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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비례대표

중앙선데이 2019.05.04 00:20 634호 31면 지면보기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더불어민주당의 한 비례대표 의원실 A비서관은 요즘 국회보다 ‘지역구’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다. 모시는 의원이 내년 21대 총선에 지역구 후보로 출마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올 초 보좌진들을 급파했다. 내년 2월 경선 때 투표권을 행사할 ‘권리당원’을 최대한 모집하는 게 보좌진들 역할이다. 데드라인은 7월 31일. A비서관은 “신용카드 모집원도 아니고 … ‘제발 도와달라’고 읍소하러 다니는 게 일과”라며 씁쓸해했다.
 
자유한국당의 한 비례대표 의원실 B비서관도 비슷한 처지다. 의원은 지역구 표심 다지기에 보좌진을 대거 동원하고 있다. 의원이 소속된 상임위와 관련된 각종 직능 단체, 기관을 돌며 민원을 듣고 해결사 노릇을 하는게 임무다. B비서관은 “말도 안 되는 민원을 듣고 있자니 자괴감이 든다. 무시할 수도 없고,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는 시늉이라도 해줘야 하니 답답하다”고 푸념했다.
 
두 비례대표 의원이 지역구에 공들이는 동안 의원실의 의정활동은 마비됐다. 두 의원실이 올해 1~4월 발의한 법안 건수는 지난해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비례대표는 소수·소외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한 제도다. 덕분에 국민은 다수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선거판에서도 다채로운 배경과 의견을 가진 대표를 가지게 된다. 이들의 활동에 2억3000만원(의정활동 지원비 포함)의 연봉과 보좌진 9명(인턴 2명 포함)을 지원한다. 4억5000만원에 달하는 보좌진 급여는 세금으로 충당한다.
 
20대 국회에는 여야를 통틀어 장애인 비례대표 의원이 한 명도 없다. 다문화·한부모 가정 출신도 없다. 소외계층을 대표하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일부는 임기 중에 하라는 정책개발·입법 활동은 제쳐놓고 공무원인 보좌진을 선거운동원으로 부린다. 비례대표 의원직을 지역구 의원으로 갈아타는 환승역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두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국회에선 점거 농성, 단체 삭발처럼 아이들이 볼까 두려운 모습이 연일 벌어진다. 만약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현재 47명인 비례대표가 75명으로 늘어난다. “지역주의 타파에 큰 도움이 될 것”(김부겸 의원)이란 긍정적인 기대도 있다. 하지만 이대로 비례대표 숫자만 늘린다면 국민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그들의 정치 생명 연장의 꿈을 위해 매년 7억원의 혈세를 지원하는 건 아니다.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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