 신설 법안을 두고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고 말했다. 이어 4일엔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 빈틈이 생겨선 안 된다”며 재차 부정적인 입장을 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4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후 차에 오르고 있다. [중앙포토]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4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후 차에 오르고 있다. [중앙포토]

익명을 원한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문 총장을 지명할 때 당과 청와대에서 치켜세웠던 말이 부메랑이 됐다”고 토로했다. 2017년 7월 문 총장 지명 당시 청와대는 “부정부패 척결의 적임자”라고 했고 민주당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원칙론자”라고 표현했다. 
 
문 총장과 사법연수원 동기(18기)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87년 항쟁 등을 회상하며 “문 총장은 독재정권 타도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2차 사법파동의 주역이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남기기도 했다. 2차 사법파동은 1988년 2월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한 뒤 제5공화국에서 중용된 김용철 대법원장을 재임명하자 소장 판사 335명이 반대 성명을 발표한 사건이다. 당시 사법연수원생이던 문 총장은 사법부 개혁 움직임에 동참하는 서명 운동에 앞장섰다는 게 이 지사의 회고다.
 
이렇게 개혁 성향을 인정했던 당과 청와대이기에 문 총장과의 대결 구도는 손해가 아닐 수 없다. 정치권에서는 청와대가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하는 것도 대체로 그런 맥락으로 풀이하고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연합뉴스]

문무일 검찰총장[연합뉴스]

민주당도 주말을 지나면서 발언 수위를 점차 낮추는 분위기다. 문 총장을 자극하는 것이 자칫 검찰 내부의 반발을 부추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상민(민주당) 국회 사법개혁특위 위원장은 5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문 총장 발언이 틀린 말은 아니다. 국민을 위한 사법 서비스 구현이라는 방향성 역시 우리와 같다”며 “곧 국회 사개특위의 틀 안으로 모시겠다. 발언 기회를 드리겠다”고 밝혔다.
 
또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만큼 최대 330일이 지나면 본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는 타임 스케줄도 염두에 둔 대응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검찰 개혁 법안을 실은 패스트트랙 열차는 이미 출발했다”며 “열차를 멈추게 할 방법은 없다. 검찰을 잘 다독이면서 도착지까지 가면 된다”고 말했다.
 
이상민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오른쪽)이 지난 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사개특위 전체회의에서 공수처 법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후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상민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오른쪽)이 지난 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사개특위 전체회의에서 공수처 법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후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민주당은 여론 동향도 주시하고 있다. 야당이 격렬하게 반대하는 가운데 관련 법안의 국회 처리를 위해선 무엇보다 여론의 도움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3월 전국 성인 503명을 대상으로 수사권 조정에 관한 설문을 결과 찬성이 52.0%, 반대 28.1로 집계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참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문 총장의 파면을 촉구하는 글이 5개 이상 올려와 있다. 청원 인원은 1만명을 넘었다. 검찰은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공식 입장과 자세한 설명에 나설 방침이다. 그러나 검찰과 여권의 여론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 총장은 지난 4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면서 “조만간 상세히 말씀드릴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문무일 검찰총장 사퇴 청원 글 [청와대 게시판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문무일 검찰총장 사퇴 청원 글 [청와대 게시판 캡처]

자유한국당은 문 총장의 이견 표명 이후 공세 수위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주말 사이 “문재인 대통령은 일말의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나경원 원내대표), “공수처는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치려고 만드는 것“(황교안 대표) 등의 주장이 계속됐다.
 
한국당의 장외 투쟁으로 검찰 관련 법안을 다루는 국회 사법개혁특위는 개점휴업 상태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이번 주에 이상민 위원장과 민주당 사개특위 위원들의 회동이 있을 것”이라며 “검찰 측 입장을 정리한 의견서도 7일쯤 국회로 송부된다고 하니 이를 받아본 후 회의 개의 여부를 정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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