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심상치않은 북·일 접촉, 주시 속 기민한 대처해야

중앙선데이 2019.05.04 00:20 634호 30면 지면보기
북·일 관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일 언론 인터뷰에서 “조건 없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보고 싶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9~12일 방미 예정인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뉴욕에서 북한측 인사와 고위급 접촉을 하고 싶다는 뜻을 평양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김정은과 조건 없는 대화” 천명, 동북아 새 변수
미국과 철통 공조 끝 동의 얻어내 … 우리 정부에 교훈

아베 총리가 김 위원장을 만나려는 핵심 의제는 많게는 수백명까지로 추정되는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이다. 2021년 9월 퇴임 예정인 아베는 2년여 남은 임기 안에 납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미국과 함께 ‘최대한의 대북 압박’에 집중해온 입장에서 돌연 북한과 대화에 나서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랬던 아베 총리가 전격적으로 북·일 정상 회담 추진 의사를 천명한 건  미국으로부터 확실한 ‘오케이 사인’을 얻어낸 결과로 풀이된다. 아베는 지난달 26일 워싱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4시간 넘는 정상회담을 한 끝에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 정상회담 실현에 미국은 전적으로 협력하겠다”는 공동 성명을 끌어냈다. 2분간 단독회담 끝에 공동성명 하나 없이 끝난 4·11 한미정상회담과는 대조적이다. 일본은 이에 힘입어 11년 내내 유엔에 제출해 온 북한인권결의안을 처음으로 보류했고 외교청서에서 “대북 압력을 최대한 높인다”는 표현도 삭제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대미 협상이 벽에 부닥친 북한으로선 이런 일본과 접촉해 돌파구를 여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할 공산이 있다.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 대신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아베 총리를 통해 숙원인 제재 완화 설득 요청을 하려 한다면 일본이 한국을 대체해 새로운  ‘중재자’가 될 가능성마저 있다.
 
우리 정부는 동북아 정세에 새 변수로 부상한 북·일 접촉 움직임에서 통찰을 얻어야 한다.  일본이 북한과 대화 기회를 잡게 된 건 미국과의 공조를 최우선하며 외교의 출발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아베는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에서 미·일 안보의 최우선 순위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FFVD)’임을 천명하고, 그 대상도 핵무기는 물론 모든 대량살상무기(WMD)의 전면 폐기임을 강조했다. ‘빅딜’언급을 피하면서 ‘제재 완화’만 외쳐온 우리 정부와는 접근 방식부터 달랐다. 그랬기에 미국의 신뢰를 사 북한에 대화를 제의하고, 유화책도 구사할 기반을 얻은 것이다. 북한에게도 미국에 말발이 먹히지 않는 한국보다는 트럼프의 지원을 업은 일본이 눈에 들어올 여지가 크다.
 
물론 북·일간엔 양측 국민의 적대적 여론 등 암초가 많아 정상회담 성사 여부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지난해 남북, 북미정상회담 국면에서 ‘외톨이’란 비아냥을 받았던 일본으로선 대북 접촉 물꼬를 튼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우리 정부의 기민한 대처는 절실하다. 미국과 철통 공조 기반 위에서 한·미·일 간에 긴밀하게 정보를 공유하면서 북·일 접촉이 비핵화 협상에 긍정적 역할을 하게끔 역량을 경주해야 한다. 역대 최악인 한일관계 개선의 계기로도 삼아야 한다. 한일관계가 좋았으면 이렇게 일본이 한국을 제쳐놓고 독자적으로 북한과 접촉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