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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오후에 국회에서 만난 이인영 의원은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다. 전날 자정 무렵 선거제 개편안 등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여파였다. 이 의원은 “뒤풀이로 이해찬 당 대표, 홍영표 원내대표 과 몇 잔 마셨다”고 했다. 새벽 3시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오후에 국회에 출근하자마자 의원실을 돌았다. 원내대표 선거에 도전장을 내고 동료 의원들을 상대로 득표전을 벌이고 있는 이 의원을 밀착마크했다.
 
홍영표 원내대표가 뭐라고 하던가.
“공수처 설치 법안과 검ㆍ경 수사권 조정 법안은 개혁과제로 생각했던 건데 자기 임기 마무리 전에 첫발을 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로 인해 국회 교착 상태가 오래갈 것이란 우려가 있는데.
“저강도 경색은 이미 왔다고 본다. 한국당의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들어서고 경색이 시작된 것이니까.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한국당이) 저렇게 물리적인 충돌까지 불사하고 나오는 것은 난동이고 난장판이고 무법천지를 자행한 것 아닌가. 한국당이 전술적으로도 무모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원칙은 지키되 유연하게 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인영 의원실에 한 켠에는 고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 의원은 김 전 의장이 이끌던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에서 오래 활동했다. 윤성민 기자

이인영 의원실에 한 켠에는 고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 의원은 김 전 의장이 이끌던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에서 오래 활동했다. 윤성민 기자

민주당이 한국당 의원 등을 고발했다. 원내대표가 된다면 이 문제 어떻게 할 것인가.
“면죄부를 바로 줄 문제는 아니고 한국당의 상응 조치를 보고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고발을 취하하면) 국회 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키는 거 아니겠나. 국민도 ‘다 없었던 일로 해라’ 그렇게 하진 않을 것이다. 여야 간 협치 과정에서 정치를 복원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라고 본다.”
 
한국당에 계속 강경하게 대응한다고 이해해도 되나.
“강경 노선은 우리가 조장한 것이 아니다. 청소년들이 말하는 ‘선빵’이라는 것을 친 것은 우리가 아니다. 한국당의 변화가 있고, 한국당에 대한 국민의 생각도 변화가 있어야 (취하) 할 수 있지, 우리 마음대로 족쇄를 풀었다 채웠다 하는 것은 여야 관계와 별개로 국민 눈에 좋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차기 원내대표 선거 출마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의원은 기존 희끗희끗한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하고 출마를 선언했다. [뉴스1]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차기 원내대표 선거 출마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의원은 기존 희끗희끗한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하고 출마를 선언했다. [뉴스1]

이 의원은 원내대표 후보 중 가장 먼저(지난달 21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했다. 희끗희끗한 머리색을 염색해 젊어진 모습으로 국회 정론관에 나타났다. 지난 3월 화이트데이 때는 민주당 여성 의원들에게 직접 손편지를 써서 사탕과 초콜릿 선물을 하기도 했다. 의원들 사이에선 “딱딱하던 이인영이 달라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염색은 어떻게 하게 됐나.
“나는 원래 모습대로 자연스럽게 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변에서 ‘너부터 변해보라’고 하더라. 염색 하나라도 해서 그 사람들이 ‘변화할 수 있는지 보여봐라’ 한 것에 대해 그럼 그렇게 하자 대답한 것이다. 이런 정도의 고집도 버리지 못하면 더 큰 아집은 버릴 수 있겠나.”
 
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발언 때문에 원내대표 선거 출마를 하게 됐다고 했는데.
“미국에 갔을 때였다. 숙소에 돌아와 기사 검색을 하는데 황 대표가 대표에 출마하겠다고 하면서 우리를 걸고 들어왔더라. ‘무덤 속에 있어야 할 386세대 운동권 철학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이 돼서 당·정·청을 장악하고 있다’고 했다. 솔직하게 표현하면 사탄의 저주보다도 더 심한 모멸감 느꼈다. 내가 이 문제에 대응하지 않고 정치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생각했다.”
 
이인영 의원실의 책장 한 칸 모습. 장하성의 『한국 자본주의』,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같은 책에서 진보 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볼 수 있다. 윤성민 기자

이인영 의원실의 책장 한 칸 모습. 장하성의 『한국 자본주의』,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같은 책에서 진보 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볼 수 있다. 윤성민 기자

한국당을 극우적이라고 표현한 적 있는데, 그런 시각으로 협상할 수 있겠나.
“우리한테 좌파독재라고 하는 것을 그냥 놔둔 상태에서 협상은 가능하다고 보나. 서로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서로가 ‘막말 정치’를 멈출 때 정치가 품격이 생길 것으로 본다. 한국당이 합리적 보수로 유턴하라는 얘기지 극우로 낙인찍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출마 선언하며 노동 유연성 등을 언급했다. 이인영의 진보 정치가 변화한 건가.
“내가 젊은 날 마음에 품었던 이상, 정치를 시작하면서 품었던 이상은 잘 간직해야 한다. 다만 진보 정치의 연장선에서 보더라도 일을 풀어가는 과정은 점진적이고 단계적일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진보주의를 포기한 건 아니다. 원내대표는 미드필더이고 레프트윙에도 공을 공급하고, 라이트윙에도 공을 공급해야 하는 사람이지 않나. 설사 진보주의 신념을 지킨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나의 이념을 확장하지 않으면 경기 운용을 좁게 할 수밖에 없다.”
 
