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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족 4명 '어린이날 비극'···폰엔 썼다 지운 수상한 메시지

중앙일보 2019.05.05 16:38
A씨 가족은 어린이날 부모를 찾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사진 pixabay]

A씨 가족은 어린이날 부모를 찾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사진 pixabay]

지난 4일 오전 11시쯤 A씨(34)는 경기도 광명시 한 렌터카 업체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빌렸다. 그가 머물고 있던 처가 근처 업체였다. 렌터카 업체 직원에 따르면 당시 A씨에게서 특별히 이상한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차를 빌리기 전 A씨는 부천에 거주하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가 “아이들을 데리고 오늘 오는 게 어떻겠냐”고 하자 A씨는 “오늘은 일이 있으니 내일(5일) 낮에 가겠다”고 답했다. A씨의 아버지는 “돈 구할 방법을 찾아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전화를 끊었다. A씨는 평소 빚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A씨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하루가 지난 5일 오전 4시15분쯤 A씨는 경기도 시흥시 은행동의 농로에 세워진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내(35)·아들(4)·딸(2)도 함께였다. A씨 가족이 발견된 장소는 인적이 드문 곳이다. 농사를 위해 가끔 오가는 사람을 제외하면 발걸음이 뜸했다. 농가 입구 쪽에만 주택이 있을 뿐 차량이 있던 장소 근처에는 거주하는 사람이 없다.
 
"빚 때문에 힘들어한 듯"
 
A씨를 발견한 건 렌터카 업체 직원이었다. A씨는 5일 0시30분까지 빌린 차량을 반납해야 했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도 A씨가 나타나지 않자 렌터카 업체 측은 GPS 추적에 나섰다. 발견한 차의 문은 잠기지 않은 채 닫혀있었다. 문을 열자 매캐한 냄새가 났다고 한다. 직원은 A씨 가족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에 따르면 차 안에는 연기가 가득했고 무언가 태운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A씨 가족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어떤 경로를 거쳐 농로까지 오게 됐으며 문을 잠그지 않았는데도 네 식구가 차에서 나가지 않고 함께 숨지게 됐는지는 더 조사해야 할 부분이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까지 A씨는 아내·아이들과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장모 집에서 생활했다. A씨는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공장에 다녔다. A씨 아내는 콜센터에서 2~3개월 정도 일했다. A씨의 장모도 낮에는 일이 있어 집을 비웠다. 돌봐줄 사람이 없는 아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유아원에서 보냈다. 바삐 일했지만 빚은 여전했다. 장모가 A씨 가족에 2000만원을 빌려줬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A씨 아버지도 쉽게 돈을 마련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유서 없지만 휴대전화에…
 
지난달 A씨와 아내가 일을 그만두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 가족의 빚 문제로 양가 부모도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A씨 유가족의 연락을 받고 온 A씨의 친구는 “만난 지 오래돼 A씨가 김포에 있는 공장에 다닌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시흥경찰서 [연합뉴스]

시흥경찰서 [연합뉴스]

 
A씨 가족의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A씨와 아내가 휴대전화에 있던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지운 것 같다”며 “자세한 것은 추가로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 가족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오는 7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맡길 예정이다. 
 
시흥=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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