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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의사 색스의 뼈있는 에세이

중앙선데이 2019.05.04 00:20 634호 21면 지면보기
모든 것은 그 자리에

모든 것은 그 자리에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올리버 색스 지음

미발표 글 7편 실린 유고 산문
우주·생명의 경이로움 담아
“의사 되는 법 가르쳐준 책” 평가
어린 시절 소양교육 소상히 밝혀

양병찬 옮김
알마
 
연초에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국민적 관심을 끌었다. 유명 의대 진학을 위해 발버둥 치는 군상들의 갖가지 에피소드를 담은 이 드라마는 많은 논쟁을 불러들이면서 의사라는 직업이 과연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해마다 많은 한국 학생이 의대 문을 노크하지만 왜 꼭 그곳에 가야 하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올리버 색스의 에세이집 『모든 것은 그 자리에(Everything in Its Place)』를 꼭 권하고 싶다. 물론 이미 한국에 많은 독자를 두고 있는 색스의 책은 일반인들이 읽어도 감동과 통찰력을 공유하기에 모자람이 전혀 없다.
 
2015년 타계한 올리버 색스는 발군의 문장으로 이름 높았다. 생전 집필 모습. [사진 알마]

2015년 타계한 올리버 색스는 발군의 문장으로 이름 높았다. 생전 집필 모습. [사진 알마]

40년 넘게 ‘따뜻한 의학’을 실천하고 설파한 의사였던 색스는 무한한 상상력과 지적 호기심으로 발현되는 과학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줬다. 그뿐만 아니라 문학적 기품이 깃든 문장과 서사를 풀어나간 그는 작가로서도 발군이었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현대 의학의 계관시인’이라고 했고 ‘사이언티스트’는 ‘과학 저술의 셰익스피어’라 칭했다. 그는 이전에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온 더 무브』『의식의 강』 등 베스트셀러를 잇달아 내놓았다.『모든 것은 그 자리에』는 그가 2015년 세상을 떠난 뒤 나온 마지막 책이다. ‘정원이 필요한 이유’ ‘삶은 계속된다’ 등 미발표 에세이 7편이 함께 수록됐다. 평생 사랑했던 것들과 마지막 순간까지 추구했던 가치들을 감동적 이야기로 재현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순수한 열정, 근원적 통찰, 명민한 정신이 사려 깊은 친구이자 관대한 이웃인 그의 우아한 문장에 실렸다.
 
그는 수영 챔피언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생후 1주일부터 물가에서 논 ‘물아기’였다. 어릴 적부터 그를 가르친 것은 ‘자연의 책’인 박물관과 식물원, 동물원이었다. 과학 마니아였던 그는 한가한 오후나 주말, 휴일에 자연사·지질·과학박물관을 틈만 나면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자연사박물관엔 폐관 시간에 몰래 숨어들어 손전등을 들고 다니며 황홀한 밤을 새우기도 했다. 한국의 의대, 과학자 지망생들에게도 이런 교육 환경이 주어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의 첫사랑은 중학교 도서관에서 19세기에 나온 정전기학에 관한 책을 읽다 만난 소년 조너선이었다. ‘화학의 시인’ 험프리 데이비를 영웅시한 그는 도서관에서 온갖 책들을 섭렵하며 “진정한 교육을 받았다”고 술회한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30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신경과 전문의로 일했다. 이 책은 틱(투레증후군)·우울증·조현병·치매·알츠하이머병 등의 질병과 환자와의 관계를 다루면서 우리가 환자들과 치유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호소도 담고 있다. 작가이자 의사인 아툴 가완디는 “의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색스만큼 제대로 가르쳐 준 사람은 없었다”고 고백한다.
 
우주에 대한 동경,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에 대한 애정이 깊이 묻어 나는 에세이들은 일반 독자들에게도 감동을 선사한다. “인류와 지구는 생존할 것이고, 삶은 지속할 것이며, 지금이 인류의 마지막 시간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생의 마지막까지 삶의 경이로움을 잊지 않았던 그의 소망이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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