현재 판세는 어떻게 보나.
“나한테 기울어졌다고 본다.”
 
이인영 의원이 의원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성민 기자

이인영 의원이 의원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성민 기자

이번 원내대표 선거는 내년 총선을 이끌게 된다. 총선을 승리로 만들 수 있는지가 의원들의 주요 투표 기준 중 하나다. 당연히 자신의 공천 문제도 고려 대상이다. 누가 원내대표가 되느냐에 따라 내년 총선, 즉 21대 국회 입성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이 의원은 ‘친문’ 중심의 이해찬-김태년 체제가 될 경우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강조하고 있다. 실제 ‘이해찬-김태년 체제’를 견제하려는 의원들이 그를 지지하고 있다.
 
차기 원내대표는 내년 총선 공천에도 영향을 미친다.
공천에서 잡음이 생기면 총선 결과가 항상 나쁘다. 2012년엔 ‘친노 공천’ ‘386 공천’ 때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부활을 가져왔다. 2016년에는 ‘진박’ 감별한다고 ‘옥새 들고 나르샤’하면서 새누리당이 ‘폭망’했다. 편파성 시비가 원천적으로 없으려면 공정성과 균형감을 갖춰야 한다.
 
총선 때마다 공천 잡음이 있다. 다른 후보보다 장점이 있다면.
“당내에서 나를 지지하는 폭이 넓다. 단결과 통합의 폭도 넓어서 다른 후보보다 더 공정하고 균형감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난 4·3 보궐 선거는 어떻게 평가하나.
“현상적으로는 비겼다고 볼 수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실패했다. 우리가 부족했다. 다만 우리 스스로가 변화하고 혁신할 기회는 얻은 것 같다.”
 
어떤 총선 전략 갖고 있나.
“보수와의 혁신 경쟁에서 더 먼저 혁신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보는 꼰대, 보수는 꼴통’이라는 비난으로부터 우리가 먼저 탈출하는 것이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당장 중소기업, 자영업자, 청년들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 성과를 내고 총선에서 잘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라고 본다.”
 
80년대 전대협 활동 당시의 이인영 의원.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낸 그는 대표적인 '운동권'이자 '86'세대 정치인이다.

80년대 전대협 활동 당시의 이인영 의원.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낸 그는 대표적인 '운동권'이자 '86'세대 정치인이다.

이 의원은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냈다. 86(80년대 학번ㆍ60년대생)그룹의 좌장이자 운동권 출신 정치인의 상징성을 지닌 인물이다. 2013년 4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그의 ‘정치적 자아’를 유추할만한 답변을 했다. 기자가 “486들이 진보적 가치를 고집한 것 때문에 민주당이 과거의 운동권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을 듣는 것 아닌가?”라고 묻자, 이 의원은 “민주당은 수권 가능한 대안 정당으로 진보의 가치를 계속 추구해야 한다. 정치에서 중간층을 목적으로 하는 건 없다”고 답했다. 또 “내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버릴 수 없다. 그걸 버리면 정치를 왜 하나?”라고 했다. 이 인터뷰로 당시 이 의원은 ‘화석화된 진보’라는 비난을 받았다.
 
2013년 인터뷰에서 받았던 질문을 다시 받는다고 하면 어떻게 답하겠나.
“개인의 가치와 신념은 견고하다. 하지만 견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그래야 한다고 하는 것은 독선이다. 사고는 합리적이고 유연하고 점진적이어야 한다. 그런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진보주의적인 신념이나 원칙을 얼마만큼 확장할 수 있는 것인지,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만큼 이동시킬 수 있는 것인지 나도 시험대에 오른 것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깊게 생각하고 내린 판단(원내대표 선거 출마)인 만큼 보수와의 혁신 경쟁에서 더 먼저 혁신할 것이다.”
 
86세대에게도 이번 원내대표 선거가 중요하다는 평가가 있다.
“세대를 대표해서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잘못하면 세대 전체를 망쳤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고…. 저는 우선 제 운명을 걸고 도전하고 있는 것이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과거에 언급했던 통일 대통령의 꿈은 여전히 유효한가.
“현실적으로 많이 사라졌다. 빠른 통일의 가능성이 줄어든 것 같다. 이젠 평화를 통한 공존 번영의 길이 설계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내게도 욕망으로서의 정치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다면 독일 정도의 나라가 되는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은 꿈은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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