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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문인 시비 땅에 묻고, 지명 변경…친일 청산작업 어디까지?

중앙일보 2019.05.05 06:01
강원도 춘천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정주, 최남선, 조연현 등 친일 행적 문인 3명의 시비(詩碑)를 땅에 묻고 있다. 박진호 기자

강원도 춘천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정주, 최남선, 조연현 등 친일 행적 문인 3명의 시비(詩碑)를 땅에 묻고 있다. 박진호 기자

 
“작품성은 인정하지만, 친일 행적에 대한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죠.”  

춘천시 서정주, 최남선, 조연현 시비 땅 속에 묻어
역사 되풀이 막기 위해 흔적 남겨야 한다는 의견도
군산시 서수면 이름 바꾸기 위해 3일부터 투표 실시

 
지난 3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서면 금산리 춘천문학공원. 문인 10여명이 삽으로 움푹 파인 구덩이를 덮고 있었다. 이들이 흙으로 덮는 건 문학공원에 있던 서정주, 최남선, 조연현 등 친일 행적 문인 3명의 시비(詩碑)다. 최현순 한국문인협회 춘천지부장은 “올해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만큼 친일 행적이 있는 문인의 시비 철거는 교훈적인 측면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었다”고 말했다.
 
서정주는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창씨개명한 이름으로 친일문학을 발표했다. 조연현 역시 창씨개명 후 ‘문학자의 입장’, ‘청춘단상’ 등 친일 관련 글을 다수 발표했다. 최남선은 1935년부터 일본 신도 보급에 참여했으며 1936년 6월부터 1938년 3월까지 3년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춘천시는 시비 3개와 별도로 제작한 표지석도 함께 땅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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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서면 춘천문학공원에서 서정주, 최남선, 조연현 등 친일 행적 문인 3명의 시비(詩碑)를 땅에 묻는 행사가 진행됐다. 박진호 기자

지난 3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서면 춘천문학공원에서 서정주, 최남선, 조연현 등 친일 행적 문인 3명의 시비(詩碑)를 땅에 묻는 행사가 진행됐다. 박진호 기자

3·1운동 100주년 ‘친일 흔적 지우기’
반면 일각에선 일제 청산을 이유로 모든 흔적을 지우는 것보다 시비 앞에 친일 행적을 알리는 안내 표지판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알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일제가 남긴 침략의 증거를 남겨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훈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친일 흔적 지우기’에 나선 자치단체는 많다. 경기도 부천시는 지난 2월 친일 논란이 있는 서정주, 노천명, 주요한의 시비를 모두 철거했다. 부천시 상동 ‘시와 꽃이 있는 거리’에는 2008년부터 10년 넘게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동천’ 등의 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지속적인 시비 철거 요청에 지난해 11월 주민자치위원회 회의가 열렸고 철거가 결정됐다.
 
일부 자치단체는 지명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전북 전주시다. 전주시는 ‘동산동’ 지명을 바꾸기 위해 지난 3일 오후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동산동 지명이 일제강점기 미쓰비시(三菱)그룹이 운영하던 ‘도잔(東山) 농장’에서 유래됐기 때문이다. 시는 주민설명회 이후 1만명이 넘는 세대를 대상으로 찬반 설문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찬성의견이 많으면 공모 등을 통해 3개의 지명을 선정한 뒤 또다시 전 세대를 대상으로 설문한다. 강은영 전주시 자치행정팀 주무관은 “주민 편의를 위해 법정동은 그대로 놔두고 행정동의 명칭만 변경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난 3일 오후 전북 군산시 서수면 한 주민이 서수(瑞穗)라는 명칭을 바꾸기 위한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서수면사무소]

지난 3일 오후 전북 군산시 서수면 한 주민이 서수(瑞穗)라는 명칭을 바꾸기 위한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서수면사무소]

주민설명회·설문조사·투표도 진행
전북 군산시 서수면도 지명 변경에 적극적인 곳이다. 서수(瑞穗)라는 명칭은 일본인 농장주가 지은 이름으로 일제의 수탈 역사를 담고 있어 그동안 지명을 변경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지난 3일 서수면 31개 투표소에서 명칭 변경을 위한 사전투표가 진행됐다.   
 
새로운 이름은 투표에 과반수 이상 참여, 3분의 2가 찬성해야 변경이 가능하다. 앞서 서수면 명칭변경추진위원회는 지난달 1~7일 명칭변경에 대한 찬반 의견과 선호하는 명칭을 지지하는 세대별 여론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79%가 찬성했다. 또 지지를 얻은 새로운 이름은 ‘항쟁면’과 ‘용천면’이다. 이 지역은 1927년 농민항쟁이 일어난 지역이자 용에 대한 설화가 많은 곳이다. 심종완 서수면 행정민원계장은 “투표 결과가 나오면 서수면 명칭변경추진위원회 명의로 시에 건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충남도교육청도 지난 2월부터 각급 학교 안에 남아있는 일제 식민지 잔재 청산작업에 나섰다. 교육청이 도내 713개 초·중·고교를 모두 조사한 결과 29개 학교가 일본인 학교장 사진이나 일장기·칼을 찬 일본인 교사의 사진을 중앙 현관·계단 벽면·복도 등에 게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충남교육청은 이들의 사진을 철거했다. 
 
춘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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